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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시인 페소아와 영장류 학자가 만난다면 『습지주의자』 : 김산하 편 ①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포르투갈 시인 페소아와 영장류 학자가 만난다면 『습지주의자』 : 김산하 편 ①

Editor! 2020. 1. 10. 12:00

이번 「과학+책+수다」의 주인공은 지난 11월 사이언스북스에서 『습지주의자』를 출간한 김산하 생명 다양성 재단 사무국장입니다. 『습지주의자』는 ‘나’라는 인물이 습지주의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생태 픽션이죠. 영상으로도 소개한 바 있는 이번 「과학+책+수다」를 좀 더 깊이 있게 경험하실 수 있게끔 녹취록 형태로도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 편은 『습지주의자』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책의 제목에 얽힌 이야기, 등장 인물의 습지성과 습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습지주의자』에 대해 독자 여러분께서 궁금해하실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이 책을 쓴 김산하 박사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습지주의자』를 읽어 보는 두 번째 편까지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열네 번째 이야기
포르투갈 시인 페소아와 영장류 학자가 만난다면
『습지주의자』 : 김산하 편 ①

 

인터뷰 중인 김산하 박사.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나는 습지주의자다

SB: 지난 11월 김산하 선생님께서 『습지주의자』를 출간하셨습니다. 이 책의 출간을 기념해 사이언스북스에서도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은 제목입니다. 제목이 ‘습지주의자’인데, 다른 곳에서 진행하신 인터뷰에서도 많은 분께서 제목을 흥미로워해 주셨더라고요. 그런데 ‘습지주의자’, 잘 쓰이는 단어는 아니잖아요.

김산하: 그렇죠. 많이 쓰이지 않는 단어죠.

SB: 책의 서두에 소개되어 있다시피 이 단어는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창시한 문학 사조 ‘습지주의’에서 가져오셨다고요. 사실 페소아의 습지주의는 습지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의 제목을 보면 독자 분들께서 ‘이 책은 습지에 관한 책이구나.’ 하고 짐작하실 것 같습니다.
일단 습지가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김산하: 지구상에서 대양, 바다를 제외하고, 아주 깊은 호수나 강의 중심부를 제외하고 물이 어느 정도 머물러 있는 곳은 전부 습지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머물다가 없어질 수도 있죠. 가령 ‘봄못’은 봄에 잠깐 물이 고여 있다가 나중에 말라 버리는 곳입니다. 이런 것도 습지예요. 천변, 강변도 다 습지입니다. 늪도 습지고요.
한마디로 땅이 있고 그 위에 물이 있으며, 물이 너무 깊지 않은 이상은 대부분 습지라고 봅니다. 이때 물은 어느 정도 유지되거나, 1년 내내 있거나 마를 때도 있죠. 편의상 수심이 6미터 이하인 것을 습지라고, 이상인 것을 강이나 호수, 바다라고 부른다는 말이 있기는 있습니다.
다시 한번 반복하면, 습지는 일시적이건 통상적이건 물과 뭍이 계속 함께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종류가 너무나도 다양하고, 사실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워요. 교과서를 봐도 갯벌도 습지고, 조그마한 연못이나 논 옆의 ‘둠벙’도 습지입니다. 호수나 강의 변두리도 전부 습지고요. 그렇다 보니 “습지가 굉장히 많네요?” 하고 사람들이 묻습니다. 맞습니다. 많아요. 굉장히 많지만 막상 가 보면 적어요. 하도 많이 파괴되었으니까요. 습지 중에 찰랑찰랑한 곳이 많으니까 그냥 메워 버려서 땅을 만들기가 너무 편한 거예요. 그렇다 보니 습지가 많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정의가 어렵지만 찾아 보면 많은데 지금은 부족한 그런 상황 같습니다.

ⓒ 장수진, 『습지주의자』 166~167쪽에서.

SB: 앞에서 ‘6미터’를 말씀해 주셨어요. 책에서도 소개하셨지만 이것이 람사르 협약에서 정한 습지의 기준이죠? 그런데 지금도 말씀하셨지만, 책에서도 과학자마다 습지를 다르게 정의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밖에 또 어떤 정의들이 있을까요?

김산하: 정의 중에는 해양을 아예 제외하는 것도 있어요. 해양은 별도로 바다로 분류하고, 습지는 내륙에 있는 것 중에서 물이 있는 서식지를 의미한다고 간단하게 정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SB: 그 정의에 따르면 갯벌은 어떻게 분류되나요?

김산하: 갯벌을 이야기할 때는 ‘해양’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서 ‘해양 습지’라 해야 한다고 정의합니다. 즉 일반 습지 안에는 갯벌이 포함되지 않는, 그런 정도의 차이입니다.

SB: 알겠습니다. 다시 책 제목으로 돌아갈까요? 이러한 ‘습지’에 ‘-주의자’를 붙여서 ‘습지주의자’를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제목을 지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산하: 사실 이 제목은 제 동생이자 페소아 연구자인 김한민 작가가 제안한 것입니다. 페르난두 페소아가 쓴 시 중에 「습지들」이라는 시가 있거든요. 굉장히 복잡한 시여서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몰라요. 저도 그 시의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들어 보니 어차피 이해를 위해 씌어진 시가 아니라고 해요. 다만 습지주의라는 말이 너무 좋아서 차용해 온 것입니다.
제가 이 말을 어떻게 해석했느냐면, 일단 페소아라는 시인이 참 특이하거든요. 이명(異名)이 많은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람이었다가 저 사람이었다가, 고정적인 실체로 존재하는 단 한 사람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동시에 머무르고 있는 분산적 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페소아 본인이 습지와 닮은 점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제가 습지주의라는 말을 좋아하는 데는, 습지라는 너무나 특이한 서식지에 애착이 간다는 것 이상의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습지를 인생의 방향으로서 추구할 가치가 있다는 말까지 하고 싶은 거예요. 습지성 자체도 그렇고요. 습지가 지구에서 하는 역할도 그렇고, 습지가 생기기 위한 원리도 그렇고요. 습지에 대한 이 모든 것이 단순한 팩트로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인간이 추앙하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러고 있어요. 제가 바로 습지주의자인데, 이 책은 그런 것을 여러분에게도 제안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이토록 중요한 서식지

SB: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비숲』과 『습지주의자』 모두 책 제목에 장소, 서식지가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서식지들은 물과 관련이 있어요. 서식지로서 비숲과 습지의 공통점과 차이점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김산하: 서식지라는 말이 참 중요합니다. 동물권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인식되다 보니 동물 자체, 개체와 존재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알아주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 개체에 천착하는 데 반해, 그 개체가 살기 위해 필요로 하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몰라주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물, 특히 야생 동물은 서식지가 같이 언급되지 않는 이상 거의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어요.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동물이라고 말하기 힘든 것은 그 동물이 서식지로부터 완전히 제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태적 끈이 잘려 나간 상태에서 동물만 추출해 동물원에 가져다 놓은 것이라, 동물원에서 동물을 경험할 때도 제대로 경험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식지가 중요합니다. 지금 이 정도로 야생 동물이 멸종한 것도, 무엇보다 서식지가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래서 서식지에 매우 천착하는 편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서식지만 잘 보전해도 웬만한 동물은 다 지킬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습지주의자』 116쪽에서.

비숲과 습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여쭈셨죠? 사실 생물이 가장 풍부하게 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는 밀림입니다. 밀림만 한 곳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밀림이 없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생물 다양성의 보고가 어디일까요? 저는 습지라고 생각합니다. 밀림, 습지 그리고 산호초. 이 세 군데가 공통적으로 지구상에서 생물 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들이거든요.
차이점을 굳이 표현한다면 밀림은 수직적인 곳, 습지는 수평적인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적거나 없기 때문에 수평적으로 보이는 대신, 그 안에는 물과 어우러진 것들이 훨씬 더 풍부하죠. 밀림도 물은 있지만 이곳에서 물은 습기로서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반면 습지에는 물이 아예 덩어리로 존재합니다. 그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습하다는 점, 식물이 많으며 습한 곳과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생물이 엄청 많이 살고 있다는 점은 비숲과 습지가 같습니다.
저는 외국의 밀림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감동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우리에게 친근한 습지로 옮겨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직적인 곳에서 수평적인 곳으로 초점을 조금 옮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SB: 개인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의식주(衣食住)가 필수 조건이듯이 습지나 비숲 같은 서식지가 생명체들에게도 일종의 집으로서 필수적일 테니, 제목을 통해서 이를 강조하셨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집은 거주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자본을 축적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정치인들 중에는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토목 공사를 즐겨 하잖아요. 이때 가장 희생되기 쉬운 땅이 습지 같아요. 한국의 습지 보전 상태, 어떻게 진단하시나요?

김산하: 집과 서식지의 관계가 흥미로운데요. ‘서식지가 동물의 집이다.’라고 쉽게 말하면 ‘우리 집 같은 거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차이점이 있어요. 집은 우리의 전유물이죠. 즉 전용 공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다릅니다. 집에 침입하는 것은 불법이고요. 말씀하신 대로 집은 심지어 재산이잖아요.
반면 동물에게는 전용 공간이 없어요. 내가 굴을 파고 들어가 있어도 갑자기 다른 놈이 들어올지 모릅니다. 그것을 막을 방법도 없어요. 싸우는 수밖에 없죠. 모든 것이 혼재하고 있고, 집이라고 해도 여러 사람과 같이 있는 삶의 터전이지 나 혼자 열쇠를 따고 들어가는 곳은 아니에요. 그렇다 보니 서식지를 집으로 이해하는 것은 단편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정확하지는 않죠. 서식지는 집보다 훨씬 넓고 포용적이고 생태계적인 개념입니다. 반면 집은 개체적 개념이고요.
게다가 집이 있으려면 전기를 공급해 주는 한국 전력의 전선, 가정 용수를 공급해 주는 수도관 등이 밑에 깔려야 하는데, 보통은 그러한 망은 제외하고 집을 보는 경향이 있죠. 우리가 집에 대해 지닌 협소한 생각이, 서식지도 협소하게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숲』 102쪽에서.

앞에서 한국의 습지 보전 현황을 물어 보셨죠? 이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한국에서 습지를 그런 식으로 보전하는 바람에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씀드리려 한 것입니다. 보전해 봤자 몇 군데뿐이죠. 그 대상이 우포늪이라면 우포늪만, 주남저수지라면 주남저수지만 고립시켜서, 혹은 그중에서도 아랫부분이나 윗부분만을 주요 부분으로 특정해서 보전하는 식입니다. 그 서식지 하나만 보전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면 새들은 거기서 잘 살면 되고, 우리는 이쪽에서 잘 살면 된다고요.
그런데 사실 전체 면적을 봤을 때 인간이 차지하는 면적은 90퍼센트 이상으로 너무나도 넓고, 습지에 할애된 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있거든요. 한국의 습지 보전 상태는 아주 안 좋아요. 람사르에 등록된 습지가 우리나라에 스물세 곳인데, 지정할 때마다 난항을 겪은 데다 이 습지들 안에서도 대부분 인간 활동이 벌어지고 있어요. 인간 활동을 아주 철저하게 막은 데는 거의 없어요. 람사르 협약과는 별개로 환경부에서 보전 습지로 지정하려 하면 그 지역 주민들은 언제나 반대합니다. 지역 개발에 걸림돌이 될까 싶어 반대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한국에서 습지는 보전되지 않고 있고, 이름 없는 작은 습지들은 오늘은 있어도 다음 주에는 없어져 있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예요. 제가 이 책을 통해 작게나마 한국에서 습지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이 책을 집필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모호함과 물렁함, 나와 습지의 접점


SB: 이제 본격적으로 『습지주의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습지주의자』는 등장 인물이 있고 서사가 있는 픽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요. 과학자로서 ‘습지’라는 과학적 대상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이러한 형식을 택하신 이유가 무엇일지요?

김산하: 어떤 사람들은 ‘과학자면 과학적인 글쓰기를 해야지, 왜 딴 데로 넘나드느냐?’라는 비판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과학자이기는 하지만, 저 또한 과학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제가 갖고 있는 과학적인 시각과 그 밖의 다른 시각을 총동원할 필요가 있어요. 심지어는 제가 말하려는 대상 자체가 여러 시각을 요구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습지가 바로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습지에 대한 논문을 모조리 모아서 습지에는 어떤 생산성이 있는지, 어떤 동물이 사는지 등을 열거할 수 있겠죠. 그런 책을 낼까도 생각했었지만, 거기에는 빠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팩트를 알고 나면 습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습지를 어떤 방향으로 보전해야 할까요? 나는 습지와 관련이 없는데, 나와 습지의 접점은 무엇일까요? 사실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사회가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고 봐요. 저는 오히려 이 사회가 그런 것들을 더 궁금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습지에 대한 팩트가 사람들에게 그다지 의미 있는 정보가 아니라면, 제가 팩트를 제안해 봤자 사람들이 안 보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 대상의 진짜 소중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역설하기 위해서 책을 쓰려면 오히려 여러 관점이 요구된다고 생각해요. 관점 중에는 과학적 관점 못지않게 인문학적·서사적·철학적·미학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일부러 여러 관점을 나름대로 동원한 것이고요. 특히 픽션의 형식을 따르자면 그 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어떤 성격과 세계관을 갖죠. 그 성격과 세계관에서 독자들이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접점만 찾을 수 있다면, 습지에 대한 정보는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습지가 좀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한다면 저는 제 목적을 달성한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그러한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이고요.

『습지주의자』 119쪽에서.

SB: 접점이라고 말씀해 주신 부분이 흥미롭네요. 사실 이 책에서도, 주인공 ‘나’가 자신이 작업하게 된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스스로 놀라는 부분이 나오죠? 저는 그것이 주인공과 습지가 접점을 찾는 장면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것이 곧 이 책의 줄거리이기도 하고요.
이번에는 또 다른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이 책은 구성이 조금 특이해요. 홀수 장은 「장」이라는 한 축을, 짝수 장은 「무대」라는 다른 한 축을 이룹니다. 「장」에서는 주인공 ‘나’가 의뢰받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무대」에서는 팟캐스트 「반쯤 잠긴 무대」가 진행되죠. 이렇게 「장」과 「무대」라는 두 축이 번갈아 나오는데, 이런 구성에서 의도하신 바가 무엇인지요?

김산하: 앞에서 말씀드린 접점에서 출발하자면, 사실 저는 아주 일반적인 사람들하고 접점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제일 먼저 고민하고, 여유가 있을 때에나 다른 세상도 쳐다볼 수 있겠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야말로 사실은 다양한 것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남자들만 해도 성격이 다양하지만 군대에 가면 특정한 성격을 요구받거든요. 깍듯하게 윗사람을 모시고 일을 똑 부러지게 해야만 사회에서 성공할 것이라 여기면서 예전에, 어린 시절에 갖고 있었던 많은 것을 폐기하기 시작합니다. 또는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다른 걸 폐기하거나 변형하기도 하죠.
책을 보면 이런 말도 나옵니다. 주인공은 성격이 물 흐르듯 하고, 특별히 목적 지향적이지 않아요. 그래서 자기 계발서만 보면 내게 잘못했다고 혼내는 것 같다고요. 이런 성격을 우리는 나쁘게만 봅니다. 그런데 개인의 성격을 자연에 비유해 본다면, 이런 성격이 바로 습지에 해당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뭔지 명확하지 않고, 경계에 있어서 물이 넘칠 때는 강이고 가물 때는 땅인 것 같고요. ‘야, 습지 너는 네 성격이나 제대로 규정해.’라고, 만약 서식지끼리 잔소리를 한다면 바다와 숲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죠.
사실 그러한 모호함 속에 엄청난 가치가 있어요. 그것을 일반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저는 접점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픽션이라는 장치를 택했습니다. 픽션을 읽을 때는 독자들이 자신을 주인공에게 대입해 보니까요. 한편 주인공이 듣는 팟캐스트를 통해서는 습지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쪽으로만 서술될 때 생길 수 있는 지루함이나 단조로움을 벗어나는 동시에, 일상 생활(물론 책을 보는 개인의 상황은 다 제각각이겠죠.)에서 겪듯이 자연스럽게 그 중요성과 개념이 독자들에게 흘러 들어가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중 장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일종의 실험이었는데, 제가 처음에 이 책의 담당 편집자께 어떤지 여쭈었을 때 ‘이 인물에게 투영해 볼 수 있는,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는 답을 들어서 굉장히 반가웠어요. 담당 편집자께서 그렇게 느끼신 부분이 있다면 아예 실패한 것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SB: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나’라는 인물에게 공감한 부분이 몇 군데 있었거든요. ‘나’는 “내 인생은 모든 것이 조금 늦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죠. 사회 생활에 서투르기 때문에 “아무도 아무와 마주하지 않는” 도시 생활을 하면서 주어진 매뉴얼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 말고는 별 다른 수가 없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것을 의식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 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나’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 주는 단어가 “물렁하다.” 같아요. 저도 물렁하다는 말을 꽤 듣거든요. 앞에서 습지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면서, 습지성과 같은 개인의 성격이 생태적 감수성과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말씀해 주신 부분이 흥미롭네요.
‘나’라는 인물에 대해 한 가지 더 여쭐까 합니다. 이 인물은 김산하 선생님과는 다른 인물이잖아요?

김산하: 비슷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이죠.

SB: 그렇죠. 그런 만큼 이 인물을 새로 구상하셔야 했을 텐데, 어떤 과정을 거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산하: 소설은 처음 쓰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쓰나 궁금해지더라고요. 저는 혼자 앉아서 고민하는 편이에요.
일단은 제 막냇동생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막냇동생은 제 바로 아래 동생인 김한민하고는 성격이 많이 달라요. 사실은 좀 알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예요. 형들이 하는 일에 삐딱선을 타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좋은 동지가 되었고요. 저는 제 막냇동생이 우회로를 거쳐서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방금 “물렁하다.”는 말씀도 해 주셨는데, 동물로서는 개구리를 염두에 두고 인물을 구상했습니다. 이 책에도 개구리가 나오지 않습니까? 인간이 보기에 개구리는 어떻게 이렇게 자기를 보호할 장치가 없을까 생각될 정도예요. 하도 느리고,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는 8차선 도로에서 겨우 폴짝폴짝 뛰어가는 걸 보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죠. 길거리에서 차에 치인 개구리를 보더라도 ‘치일 만도 하네.’ 싶고요. 이런 세계관으로 보면 개구리는 거의 무의미하고, 어처구니없이 뒤처진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개구리가 자신의 환경 안에 있을 때는 물렁한 덕분에 피부 호흡을 하잖아요. 우리는 맨날 축축한 데 있으면 피부가 썩어 들어가고, 너무 건조한 데 있으면 피부가 갈라지고 난리가 나죠. 반면 개구리는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실 엄청난 능력이에요. 만약 우리에게 그 능력만 있었다면 여름을 훨씬 잘 지냈을 거예요. 실제로는 그 능력을 갖추지 못한 포유류이다 보니 여름이 되면 맨날 에어컨을 틀어야 합니다.

청개구리(Hyla japonica)의 사진. 셔터스톡에서.

인간에게 물렁함은 단점으로 여겨지지만, 인간에게도 장점이 무척 많다고 생각해요. 물렁한 사람들은 꼭 정 때문은 아니더라도 대부분 사람들에게 여지를 많이 주어요. 다른 사람들이 먼저 행동하게끔, 또는 먼저 의견을 개진하게끔 여지를 준 다음에 결단력 있게 판단하는 경우도 있어요. 절대로 그냥 딱 잘라내지는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람을 굉장히 편안하게 해 주고, 심지어는 안 될 일도 되게 하는 경향도 있어요. 똑 부러진 사람은 자신이 물렁하지 않으니까, 그러한 기술을 익히려고 화술을 배웁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물렁한 사람들은 성격 때문에 이상하게 욕을 먹죠. 물렁해서 일을 맺고 끊는 것이 불분명하다고요. 이렇게 우리의 다양성을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나’를 구상할 때 물렁하다는 특징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막냇동생도 참고하면서 이 인물의 특성과 조합해 보려고 애를 썼고요. 일단 이렇게 조합해 놓으면 이야기가 차츰 전개되어 가면서 인물의 윤곽이 구체적으로 잡히겠지 생각했습니다.

 

 

‘연결’은 생태적인 것과 맞닿아 있다

SB: ‘나’는 종종 어린 시절을 회상합니다. “윤슬에 대한 향수가 있다.”는 말도 하고요. 이런 회상 장면이 몇 차례 나오다 보니 어린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것과, ‘나’라는 사람이 생태적인 관점이 얻는 것 사이에도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산하: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렁함과 연장선상에 있는 지점이에요. 과거의 기억이나 관계에 집착한다든가, 끈을 놓지 못한다든가 하는 성격을 우리 사회는 ‘미성숙하다.’고 일축해 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마마보이’라서 나이 든 현재에도 판단을 내릴 때마다 어머니에게 전화한다면 문제가 크겠죠. 그렇지만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한 기억이 지금도 내 가슴 속에 너무나 생생히 살아 있고, 그것을 떠올리면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면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과거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시대에 뒤처져 있다고 폄하합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과거와 현재를 시간의 끈으로 연결하는 거예요. 그러한 시간의 끈이 사실은 생태적인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생태란 진화의 속도가 저마다 다른, 엄청나게 많은 것이 동시에 한 다발로 엮여 있는 것이거든요. 자연에는 거북이도 있지만 파리도 있죠. 그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고요.

『습지주의자』 65쪽에서.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빠른 템포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때그때의 뉴스를 주입받고 있고요.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은 존재일 수 있거든요. 주인공 ‘나’가 그렇죠. ‘나’는 옛날이 너무 많이 생각나요. 지금 현장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렇습니다. 이상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성질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나중에 습지에도 점점 감화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가 갖고 있던 특질 덕분에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독자들이 습지에 감화된다면, 제 글 덕분이라기보다 독자 자신이 갖고 있는 습지성 덕분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나는 옛날을 잘 기억해.’라는 것도 한 예가 되겠죠. 자신의 자양분으로써 이런 작품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 책에도 녹여 보고 싶었습니다.

SB: 이 책을 보면 습지를 다루는, 습지가 배경인 어린이 책들을 몇 편 소개해 주시는데요. 지금 말씀해 주신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이 어린이 책들의 본문 몇 컷을 이 책에도 실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었죠.

김산하: 그렇죠. 너무 오래 걸렸죠.

SB: 네,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 싣지 못한 이미지들이 있었잖아요. 아쉬우니까 혹시 이 자리에서라도 특별히 더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면 어떨까요?

김산하: 책에서 소개해 드린 것 중에는 프랑스에서 출간된 『물총새(Martin-Pêcheur)』가 있습니다. 1940년대에 출간되어 굉장히 오래된 책이에요.
물총새의 사진을 누구나 좋아해요. 너무나 예쁘게 생겼죠. 그런데 『물총새』는 그런 물총새를 기가 막히게 잘 그린 데다, 한 물총새 부부의 일생을 옆에서 아주 조용히 잘 관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있을 법하지 않은, 과거에 평화로웠던 한 프랑스 전원 마을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지만 아주 로맨틱하게만 보이지는 않아요. 이 물총새 부부가 힘들게 살거든요.
이 물총새 부부는 새끼를 굴에서 키웁니다. 이때 재미있는 것이, 저는 새끼들이 편안하게끔 푹신푹신한 털 같은 것을 바닥에 깔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고 남들이 먹고 남긴 생선 뼈를 깔아 주더라고요. 비린내도 나고, 뾰족뾰족하니 불편할 것 같죠? 그런데 그 안에 몇 살 되지도 않은 털북숭이 새끼들이 살고 있는 장면이 아예 그림으로 나옵니다. 다른 데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는 정말 훌륭한 책이에요. 한국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기회가 있다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놀드 로벨(Arnold Lobel)의 『개구리와 두꺼비는 친구(Frogs and Toads Are Friends)』(엄혜숙 옮김, 비룡소, 1996년)도 책에서 소개했습니다. 친구 사이인 개구리와 두꺼비가 여행도 가고 소풍도 가는 책이에요. 양복도 입고 있어요. 넥타이까지 매고 있는 모습이 좀 웃기기는 하지만, 습지를 정말 잘 보여 주는 초록색과 황토색, 갈색으로 쭉 묘사되어 있어서 정말 좋은 책입니다. 미감이 습지답고, 어린이에게 보여 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 책도 옛날 책이에요. 내용이야 아주 자유로워도 좋죠. 습지를 과학적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해야만 좋은 것은 아니니까요.
책에서 소개하지 않은 책 중에서는 레이먼드 브릭스(Raymond Briggs)의 『괴물딱지 곰팡 씨(Fungus the Bogeyman)』(조세현 옮김, 비룡소, 2004년)를 언급하고 싶어요. 레이먼드 브릭스는 『눈사람 아저씨(The Snowman)』(마루벌, 2007년)로 유명하잖아요. 그림을 너무 예쁘게 잘 그리는 작가입니다.

『개구리와 두꺼비는 친구』 (왼쪽)와 『괴물딱지 곰팡씨』 (오른쪽) 표지. 제공 ⓒ ㈜비룡소.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더럽다고 여기는 것을 곰팡 씨가 오히려 깨끗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곰팡 씨는 건조한 것을 싫어해서 “너무 건조하네, 빨리 축축해져야지.” 하고 저쪽 통에 담긴, 우리에게는 징그러워 보이는 액체에 손을 담급니다. 그러고는 “아이고 좀 시원하다.” 하는 식이에요. 그리고 잠자리가 눅눅하지 않아 불만이라며 더 눅눅하게 만들려고 애를 쓰고요.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아, 습지에 사는 동물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관을 전복시켜 주는 좋은 책으로 이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세계까지도 가 닿을 수 있는 연결

SB: 앞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연결’이라는 단어를 써 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단어가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했어요. 책에도 “나와 무관해 보이던 대상들에게 끈을 이어서 유관한 무엇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문장도 나오고요. 세계를 인간과 타자들, 비인간 생물들이 연결되고 어우러져 있는 공간으로 보는 것이 생태학적 관점이라는 내용도 나오니까요.
나와 다른 동물들을 연결하는 방식은 다양한 것 같습니다. ‘이 동물은 귀여워.’라고 느끼는 것도 연결의 한 방식일 테고, 이 책에서 지양해야 할 것으로 특별히 언급되기는 하지만 ‘생태계는 나에게 쓸모가 있어.’라는 기능주의적 관점도 마찬가지로 연결이기는 하잖아요. 나와 생태계는 아무 관련도 없다는 관점과는 분명 다르고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런 관점을 경계하고 지양해야 한다고 책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연결을 지적하신 까닭이 궁금한데요.

김산하: 맞습니다. 제가 경계한 기능주의적 관점도 연결은 연결이죠. 그런데 그런 관점은 예를 들어 인터넷 선이나 전선 따위의 연결을 생각하기 쉬워요. 저는 그것을 ‘고체적 연결’이라고 봅니다. 아귀가 딱 들어맞는 식의 연결이죠. 기능주의적 연결인 것이고요. 개는 예쁘니까 좋아하고, 쥐는 징그러우니까 싫어하는 배타적 연결이기도 합니다. 단선적 연결이고요.
반면 ‘습지적 연결’은 액체적이에요. 물길과 같은 연결이죠.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고 한번 연결되면 쓱 번집니다. 고체적으로 연결되는 것과는 달리, 다른 대상에도 저절로 쓱 번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방식의 연결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능주의적 연결, 단선적 연결, 고체적 연결은 자신이 포착한 대상에만 국한되고, 그 대상이 막다른 골목이 되어서 거기서 끝납니다. 어떻게 보면 연결의 본성을 배반하는 연결이에요. 연결이 거기서 멈추니까요. 연결에는 그다음 연결까지 일어날 수 있는, 연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연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습지적 연결이 진짜 연결이라고 봅니다. 어디서 끝날지 통제될 수 없고, 밑으로 스며서 토양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고, 증발해서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고 흘러서 또 다른 데로 갈 수도 있잖아요. 바로 그래서 더욱 생태적으로, 내가 몰랐던 원리로 내가 몰랐던 진짜 생물에게도, 세계까지도 가 닿을 수 있는 연결이 습지적 연결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경계한 기능주의적 관점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산하 박사.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SB: 그렇지만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는 기능주의적 관점만 한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산하: 그렇죠. 그런 관점을 보이는 것이 딱 현대인의 모습이죠. 그렇다 보니 현대인들을 그렇게 설득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맞아요. 저는 이 관점을 완전히 폐기해야 할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습지의 기능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거든요.
습지의 기능은 정말 많습니다. 책에서도 수질 정화 기능, 홍수 방지 기능, 중금속 순환 기능, 질소 순환 기능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능을 소개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 아이가 숙제를 너무 안 한다고 합시다. 이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서 “숙제를 잘 해 오면 내가 맛있는 것 사 줄게.”나 “용돈을 줄게.”라고 제안해요. 이런 일 많죠? 독자 여러분께서도 저보다 더 많이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이런 설득의 단점을 누구나 알고 있잖아요. 몇 번을 이렇게 설득하는 순간, 이 아이는 숙제를 할 때마다 항상 대가를 요구하게 됩니다. 용돈과 간식이 아니면 동기 부여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가죠.
이 이야기의 교훈은, 단기적인 설득과 승리를 위해서 일단 쓰는 전략이 장기적인 후퇴를 가져오는 측면이 꼭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능주의적 관점을 전략적으로 제시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승리를 노려야죠. 설령 필요할 때는 단기적으로 그 카드를 썼더라도, 더 근본적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숙제는 꼭 그렇게 누구에게 이끌려서 할 게 아니야. 이건 네 삶에 중요한 거야.”라고 근본적으로 설득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생물의 정당성에 대한 변호도 기능주의적으로 하기는 하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데까지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결과적으로 기능적인 것만 보전하고, 아닌 것은 필요 없다고 여기는 사람으로 점차 굳어져요. 사회적 의사 결정 과정마저도 그렇습니다.
정리하자면 저는 기능주의적 관점을 아예 반대하거나 폐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면에 나서거나, 기능에 대한 논의에 지나치게 치중하거나 국한되는 데는 반대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리이기도 한데 그렇게 성공하지도 못했어요. 여러 책과 사람이 그렇게 많이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종이 멸종되고 서식지는 파괴되고 있거든요.
대신에 저는 좀 더 인문학적으로, 가치 중심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전문가가 중요하다고 말해서가 아니라 개개인이 스스로 느껴서 바뀌기를 바라요. 따라서 개개인의 가치에 좀 더 손을 대고 싶은 것이 저의 의도이기도 합니다.

SB: 알겠습니다. 이다음으로는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연결되는 방식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를 여쭈려 했는데, 이미 습지적 연결을 말씀해 주셨어요. 혹시 더 덧붙일 말씀이 있으실까요?

김산하: 앞선 대화의 연장선상에서 동물과 우리의 연결에 대해 첨언하자면, 개나 고양이는 예쁘고 다람쥐는 귀여운데 개구리는 좀 이상하게 생겼고, 비둘기는 싫다는 식으로 하는 연결은 선택적이잖아요. 그뿐만 아니라 나 자신은 내 마음에 드는 것만 좋아하는 존재로 점점 굳어 갑니다.
게다가 지금 든 개구리의 예시는 철저히 외모 지상주의적이죠.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맺는 관계가 우리의 기호에 기반을 둔 주관적 수준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주관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주관이 교양과 지식, 정보와 다양한 토론을 받아들이면서 형성된 것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동물과 맺는 관계는 오락 중심적이자 기호 중심적이며, ‘우리 아이가 저걸 보면 좋아하니까.’ 정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아까워요. 사람들은 자신이 풍부하게 경험하기를 바라잖아요. 그런데 탐구하면 할수록 보물 상자나 다름없는, 저렇게 많은 동물과 자연을 두고도 왜 현재에 머무느냐는 것입니다.
꼭 ‘자연 보전에 앞장서서 나서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교양의 측면에서라도 시야를 자연으로까지 넓혀 주시면 그것은 분명히 자양분이 됩니다. 그렇다 보면 설령 다른 일을 하더라도,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여론을 수렴할 때 올바르게 참여하는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콘텐츠 차원에서라도, 자연과 다양하게 관계 맺기를 추천합니다.

 


습지주의 선언과 행동 강령

SB: 책을 보면 팟캐스트 「반쯤 잠긴 무대」의 진행자가 이 팟캐스트의 대상으로 “스스로 도시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콕 집어 말합니다. 그건 결국 선생님께서 이 책의 독자로서 이들을 호명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참에 다시 책 제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습지주의자’라는 제목을 이 책에 다셨습니다. ‘-주의자’라는 표현에는 실천과 변화, 행동 강령이 뒤따를 텐데요. 그렇다면 ‘습지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도시인들에게 특별히 권할 만한 실천, 변화, 행동 강령이 있으신지요?

김산하: 현재 사회 곳곳에서 여러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채식주의 운동이 있고요. 동물권 운동, 양성 평등 운동, 성 소수자 운동, 노동 정의 운동 등도 있습니다. 모두 사회를 개선해 보려는 운동입니다. 옛날에는 이런 운동을 무시한 측면도 있잖아요. 그냥 돈을 벌고 개발하고 발전하고 성장하는 데만 혈안이 되었죠. 과거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해 버렸던 것들을 다시 챙기는 분위기가 이제 조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요.
그럴 수밖에 없죠. 현재 사회가 여러 한계에 봉착해 있으니까요. 설령 앞서 나열한 운동들을 굳이 진영이라고 부른다면, 조금 다른 진영에 있다 하더라도 대안적인 삶에 관심 있고 그것을 찾으려 하는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 『습지주의자』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습지에 대해 큰 관심을 쏟게 되는 일은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저는 설령 습지에 대한 지식이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더라도, 습지가 함의하는 바에 대해서는 분명히 모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해요. 많은 독자께서 습지가 함의하는 다양한 의미와 장점, 추구하는 바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대안적인 삶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평안이 매우 절실해요. 이 세상을 그냥 다 받아들이고 적응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이미 잘 살아가고 있을 테고, 세상이 너무나 재미있겠죠. 그런 사람들은 마음이 우울하고 심란해서 숨을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우울하고 심란한 사람들, 숨을 곳이 필요한 사람들은 습지에 한번 가 보십시오. 옛날에 만화 「영심이」에서도, 마음이 심란한 날 영심이는 꼭 강변에 앉아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제 기억에 그 장면이 좋았어요. 노을이 지면서 어둑어둑해지는 저물녘 풍경을 작가가 잘 표현했더라고요.

『습지주의자』 77쪽에서.

우리에게는 그런 곳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가 보면 마음이 정리됩니다. 저는 다른 것보다, 가서 뭘 배우라, 익히라 하는 것보다도 진짜로 자신이 심란할 때 강변으로, 연못 근처로, 습지로 가 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그렇다고 다리 위로 오르라는, 뛰어내리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곳에서 연결됨을 느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을 느끼신 분들이 나중에 습지주의자가 되셔서, 아니면 적어도 제게 공감하셔서 나중에 우리가 느슨한 연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도 품어 봅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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