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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에서 『요가의 과학』까지: 과학자의 요가 배우기 1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요가』에서 『요가의 과학』까지: 과학자의 요가 배우기 1

Editor! 2021. 1. 7. 15:31

갑작스럽게 찾아온 추위에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다독일 길잡이가 필요하다면, 『요가의 과학』을 펼치는 것은 어떨까요? 인체라는 소우주를 탐험하는 『인체』와 『인체 완전판』의 번역자 권기호 선생님이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요가의 과학』을 번역하며 생긴 에피소드를 살짝 보내 주셨습니다. 50여 년 전 민음사에서 나온 『요가』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빛바랜 책장 너머로 느껴지는 '요가의 신비'는 이제 얼마나 과학적으로 규명되고 있을까요? 모두 2편으로 연재됩니다.


요가 전문가가 아닌데 어쩌다 요가 책을 번역하게 됐을까?

 

복기를 하려면 여기저기 놓았던 흰돌, 검은돌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놓아 봐야 한다. 2020년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1차 대유행이 수그러든 4월 초에 사이언스북스로부터 앤 스완슨(Ann Swanson) 요가의 과학(Science of Yoga)을 번역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출간 일정에 쫓겨서인지 급하게 보내온 검토용 원서를 받아놓고 일주일 동안 틈틈이 살펴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몇몇 고민을 무게에 따라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렇다.

 

“‘요가의 과학이라고는 하지만 도서 분류상 요가 분야의 책인데 요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번역해도 될까? 번역서의 완성도와 판매에 도움이 될까?” (반대의 의문도 들었다. 의학을 잘 모르는 요가 전문가가 이 책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까?)

 

요가를 단순히 체조로 보더라도 정형외과 의사들이 안심하고 추천할 만한 신체 운동은 아닌데, 문외한이 얼핏 보기에 유사 과학을 다루는 듯한 책을 번역했다가 주변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면 어떡하나?” (물론 원서 출판사인 영국 DK를 신뢰했지만,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묘기 같은 요가 동작들로 인해 왜곡된 대중적 이미지와 통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요가의 과학』 (사진 © ㈜사이언스북스)   

 

요가는 인도의 여러 종교와 더불어 반만 년 넘게 다듬어지고 변화하고 다양하게 전수되어 온 정신적, 영적 수양법이기도 한데, 신앙이 없는 사람이 그런 내용들을 충분히 이해해서 번역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부분은 번역서가 출간된 지금도 내 마음을 편치 않게 한다. 번역문과 거기에 사용된 어휘가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 한 번도 들어온 적 없이 모니터 화면에서 곧장 종이 위로 옮겨져 인쇄된 듯하다.)

 

출간 일정이 빠듯하여 번역 기간을 넉넉하게 줄 수 없다고 하는데, 과연 담당 편집자를 고생시키지 않고 출판사에도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요가를 열심히 배운 적이 있는 의학 전공 전업 번역가라면 한두 달 만에 거뜬히 번역할 수 있겠지만, 본업이 있는데다 코로나19 때문에 반나절은 집에서 초등생 아이들과 씨름해야 하는 처지에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론서와 실용서를 포함해 이미 수많은 요가 책이 있는데, 과연 이 책이 더 필요할까?”라는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책 자체는 내용의 참신성으로 보나 형식의 완결성으로 보나 모두 훌륭했다.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가 될 만했다. 훨씬 더 잘 만들어진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스테디셀러가 될 만도 해 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앞의 고민들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번역하기 어렵겠다는 답변을 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21대 총선일인 4 15일이 주례 선생님인 홍승수 교수님(코스모스 번역자)의 첫 기일이라 파주 묘소에서 사이언스북스 주간님을 만나면 미안하지만 나름 정당한 이유를 들어 어쩔 수 없이 실망시키기로 했다. 그날 낮에 날씨는 무척 청명했고 사방에 봄기운이 가득했다. 지난해 장례 때처럼 개나리가 만개했다. 다행히 분위기가 포근하고 따스했다. 간소한 제례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벤치에 나란히 앉은 주간님에게 원서를 돌려주며 멋쩍은 미소를 건넸다.

 

하지만 주간님이 이미 굳혀서 온 결심이 나의 결심보다 더 견고했다. 의학 용어 통일과 편집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인체 완전판을 번역한 세 사람 중 하나가 맡아야 수월할 일인데, 다른 두 사람은 이미 어렵다고 했다. 이건 뭐 거의 짜놓은 각본이고, 빠져나갈 만한 절박한 이유가 없는 한 배수진을 함께 등져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나의 결심이 주간님의 결심보다 굳지 못하게 내 마음을 흔든 친근한 목소리가 있었다. 원서를 검토하던 내내, 2017년에 돌아가신 민음사 박맹호 회장님이 종종 하셨던 말씀, “걱정할 게 뭐 있어? 해 봐라!”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이 무성의 환청이 들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불문학을 전공한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박맹호 회장님이 출판에 큰 뜻을 품고 1966년에 과감히 펴낸 첫 책이 요가였기 때문이다.

 

『요가』(민음사, 1966년)(사진 © ㈜사이언스북스)

 

잠시 요가의 역사 속으로

 

요가 1960년대를 주름잡은 출판사인 신구문화사의 탁월한 출판 기획자이자 시인이었던 신동문 주간님이 직접 기획하고 편역한 원고로 만들어졌다. 셀바라잔 예수디안(Selvarajan Yesudian)과 엘리자베스 하이츠(Elisabeth Haich)가 공동 집필한 영어판 요가와 건강(Yoga and Health)(1953)의 일본어판인 요가의 심신강건법(ヨガの心身強健法)(白揚社, 1961), 요기 비탈다스(Yogi Vithaldas)가 펴낸 영어판 건강과 긴장 완화를 위한 요가 체계(The Yoga System of Health and Relief from Tension)(1957)의 일본어판인 눈으로 보는 요가(るヨガ) (白揚社, 1962), 주로 이 두 판본을 기획에 맞춰 중역으로 편역했다. 두 영어판 원서가 모두 저자들의 명성만큼 훌륭한 책이라 당대에 글로벌한 인기를 끌었고 서구에서 지금도 읽히고 있지만, 요가의 기획과 편역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최인훈의 광장과 이병주의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발굴해 내고 대규모 전집 기획으로 신구출판사를 키워낸 안목과 출판 감각이 있는 분의 역작이었다.

 

어려서부터 폐결핵을 앓아 건강에 관심이 많았던 신동문 주간님은 충청북도 동향이자 일곱 살 연하인 박맹호 회장님에게 본인이 여러 해에 걸쳐 공을 들인 편역 원고를 건넸고, 박맹호 회장님은 내가 아는 당신의 성품과 감각으로 보아 필시 약간의 숙고 끝에 흔쾌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참혹한 세계 대전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평화를 갈구하는 욕구가 팽대한 시기에 요가는 몸과 정신과 영혼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명상적 신체 활동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950~1960년대에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요가 붐이 다시 동양으로 옮아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도 요가 책과 강의가 급속히 늘어났다. 그런 와중에 가장 훌륭한 요가 지침서로 손꼽히는 두 책을 한 권으로 합쳐 놓았으니 이보다 더 매력적인 출판 콘텐츠가 있었을까?

 

 

『요가』(민음사, 1966년)(사진 © ㈜사이언스북스)

 

여기서 잠시 요가를 펼쳐 볼까 한다. 표지에 보이는 제목은 간명하게 요가이고, 부제는 적잖이 구매욕을 자극하는 당신의 몸과 마음을 뜻대로 통제할 수 있는 이 신비한 건강의 비법이다. 저자는 “S. 에스디안/요기 뷔다르다스/라고 적혀 있고, 번역자는 동방구 편역이라고 표시돼 있다. 저자 이름은 일본어식 표기를 따랐으니 그렇다 치고, 발음이 예사롭지 않은 동방구(東方龜)”는 뭘까? 이것은 동방의 거북이라는 뜻으로, 신동문 주간님이 요가 출간을 위해 지은 유머러스한 필명이다.

 

일본식으로 우철(오른쪽 묶음)에 종서(세로쓰기)인 책의 앞날개에 적힌 홍보 문구는 거의 정석에 가깝다.

 

간디, 네루, 아이젠하워, 루스벨트 부인, 처칠, 드골…… 이들이 모두 요가의 실천자들이었으며 우주 비행사들도 요가를 익히고 있다는 사실은 요가의 과학성을 말해 준다. 지금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는 이 요가, 당신의 정신과 육체를 건강으로 이끄는 비결을 가르쳐준다. 누구나, 쉽게, 언제든지,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요가의 신비한 그 효과에 당신은 놀랄 것이다.”

 

뒷날개에 적힌 홍보 문구에는 당연히 뒤로 보내야 할 만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이런 내용을 요즘은 과대 광고 내지 선정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책 판매에는 효과 만점인 백만 불짜리 카피나 다름없다.)

 

“‘요가는 오천 년 전 인도의 숲에서 일어난 심신단련법이다. 이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이십 세기의 미국 한복판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다. 무슨 까닭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요가가 현대병을 고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가는 인간에게 본래 있는 병을 고치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킨다. 그러므로 약에 의거하는 현대의학으로는 해결 못 하는 노이로제, 불면증, 고혈압, 당뇨병 등이 체조나 호흡법으로 자연히 고쳐진다.

 

 

『요가』(민음사, 1966년)(사진 © ㈜사이언스북스)

 

 

앞날개와 뒷날개에 적힌 이 능란한 표현들은 과연 누가 지어냈을까? 일본의 유명한 요가 지도자 겸 저술가인 오키 마사히로(沖正弘, 1921~1985)의 저서들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겠지만, 51  49가 아니라 99  1의 가능성으로 짐작하건대, 분명 동방구께서 지으시고 필명을 내세우셨을 것이다. 순수한 문학청년인 출판 입문자의 대뇌피질에서 술술 나올 수 있는 문구로 보기는 어렵다.

 

책 제목 또한 다른 모든 요가 지침서들을 따돌리고 요가의 바이블인 양 위풍당당하게 요가라고 지었다. 본문도 두 양서의 우수한 부분들만 발췌해 실용성을 높인 구성과 내용으로 엮었다. 표지 디자인은 요가와 건강(Yoga and Health)의 일본어판인 요가의 심신강건법(ヨガの心身強健法)의 표지를 그대로 사용했다. 알파벳 타이포그래피나 실사로 구성된 서양 책 표지와 달리 수묵담채와 붓놀림을 느낄 수 있는 동양적인 표지다.

 

민음사의 첫 출판물인 요가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3개월 만에 5쇄를 넘기며 16,000부 이상 팔렸다. 부친의 응원과 지원을 받지 못한 박맹호 회장님이 이 책 덕분에 적잖은 시드머니(종잣돈)를 마련한 셈이다사이언스북스의 첫 요가 책인 요가의 과학이 민음사의 요가 못지않을 거라는 박맹호 회장님의 속삭임에 흔들리고 사이언스북스 주간님의 육중한 압력을 이기지 못해 번역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내심 요가의 과학에서 뭔가 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십오육 년 전에 동네 요가 학원을 잠깐 다니다가 그만둔 기억이 왠지 모를 결핍감을 불러일으킨 것도 같고, 어쩌면 거리두기와 실외 활동 감소 때문에 늘어나는 뱃살을 줄일 묘안을 찾고 싶어한 것도 같다. 아닐 수도 있고.

 

 

『요가』(민음사, 1966년)(좌)  2021년 『요가의 과학』(우) (사진© ㈜사이언스북스)

 


옮긴이 권기호

서울 대학교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주)사이언스북스의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도서 출판 공존에서 좋은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포토 아크, 새』, 『포토 아크』, 『생명의 편지』, 『나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인체 완전판』(공역), 『현대 과학의 여섯 가지 쟁점』(공역) 등을 번역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요가의 과학』

 

 

『달리기의 과학』 

 

 

『인체 완전판』

 

 

『인체 원리』

 

 

『심리 원리』

 

 

『음식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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