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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신의 보이지 않는 손 - 역사를 바꾼 유행병들 본문

완결된 연재/(完) 무서운 의학사

1. 사신의 보이지 않는 손 - 역사를 바꾼 유행병들

Editor! 2020. 2. 7. 14:37

2020년 새해 벽두의 가장 큰 화제는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입니다. 12월 말 중국 우한 시에서 전 세계로 확산 중인 이 유행병은 어느새 확진자가 2만 명을 넘겼고,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 에이즈의 뒤를 이어 판데믹(pandemic, 범유행 전염병)으로 발전할지를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습니다.

마스크와 손세정제 사재기부터 귀국 교민들의 격리 수용 장소를 둘러싼 진통까지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이 사태. 이 전염병에 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이언스북스는 2020년 3월 출간 예정인 이재담 교수님의 『이재담의 에피소드 의학사 1권: 무서운 의학사』에서 6편의 글을 미리 보는 특별 연재를 마련했습니다.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장, 울산 대학교 의무 부총장을 역임하면서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200편 이상의 의학사 관련 칼럼을 쓰신 ‘글 쓰는 의사’ 이재담 교수님의 『에피소드 의학사』는 무서운 / 위대한 / 이상한 이라는 3개의 키워드를 통해 그동안 고루하게만 여겨졌던 의학의 역사에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기획입니다. 『무서운 의학사』의 전체 내용 중에서 역사를 바꾼 치명적인 전염병과 그에 응전하는 인류의 이야기들을 골라 모은 이 특별 연재가, 자의반타의반 ‘인도어(indoor)’ 생활이 강제되고 있는 요즘 인류와 전염병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실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무서운 의학사

1. 사신의 보이지 않는 손
역사를 바꾼 유행병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에 영감을 받아 그린 피테르 브뢰헬의 「죽음의 승리」.  public domain

복잡한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아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역사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역사를 바꾼’ 유행병이란 말은 지나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사 이래 질병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대 요소 중 하나라고 간주해야 할 경우는 실로 적지 않았다. 그중 많은 인명을 앗아 간 유행병의 기록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최강의 도시 국가 아테네에 창궐한 페스트(또는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으로 추측되는 전염병)는 지도자 페리클레스(Perikles, 기원전 495~429년)를 포함해 아테네 인구의 반 이상을 죽였고, 이 막심한 피해에서 회복하지 못한 아테네는 멸망하고 말았다. 그리스 이후 서양 유일의 세계 제국이었던 로마의 멸망은, 기원후 125년에 탄저병과 북아프리카 속주의 말라리아, 169년 페스트의 유행으로 국력이 크게 쇠락한 결과이기도 했다. 중세에도 페스트는 1347년과 1351년 사이의 기간 동안 전 유럽 인구의 3분의 1(약 2000만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냈다. 당시 봉건 사회와 교회의 절대 권위는 페스트로 치명타를 입었다. 학자들은 이 유행이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의 배경이 되었다고 평한다.

1493년 출간된 『세계 연대기』에 실린, 흑사병을 풍자한 삽화.  public domain

16세기 초 신대륙 발견과 함께 유럽에서 남아메리카로 전파된 홍역과 천연두는 95퍼센트에 이르는 원주민의 목숨을 앗아 갔다.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 1485~1547년)가 수백의 병력으로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텍스코코 호수 한가운데의 섬에 터전을 잡은 아즈텍 왕국의 수도. 현재는 호수가 메워져 멕시코시티란 이름으로 바뀌었다.)을 손쉽게 점령한 것은 당시 아즈텍 인이 하루에 1,000명꼴로 죽어 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병에 걸리지 않는 스페인 사람들이 신으로 추대될 정도였다. 이와 달리 전염병에 상대적으로 면역을 가졌던 북아메리카 원주민을 제압하기 위해 유럽은 더욱 강력한 총과 100년이라는 세월을 필요로 했다.)

남아메리카도 매독이라는 새로운 질병을 유럽에 선사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년)의 선원 중 일부가 옮겼다는 매독은 몇 달 만에 전 유럽에 퍼져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희생자 중에는 영국 왕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년)도 있었다. 매독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왕이 죽을 때까지 영국 국민은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여섯 명의 아내를 두고 그 중 두 명을 처형하며 폭정과 공포 정치를 펼친 헨리 8세의 초상화.  public domain  

의학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던 20세기가 다 지나도록 역병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군인 사이에서 유행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에서 최소 2000만 명에서 최대 1억 명에 이르는 인명을 희생시켰고, 1980년대 초에 등장한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AIDS)는 중앙아프리카 지역, 특히 사하라 사막 남쪽에서만 1000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에도 중증 호흡기 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나 조류 독감 같은 새로운 질병이 우리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으며,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포가 일상을 위협하며 그동안 감춰 왔던 한국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정체 모를 균이 어느 날 갑자기 무서운 병의 형태로 등장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지금, 앞으로 또 어떤 질병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을지 두고 볼 일이다.


이재담

서울 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 시립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 과학사학 교실 방문 교수와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 생화학 교실 및 인문 사회 의학 교실 교수,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장, 울산 대학교 의무부총장을 역임했다.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의학사 관련 칼럼을 썼으며, 번역서로 『근세 서양 의학사』, 『의료 윤리 Ⅰ, Ⅱ』와 저서로 『의학의 역사』, 『간추린 의학의 역사』 등이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이재담의 에피소드 의학사 1: 무서운 의학사』
(출간 예정)

 

『의학의 역사』
한 권으로 읽는 서양 의학의 역사

 

『미생물의 힘』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바꾼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의 흥미진진한 역사

 

『아름다운 미생물 이야기』
미생물의 탄생과 진화 다 모았다!

 

『전염병의 문화사』
인류를 만들어 온 것은 병원성 미생물들일지도?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병과 의학을 보는 새로운 패러다임

 

『스트레스』
치명적인 질병을 부르는 현대의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1 Comments
  • 프로필사진 천경서 2020.03.14 15:53 자세한 내용은 책을 봐야 알겠지만 전염병이 역사를 좌지우지한다고도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모기라는 존재도 사실 단순하게 보면 여름철에는 짜증나는 존재로 여겨지나 역사적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불러일으킨 무서운 생명체죠. 사람이 죽인 사람 수보다 모기가 죽인 사람 수가 훨씬 더 많고요. 상술된 바와 같이 역사는 정치, 사회, 문화, 경제, 과학 등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변화하는 것이기에 전염병이 역사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정복을 꿈꿨던 알렉산더 대왕도 모기 매개 질병,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으나 여러 사료를 통해서 밝혀진 바로는)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고도 나왔고요. 수많은 전쟁사에 전염병이 승패를 가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짧은 글이지만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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