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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혐오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습지주의자』: 김산하 편 ②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인류 혐오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습지주의자』: 김산하 편 ②

Editor! 2020. 1. 14. 10:00

이번 「과학+책+수다」의 주인공은 지난 11월 사이언스북스에서 『습지주의자』를 출간한 김산하 생명 다양성 재단 사무국장입니다. 『습지주의자』는 ‘나’라는 인물이 습지주의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생태 픽션이죠. 영상으로도 소개한 바 있는 이번 「과학+책+수다」를 좀 더 깊이 있게 경험하실 수 있게끔 녹취록 형태로도 준비했습니다.
두 번째 편에서는 김산하 박사 개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보았습니다.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 학자로서, 생명 다양성 재단의 사무국장으로서, 또한 작가로서 그의 사유가 어떻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지를 이번 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열네 번째 이야기
인류 혐오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습지주의자』 : 김산하 편 ②

김산하 박사. 사진: ⓒ ㈜사이언스북스.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

SB: 첫 번째 편에서는 주로 『습지주의자』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면, 두 번째 편에서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해 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이십니다. 야생 영장류학이 무엇인지 독자 여러분께 들려주시면 어떨까요?

김산하: 생물학은 다들 들어 보셨겠죠? 생물학 안에서 특정 동물만을 연구하는 학문이 왜 있나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각 동물마다 학문이 정립되어 있어요. 양서류학, 파충류학, 조류학이 있는 데다 이들도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영장류는, 아무래도 인간도 영장류이다 보니까 특별히 관심이 있어요. 게다가 영장류는 좀 독특한 부류예요. 영장류의 특성을 이 자리에서 지금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영장류들만 연구하는 학문을 일컬어 영장류학이라고 합니다.
영장류학도 영장류를 포획해서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예전에 많았어요. 우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제약 회사 같은 곳에서 실험 대상으로 삼기 좋았거든요. 우리와 비슷하니까 이 영장류들의 반응이 생물학적으로 의미 있는 거예요. 원숭이나 침팬지를 대상으로, 우리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위험한 실험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이 말은 모순적이죠. 우리와 비슷하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거든요.
영장류는 중요한 동물입니다. 그런 영장류를 야생 상태에서 연구하는 학문을 야생 영장류학이라고 말합니다. 야생 영장류가 서식하는 나라는 많지만 선진국에는 거의 없어요. 그나마 일본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은 대부분 야생 영장류학을 연구하고 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우리와도 생리적으로 비슷해서 연결되고 인류의 기원과도 연관되지만, 이제는 이들이 밀림 등의 서식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자체로도 연구할 가치가 많은데, 저는 어쩌다 보니 한국에서 처음으로 야생 영장류학을 전공한 셈이 되었습니다. 자국에 야생 영장류가 있는 일본도 물론 아주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지만, 일본 말고도 다른 선진국들이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보니 선진국의 연구자들이 개발 도상국에서 연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인도네시아에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SB: 그렇게 인도네시아에서 ‘자바긴팔원숭이의 먹이 찾기 전략’이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 연구를 하신 것이죠?

김산하: 그렇죠.

SB: 『비숲』에서도 쓰셨지만, 특히 먹이 찾기 전략을 연구하신 이유를 이 자리에서도 들려주시면 어떨까요?

김산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해요. 밀림은 과일이 나무에 주렁주렁 열려 있는 에덴 동산 같을 거라고요. 다른 데에 비하면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음식은 상대적이에요. 예를 들어 갑자기 전쟁이 나서 먹을 만한 음식이 아무것도 없다면 취향을 떠나 바퀴벌레라도 먹을 거거든요. 바퀴벌레가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그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됩니다. 아니면 음식물 쓰레기라도 뒤져서 먹겠죠. 절실하면 달라집니다. 꼭 절실하지 않더라도 음식이 부족하면 웬만해서 건드리지 않던 것도 먹을 수 있어요. 즉 먹이가 상대적이라는 것이 제게 흥미로웠습니다.
또 열대 우림에서 긴팔원숭이는 영역을 엄격하게 지킵니다. 그렇다 보니 제 영역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요. 우리야 식량을 밖에서 수입해 오기도 하죠. 김포 쌀이나 이천 쌀을 서울로 가져오는 등 음식을 곳곳에서 조달해 먹습니다. 반면 긴팔원숭이가 영역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그렇다면 그 영역을 운영하는 나름의 체계가 있지 않을까? 어떤 열매는 빨리 열렸다가 질 텐데 어떻게 먹을까? 또 어떤 열매는 영역의 경계에 열려서 다른 누군가가 뺏어 먹기도 할 텐데? 야외 음식을 어떻게 매일 충분히 조달할까? 그렇다면 긴팔원숭이에게 경영자로서의 마인드가 있지 않을까? 또 긴팔원숭이는 가족이 함께 다니는데, 여기에도 어떤 전략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다른 것보다도 이것들이 궁금하더라고요.

긴팔원숭이 사진. 『비숲』 338쪽에서.

SB: 선생님 이후에도 다른 야생 영장류학자들이 한국에서 배출되고 있는지요?

김산하: 이미 여러 명 배출되었습니다. 제가 인도네시아에서 박사 학위 연구를 하고 나서 벌써 네 명의 박사 학위 연구자가 나왔어요. 그중 두 명은 한국에서가 아니라 해외에서 연구했고, 나머지 둘은 이화 여자 대학교에서 했습니다.(저는 서울 대학교에서 했고요.) 그 밖에도 현재 연구하고 있는 대학원생이 서넛 이상 있습니다. 석사도 몇 명이 있으니, 야생 영장류학의 길을 밟고 있는 사람만 저를 포함해 17~18명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로 많이 배출된 셈이죠.

 

 

이야기의 정당성

SB: 『비숲』을 보면 “남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 세상 속에서 몸을 담그지 못하고 한 발 물러서서 세상을 보는 자라는 점에서 연구자와 작가의 삶이 닮아 있다.”라는 구절이 있더라고요. 이번에 『습지주의자』라는 소설을 쓰면서 실제로 경험하신 작가로서의 삶은 어떠셨나요? 연구자로서의 삶과 차이가 있었나요?

김산하: 굉장히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점이 가장 달랐어요.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논픽션을 쓸 때는 그 글을 쓰는 이유가 있었고, 제가 쓴 글이 자동적으로 가치를 갖는다고 느꼈어요. 그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정당성과 중요성이 애초에 확보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쓴 글을 독자에게 권할 때 ‘비록 당신이 영장류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영장류는 중요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당성 말이죠.
사실 저는 『습지주의자』 말고도 픽션을 써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 책이기는 했지만요. 그런데 픽션을 쓰다 보니 이 문장들을 왜 누군가가 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이 글 자체만으로는 정당성이 주어지지 않는구나 하는 점을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픽션의 정당성은 이것을 쓰는 내가 만들어 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했고, 거기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이야기를 지어 내는 일이 오히려 진짜 어려운 거구나 하고요. 한 번 시도해 본 것과 안 해 본 것이 천지 차이이고, 픽션을 잘 쓰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픽션을 잘 쓰는 작가들을 더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픽션이 그냥 단순하게 지어낸 이야기라고만 볼 수는 없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물론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공상만으로 써내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써야겠다는 방향성이 나와서 쓰는 거지, 지어내는 이야기이니까 방향성도 없이 아무렇게나 쓰려다 보면 오히려 못 쓴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자신이 신이 되어서 세상을 만드는 원리를 구상해 내야 뭐라도 생겨나고 나오는 것이지 그냥 임의로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제게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비숲』  112쪽에서.

SB: 마침 『습지주의자』에서도 ‘나’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잖아요. 자신이 만든 작품의 정당성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요. 그래서 자신이 만들어 놓고서 공개하지 않고 묵혀 둔 영화가 많았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선생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부분들이 녹아 있는 것도 같아요.

김산하: 네,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게다가 정당성에 대해서는 이런 관점에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어요. 요즘 유튜브를 많이 하시는데, 사실은 이런 온라인 정보에도 실체가 있습니다. 결국 어딘가에 데이터로 저장되어야 하고, 검색어를 입력하는 순간 검색되어야 하죠. 왜 다른 사람이 이 글을 읽어야 하나 질문할 수 있는 정당성 문제도 있을 뿐 아니라, 이 정보들은 전부 에너지가 들고 탄소를 배출한다는 문제도 있는 것입니다. 미술 전시회를 가도 결국 물감을 쓰고 나무를 쓰고 돌을 쓰지 않습니까? 사실은 이런 행동 하나하나에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죠. 안 그래도 기후 변화 체제에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서 자신이 만든 것에 어떤 정당성이 있겠느냐는 고민을 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 주변에는 디자인이나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분들도 고민이 많습니다. 작품 활동을 하다가 쓰레기를 만들기는 싫다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참 신기한 고민입니다. 작품이지만 자칫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지점이 있으니까요.

SB: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아요. 저만 해도 교정지를 여러 번 출력해서 몇 교를 보다 보면 ‘환경을 보전하자는 책을 낸답시고 마구 출력하다가 오히려 애꿎은 종이를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오탈자를 왜 애초에 잡아 내지 못했나?’ 하고 죄책감이 들 때가 간혹 있거든요.

김산하: 출력해서 보는 것과 화면으로 보는 것은 너무 다르잖아요.

SB: 맞습니다. 다르죠.

김산하: 대신 저자로서 교정지를 받아서 검토하는 저는 종이로 볼 필요 없이 PDF 문서로 봐도 됩니다. 그래서 교정지를 출력해서 보내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렸었죠.

 

늪에 빠졌다

SB: 『습지주의자』에 간략하게 언급되고 『비숲』에도 나오지만, 실제로 늪에 빠져 본 경험이 있으시다고요.

김산하: 네, 있습니다.

SB: 그에 대해서 한번 여쭤 보고 싶었어요.

김산하: 조관우의 「늪」이라는 노래도 있듯이 사람들은 ‘늪에 빠졌다.’라는 표현을 비유적으로 많이 씁니다. 그런데 말 그대로 늪에 진짜 빠져 본 사람은 잘 없거든요. 그래서 이 경험을 궁금해하시는 분께서 많습니다.
예전에는 유원지에 가 보면 ‘유령의 집’ 같은 곳이 많았습니다. 건물 안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겁주잖아요. 그런데 몇 번 해 보면 ‘뭐 별거 아닌데.’ 하고 무서움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기억에 남을 만큼 무서움을 크게 느낀 적이 있어요. 누군가가 일부러 계단에 스펀지를 설치해 놨더라고요. 스펀지 위에 발을 디뎠더니 발이 아래로 쑥 들어가는 거예요. 그때 정말 무서웠거든요. ‘유령의 집’에서 겪으니까. 그때 느꼈어요. 발밑이 꺼진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사실 간단한 장치잖아요.
사람은 진짜로 그런 존재죠. 단단한 것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늪에 실제로 빠졌을 때는 제대로 겁을 먹었어요. 발이 쑥 들어가는데, 한 발이 들어가도 다른 발은 안 들어가리라 기대하게 돼요. 한 발은 재수 없게 빠졌지만 이 발은 당연히 단단한 땅을 디디겠지. 그런데 다른 발도 똑같이 늪에 빠지고, 심지어 먼저 빠진 발이 더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진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한 기대가 무너져도 또 다른 기대가 있습니다. 억지로 나가려 하면 좀 나아질 거라고요. 그런 기대를 하나하나 다 기각시키는 단계들이 펼쳐집니다. 몸은 점점 더 들어가고요. 무릎 위까지 들어갔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말 그대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팔을 황급하게 휘저었어요. 밀림이니까 타잔이 잡는 덩굴이나 줄기 따위가 있잖아요.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덩굴 하나를 겨우 잡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나갈 수는 없더라고요. 이미 힘이 소진된 상태라 지쳐서요. 일단 그걸 잡고서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참에 제 연구를 보조하던 인도네시아 친구가 제게 무전기로 연락해 왔습니다. 어디냐고, 왜 안 나타나느냐고요. ‘나 지금 늪에 빠졌는데, 그냥 여기서 생을 마감할 테니 놔둬.’ 하고 농담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 친구들은 이 일화를 두고두고 회자하면서 웃어요. 실제로 제 목소리가 자포자기한 상태 그대로였으니까요.
그때 잡고 있던 덩굴이 끊어질 수도 있었어요. 완전히 안심하지는 않았죠. 그나마 농담이라도 해서 자신감을 약간 얻고는 좀 쉬어서 힘을 회복한 다음 겨우겨우 나왔습니다. 제 기억에는 장화는 늪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발만 먼저 나왔어요. 그 후에는 안전한 나무 위에 올라서 장화를 건졌습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살아났습니다. 당시 제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재수 없게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유사(流砂, quicksand)라는 것이 있습니다.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래예요. 실제로 유사 때문에 사막에서 사람이 죽습니다. 이런 죽음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지구가 나를 먹어 버리는 죽음이구나, 이렇게 삶을 마감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셔터스톡에서.

SB: 선생님께서 늪에 빠지신 일화를 듣고 나니까 이런 질문도 드려 보고 싶어요. 자연이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기 때문에 나무도 잘라 내고, 습지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김산하: 자연은 위험하니 인간이 자연을 통제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SB: 네. 이런 논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김산하: 갈수록 그 논리를 더더욱 자주 맞닥뜨립니다. 우리 사이에서 위험에 대한 감 자체가 크게 달라지고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아이가 집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논다고 해서 누가 걱정했어요? 아무도 걱정 안 했죠. 지금은 엄마에게서 한시도 떨어져 있으면 안 되고, 아이 혼자 밖으로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죠. 위험이 바뀌고 있어요. 예전에는 위험하게 여겨지지 않던 것이 지금은 위험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즉 위험은 절대적이지 않아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물론 자연에는 위험 요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위험 요소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제거하고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비약이 있어요. 이와 관련해 제가 자주 드는 예가 있습니다. 산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해서 산을 없애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면 그것은 굉장한 비약이죠.
우리 주변에는 위험이 많아요. 하루에도 수십 명이 자동차 사고로 죽습니다. 그렇다고 자동차를 못 타게 하지는 않죠. 대신 법률을 제정해 그 질서 안에서 자동차가 굴러가게끔 합니다. 그런데 그조차도 너무 관대해서 문제잖아요. 음주 운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징역을 몇 년밖에 살지 않고, 출소해서 또다시 음주 운전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위험이 있지만, 위험하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저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 원칙이에요.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자연 속에 우리가 있다기보다는, 우리가 자연을 말살해 구석으로 몰아넣은 상황입니다. 옛날처럼 인간이 자연에 폭 파묻혀 살면서 호랑이 같은 위험 요소를 없애야 하는 상황도 아니죠. 그와는 반대로 자연이 갈 데가 없고 인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와중에 자연이 약간 있는 상태인데, 그런 자연을 위험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상황에서도 자연이 위험하니 없애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느 정도로 자연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는지 데이터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예를 들어 볼게요.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를 한 저울에 올려놓았다고 칩시다. 인간도 포유류이고, 포유류가 덩치가 제일 크죠. 이들을 모두 저울에 올려놓으면 그중 96퍼센트가 사람과 가축이에요. 96퍼센트요. 야생 동물은 4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사자도 있고 야생 동물들이 다들 잘 살고 있네 싶지만, 사실은 그 정도로 동물들이 구석에 몰렸다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도 저 나무가 위험하니 없애 달라, 저 모기가 안 좋으니 없애 달라고 한다면 정말로 자연 말살을 하자는 거예요. 그건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잖아요. 그것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고로 우리는 위험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하고요. 정말 위험한 것만 아주 선별적으로,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필요한 만큼만 제거하거나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잔디에 진드기가 있을 수 있으니 잔디를 홀라당 태우라는 식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런 민원을 넣어서도 안 되고, 그런 정책을 시행해서도 안 되며 사람들의 감수성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회복되어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셔터스톡에서.

 


생명 다양성 재단의 활동들

SB: 선생님께서는 생명 다양성 재단에서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습지주의자』에 나오는 생태 통로 사업은 실제로 생명 다양성 재단에서 시행한 바 있다고 알고 있어요. 일단은 생태 통로 사업이 무엇인지 소개해 주시면 어떨까요?

김산하: 생태 통로 사업은 생명 다양성 재단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많이 하는 사업입니다. 국가에서도 하지만, 보여 주기 식으로 할 때도 있어요.
도로 같은 것 때문에 서식지가 끊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도로는 너무 이질적이에요. 동물 입장에서는 세상에 그런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딱딱한 돌이 있어도 그렇게 민짜로 쫙 깔려 있고 하나도 울퉁불퉁한 데가 없으며 소음 방지 벽이 있어서 통과도 못 하고,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차갑죠. 그 위로는 엄청나게 빠른 뭔가가 쌩 지나가서 툭하면 죽는데, 그런 일은 자연계에 있을 수 없어요. 동물들이 도로에 적응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서식지가 쪼개지고 나면 도로 위로 이동하는 동물들이 많이 죽습니다. 개체군을 감소시킬 정도로 아주 큰 영향을 미쳐요. 저희는 그중에서도 특히 양서류, 즉 두꺼비나 개구리를 연구했었기 때문에, 그들이 많이 죽는 구간 아래에 관을 묻는 공사를 했습니다. 그들이 이 생태 통로를 통과해 가면 적어도 차에 치여 죽지는 않게끔 하는 공사였죠.
이런 중요한 사업을 다른 데에서도 많이 할 수 있게끔, 이를 알리기 위한 홍보 활동을 실제로 재단에서 했습니다. 영상도 제작하고 콘텐츠를 만들게 돼요. 우리 사업을 알려서 회원을 모집해야 하니까요. 『습지주의자』라는 책을 낸 것도, 그런 사업 자체가 일종의 이야깃거리인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이야깃거리를 활용하면 좋겠다 싶어서 책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SB: 생태 통로 말고도 재단에서 여러 활동을 하잖아요. 생태 예술을 지원하는 사업도 하고 계시고요. 올해에는 「쓰레기와 동물과 시」를, 작년에는 「동물축제 반대축제」도 하셨습니다. 이런 축제들을 소개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재단에서 추진하는 이런 활동의 목적도 함께 말씀해 주세요.

김산하: 환경이나 자연에 관심이 있는 단체는 많지만, 생명 다양성 재단은 그중에서도 생물 다양성과 서식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생물 다양성을 받들고 높은 가치로 여기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그런 데 일조할 수 있는 사업들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활동을 ‘과학 기반’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일단 전문 기관으로서 과학자들이 재단 내에 포진해 있어서, 과학을 기반으로 생태 이슈에 대응하고 목소리를 내고 좋은 자료들도 발간하는 동시에 교육 사업과 연구 사업을 하고, 심지어는 예술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중 제일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앞서 언급해 주신 「쓰레기와 동물과 시」나 「동물 축제 반대 축제」가 있어요. 이 두 가지는 일종의 캠페인인데, 같은 캠페인이어도 더 재미있는 방법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고, 문제 의식을 갖고 이슈를 제기하면서 문화적인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인터뷰 중인 김산하 박사. 사진: ⓒ ㈜사이언스북스.

「동물 축제 반대 축제」의 경우, 우리나라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퍼져 있는 동물 축제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산천어 축제는 아마 잘 아실 거예요. 모든 동물 축제가 그 지역의 동물들을 콘텐츠의 중심에 놓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동물들을 괴롭히거나 먹는 식이에요. 착취적이죠. 물론 먹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먹을 것인가, 어떻게 문화적으로 향유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결과적으로 대상을 가해하는 콘텐츠가 주를 이루는 축제가 많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동물 축제가 아니다 싶어서, 일종의 대안 축제이자 맞불 축제(일부러 울산 고래 축제 기간에 맞추었거든요. 거기 가지 말고 우리 축제에 오라는 것이었죠.)로서 저희가 기획한 것입니다. 2018년 7월 7일에 서울 혁신 파크에서 했어요. 좋은 반응이 꽤 많았고요. 동물 축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기했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에 한 「쓰레기와 동물과 시」는 여론을 일부러 겨냥했습니다. 콧구멍에 빨대가 박혀서 힘들어했던 바다거북이 SNS에서 유명해진 적이 있습니다. 때마침 한국에서도 이전에 없었던 법이 시행되었죠. 2018년 8월 2일부터 커피 전문점 내 일회용 컵 사용을 규제하는 법이 시행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회용 컵을 너무 많이 쓰고 있어요. 텀블러 하나만 들고 다니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인데 말이에요. 실제로 일회용 컵은 자연에 너무 많은 피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잘 안 알려지고 있어요.
이 사실을 알리자, 그리고 이를 위해 시라는 형태를 동원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동물이라는 렌즈를 통해 쓰레기 문제를 알리는 데 시라는 방법을 쓰자는 취지에서 ‘쓰레기와 동물과 시’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실제로 시인들과 문학가들을 초청하고, 일반인들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쓰레기 문제를 걱정하고 동물을 걱정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러브 액추얼리」라는 영화의 제목과 포맷을 따서 ‘쓰레기 액추얼리’라는 길거리 캠페인을 벌였고, 문화 행사도 겸했습니다. 일민 미술관에서도 행사를 했고요.
이 프로젝트는 생명 다양성 재단 혼자 한 것은 아니고 다른 곳과 같이 한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제일 잘 보여 주는 것 같아서 특별히 이 자리에서 소개해 보았습니다. 이외에도 제인 구달(Jane Goodall) 박사가 국제적으로 펼치고 있는 풀뿌리 환경 운동 ‘뿌리와 새싹’ 네트워크의 한국 지부를 운영하고 있고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요즘 운영 사정이 좋지 않아서 걱정이 많아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할 시기에 와 있기는 합니다. 열심히 잘 해 봐야겠죠.

제인 구달 박사와 김산하 박사.  『비숲』  342~343쪽에서.

 


동물에게, 그리고 사람에게

SB: 다시 선생님께서 쓰신 책 『습지주의자』로 돌아가 볼까요? 이 책에는 양서류 과학자가 등장하는데, 이 과학자의 한마디가 제게 인상적이었어요. “과학이 특별한 이유는 과학을 통해서 동물이 스스로 표현하게 해 준다.”는 말이에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저는 은연중에 과학을 인간의 호기심이 만드는 활동이자 산물이라고 여겨 왔던 것 같거든요. 이 과학자의 말을 듣고 나서 과학이 동물의 언어일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는 동물의 언어를 듣는 사람이 되고요. 그렇다면 자신이 연구하는 동물에 대해 과학자가 책임을 느낀다 해도 이상하지 않잖아요. 듣는다는 것은 반응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연구 대상에 무심한 과학자가 많다고 『습지주의자』에 나옵니다. 과학자는 팩트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입장도 있고요. 이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산하: 맞습니다. 보통 과학이라 하면 인간이 호기심을 갖고 대상에 내 자아를 들이대고 침투해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실 동물을 연구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고 봐요. 우선 고전적으로 동물을 잡아 배를 째서 안에 어떤 장기가 있는지 보고, 유전자도 추출하는 연구가 있죠. 한편 동물을 잘 관찰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데이터를 모아서 어떤 모형으로 통계를 분석해 가설이 맞는지 검증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제 연구 방식이에요.
이때 이 동물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판단하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과일이 아주 많을 때는 이것저것 마음대로 먹지만 과일이 적을 때는 선별적으로 먹습니다. 자신이 나름대로 판단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동물이 몸소 보여 주는 것이죠. 그들이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만 않을 뿐입니다.
그것을 과학이 말해 줍니다. 만약 과학자가 그냥 말만 한다면 ‘동물이 진짜 그 말을 했는지 어떻게 알아?’라고 사람들이 물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동물이 마치 언어처럼 체계적인 틀에 따라 그 행동을 했기 때문에 단순히 주관적인 ‘카더라 통신’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언어가 되며, 따라서 과학자는 동물을 대변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 분야를 열심히 연구하다 보면 동물의 언어를 내가 대변하게 되고, 그 언어를 통해 동물들의 개체수가 감소하고 진화 과정에 영향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앨버트로스의 뱃속에 플라스틱이 늘어나는 것을 정량적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엄마가 수 킬로미터를 비행한 끝에 찾아서 자신의 새끼를 먹이려고 기껏 가져 온 것이 플라스틱인 거예요. 심지어는 물고기를 놔두고 고른 것이 플라스틱이죠. 그런데 플라스틱을 새끼에게 먹였다는 사실을 과학자가 발견해서 세상에 드러냈다면 너무나 당연하게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죠. 당연히 들어야 합니다.

해변으로 떠내려 온 플라스틱 장난감과 새끼 앨버트로스. 셔터스톡에서.

그런 과학자들에게 ‘네가 비록 그런 생각을 했더라도, 앨버트로스의 뱃속에 든 플라스틱이 몇 그램이었다고 말하는 데서 멈추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폭력적인 사회입니다. 사회에 굴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르지만, 제 임무를 다하는 것은 아니죠. 잘못된 것은 개선해야 하니까요.
저는 과학자 본인도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고 사회도 그것을 절대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격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학자는 동물의 언어를 대변하니까요. 제인 구달 박사가 가장 강하게 피력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구달 박사는 처음으로 자신이 연구한 침팬지에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침팬지를 만나 보니까 인격체였다는 것을 바로 알았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욕을 먹었지만 이제는 이름 붙이기가 표준이 되었습니다. 동물 행동학의 역사에 그런 사례가 이미 있어요. 지금 참여하는 과학자들, 참여해 오던 과학자들 그리고 미래에 참여할 과학자들도 이런 역사의 유구한 흐름에 힘을 얻어서 새로운 과학자상이 될 좋은 비전을 그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SB: 알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습지주의자』의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자면 ‘나’라는 인물이 습지주의자로 변모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나’뿐만 아니라 팟캐스트의 진행자에게서도 변화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진행자가 이 팟캐스트를 “기획하면서 많이 변했습니다.”라는 말도 하잖아요. ‘함께’와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요.

김산하: 예. 이 진행자는 원래 그런 것에 관심이 별로 없었죠.

SB: 네. 그러다 왜 함께해야 하는지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깨달음과 변화의 결과로서 이 팟캐스트를 진행하게 되었구나 하고 짐작해 보았어요.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이 진행자처럼 선생님께서도 『습지주의자』를 준비하시면서, 혹은 대중에게 생명 다양성과 환경 문제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시면서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실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습지주의자』 234쪽에서.

김산하: 팟캐스트 진행자의 변화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맞습니다. 사실은 그 진행자가 곧 저이지만, 진행자에게도 변화가 있습니다. 사실 이 진행자는 모순적인 지점에서 팟캐스트를 시작하죠. ‘어차피 아무도 안 들어줄 팟캐스트이지만 나는 그냥 말할래.’ 그러면 애초에 왜 방송을 합니까? 사실 좀 웃기죠. 그런 성격을 지닌 친구예요. 저도 그런 면이 있죠.
어쨌든 이 진행자는 방송을 시작합니다. 습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을 독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잖아요. 맨날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청취자들과 이야기하고요. 급기야 청취자들을 오프라인으로 만나고 싶어 하죠. 습지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했지만, 사실은 오히려 사람에 대한 사랑이 싹트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환경주의자’는 사람을 안 좋아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영어에도 ‘misanthropy’, 즉 ‘인류 혐오’라는 단어가 있어요.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저도 툭하면 지나가다 마주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속으로 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해요. 특히 이 인터뷰를 위해서 강남에 오는 길에도, 제가 예전에 강남에 살았던 적이 있어서 이 동네를 잘 압니다만, 무언가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자들이 하도 많이 사는 동네여서인지 일단은 보행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동차들의 움직임이 눈에 확 띕니다. 다른 동네와도 달라요. 그런 것을 보면 화가 나서 욕이 나오죠.
그렇지만 강연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그래도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껴요.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변화를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는 그것을 표면화하는 거예요. 이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양쪽 모두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이 책에 어떻게든 표현된 것 같아요. 습지나 환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설득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해서도 새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고요.
보통 타협이나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두 대립 항이 중간에서 만나야 한다고 하잖아요. 중간 지점이라는 것이 꼭 물리적인 중간은 아닐지라도, 중간에서 만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고 손 뻗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작가로서 많이 느꼈어요. ‘사람들이 내 글을 왜 읽어야 하지?’라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 겸허하게 권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도 다가가게 되더라고요. ‘읽을 만한지는 모르겠으나 저도 한번 써 봤습니다, 한번 읽어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변화가 제게도 있었어요. 이를 통해서 저도 새로운 작가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습지주의자』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다음 단계를 말하는 것이 이를지 모릅니다만 저도 이 책 덕분에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예전에 편협함을 갖고 있었다면 그것을 극복해 보는 계기로도 삼고 싶다는 말씀까지 드리고 싶네요. 『습지주의자』는 그런 제 의지를 담으려 한 책입니다.

김산하 박사. 사진: ⓒ ㈜사이언스북스.

(과학+책+수다: 김산하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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