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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이언스-오픈-북

잊혀진 책이 돌아온다...

Editor! 2022. 6. 23. 11:19

조만간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신간이 출간됩니다. 오래전에 출간되었으나 소리 없이 절판되어 독자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책입니다. 편집부에서 오랜 노력을 통해 발굴해 낸 이 책에는 드높은 이상을 가진, 위대한 사상가의 지혜와 웅변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인류가 이제껏 이룩해 온 지구 문명이 거대한 위기에 처해 있는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방법론이 담긴 책입니다. 곧 공개될 그 방대한 책에는 17세기, 독일에서 일어났던 잔인무도하고 반지성주의적 사건에 대한 강력한 고발 기록도 담겨 있었습니다. 인류는 17세기를 전후해서 수백 년간 서구 사회 휩쓴 반지성주의의 폭풍을 뚫고 살아남았습니다. 그 지혜와 슬기를 이 책에서 발견하시게 될 겁니다. (아마 눈 밝은 독자라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1. 미신, 시기, 질투, 비방, 험담, 뒷말 따위의 것들이 놀랍게도 우리 독일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특히 (입에 담기도 부끄럽지만) 가톨릭교도들 사이에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유행하고 있다. 이런 식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든 처벌이나 반박을 받지도 않은 채 마녀 마술의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리고 온갖 일들에 대한 책임을 하느님도 자연도 아니라 마녀에게 모조리 덮어씌우고 만다.

 

2. 이렇게 되자 민중은 누구나 치안 판사에게 마녀를 조사하라고 아우성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세간에 떠도는 뜬소문 때문에 그렇게나 많은 마녀가 만들어진 것이다.

 

3. 따라서 군주들은 재판관과 고문관 들에게 마녀들에 대한 소송 절차를 시작하라고 명령한다.

 

4. 하지만 재판관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거의 알지 못한다. 마녀라는 표식이나 마술이 행해졌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5. 반면 민중은 재판이 이런저런 이유로 지연되는 것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군주는 밀고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재판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6. 독일에서 군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이다. 성직자들까지도 군주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긍정하고 군주들을 부채질하는 게 누구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군주 자신은 선의에서 그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지도 모른다.)

 

7. 마침내 재판관들도 군주들의 의향에 굴복하고 재판을 열기 시작한다.

 

8. 이때까지도 꾸물대면서 이렇게 고약한 일에 연루되기 저어하는 재판관들도 더러 있지만, 그들은 결국 특별 심문관에게 보내진다. 마녀 문제와 관련된 심문에서는 심문관이 아무리 미숙하고 오만하다고 해도 모두 정의를 위한 열의로 여겨진다. 이 열의는 사욕을 통해 더 강하게 타오르는 법이다. 특히 심문관이 대가족을 거느린 가난하고 탐욕스러운 자라면 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환된 피의자로부터 자기들 마음대로 수수료와 수당을 수취할 수 있고, 마녀 1인을 화형에 처할 때마다 그만큼의 보수를 따로 더 받기 때문이다.

 

9. 미친 사람의 헛소리나 근거도 없는 악의 어린 소문(추문에 증거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이 의지할 데 없는 무력한 늙은 여자를 지목한다면, 그 여자는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10. 그렇지만 증거도 없이 단지 소문에 근거해서 기소되었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딜레마 상황을 만들어 유죄로 몰아간다. 먼저, 당신은 사악한 인생을 살아왔나, 아니면 선량한 인생을 살아왔나 하고 묻는다. 만약 사악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대답한다면 그녀는 당연히 유죄가 된다. 반대로 선량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고 대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강력한 유죄 증명이 된다. 왜냐하면 마녀라는 존재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후덕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11. 이렇게 그 노파는 감옥에 갇힌다. 새로운 증거를 잡아내기 위해 또 다른 딜레마 상황이 마련된다. 그녀가 두려워하는지, 아니면 두려워하지 않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만약 (마녀에게 가해지는 무시무시한 고문에 대해 듣고) 두려워한다면 이것은 마녀라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녀의 양심이 그녀를 마녀라고 고발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무죄를 믿기 때문에) 그녀가 두려움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 증거가 된다. 마녀는 무릇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무죄를 가장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2. 증거가 이것만 있으면 곤란하기에 심문관들은 정탐꾼(보통 타락하고 악명 높은 이들이다.)을 부려 그녀의 과거를 탈탈 턴다. 이렇게 탈탈 털면, 그녀의 과거 언동에서 마녀 마술의 증거로 사용할 만한 것을 한두 개쯤은 건지기 마련이다.

 

13. 이렇게 되면 그녀가 마녀라는 소문을 퍼뜨린 자들은 어떤 일이든 고발거리로 삼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누구나 유죄 증거가 충분하다고 말한다.

 

14. 이제 그녀에게 고문이 가해진다. 체포 당일부터 고문이 가해지는 경우도 있다.

 

15. 마녀 재판의 경우 노파에게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정당한 변명을 위한 수단은 그 무엇도 허용되지 않는다. 마녀 마술은 예외적인 대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법률적 절차에 관한 어떠한 규칙도 효력이 정지된다.) 이런 사건에서 피고인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마녀 의혹을 부르는 일이 된다. 감히 이의를 제기하고 재판관에게 신중한 처리를 촉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꼴을 당한다. 그런 일을 하면 즉시 마녀 지지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려움 때문에 누구나 침묵을 지키려고 한다.

 

16. 그녀에게 자기 변명의 기회를 준 것처럼 보이기 위해 그녀를 법정에 끌어낸다. 그곳에서 그녀의 유죄를 보여 주는 수많은 증언들을 읽고 심문한다. 그것도 심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17. 그녀가 이런 고발을 모두 부정하고 모든 기소 내용에 대해 충분하게 답변한다고 하더라도 재판관은 신경도 쓰지 않고 그녀의 대답은 기록조차 되지 않는다. 그녀의 답변이 얼마나 완벽하든 간에 모든 고발의 효력과 타당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녀는 감옥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고집을 굽히지 않을 것인가 잘 생각해 보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녀가 죄를 부정한 것은 그녀가 무죄라서가 아니라 고집스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8. 다음날 그녀는 다시 불려 나가서 고문에 처하겠다는 선고를 듣는다. 마치 그녀가 고발들에 대해 하나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듯이.

 

19. 고문을 시작하기 전 부적 또는 호부(護符)가 있지 않은지 조사한다. 그녀의 몸 전체를 면도하고 여성의 성을 표시하는 은밀한 부분까지도 제멋대로 조사한다.

 

20. 이 정도로 놀랄 것은 없다. 사제들도 이 정도는 다 한다.

 

21. 그녀에 대한 면도와 조사가 끝나면 그녀를 고문해 진실을 자백하라고 강요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바라는 바를 말하라고 하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여 주지는 않을 것이다.

 

22. 고문은 첫 번째 단계, 다시 말해서 덜 심한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잔혹한 고문이지만 그 후에 이어질 것들에 비하면 가볍다. 그래서 만약 그녀가 이 단계에서 자백한다면 그녀는 고문도 받지 않고 자백을 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23. 이제 군주는 그녀의 유죄를 의심하지 않게 된다. 그녀가 고문도 받지 않고 자백을 했는데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24. 따라서 그녀는 가차 없이 사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그녀가 자백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역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일단 고문이 시작되면 늦든 빠르든 그녀는 죽을 뿐이다. 그녀는 벗어날 수 없고 죽을 운명인 것이다.

 

25. 그녀가 자백하든 말든 결과는 같다. 자백한다면 그녀의 유죄는 명백하다. 따라서 그녀는 사형당한다. 자백을 철회해도 소용없다. 자백하지 않는다면 고문이 반복된다. 두 번, 세 번, 네 번. 예외적인 대죄의 경우, 고문의 시간이나 가혹함이나 횟수에 제한이 없다.

 

26. 노파가 고문을 받는 동안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면 그들은 그녀가 웃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녀가 의식을 잃으면 잠자고 있거나 자신에게 마법을 걸어서 입을 막았다고 말할 것이다. 결국 그녀가 입을 열지 않는다면 그녀는 산 채로 화형에 처해져야 마땅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여러 차례의 고문에도 불구하고 심문관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던 이들이 처한 운명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27. 그리고 고해 신부들과 성직자들까지도 그녀가 고집을 부리다 뉘우침 없이 죽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녀는 개심하거나 그녀의 인큐버스를 버리려고 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신앙을 지키려고 했다고 할 것이다.

 

28. 그녀가 만약 가혹한 고문 끝에 죽으면, 그들은 악마가 그녀의 목을 꺾었다고 할 것이다.

29. 그런 이유로 시체를 교수대 아래 묻는다.

 

30. 반대로 그녀가 고문을 받다가 죽지 않으면, 그리고 드물게도 양심적인 재판관이 있어 새로운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자백도 하지 않았는데 고문을 더 가하거나 화형에 처하는 것을 주저한다면, 그녀는 감옥에 갇힌 채, 더 가혹한 경우라면 쇠사슬에 묶여서, 1년 이상이 지나더라도, 굴복할 때까지 그곳에서 썩어 갈 것이다.

 

31. 그녀는 결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 없다. 한 사람이라도 무죄 방면했다가는 심문관 전체가 불명예라고 느낄 것이다. 일단 체포해서 쇠사슬에 묶었다면 정당한 방법으로든 부정한 방법으로든 그녀는 유죄가 되어야 한다.

 

32. 한편 무지하고 완고한 성직자들은 이 불쌍한 피조물을 괴롭혀서, 진실이든 아니든, 그녀가 스스로 마녀라고 자백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적의 은사(恩赦)도 입을 수 없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33. 좀 더 사려 깊거나 학식 있는 성직자들은 감옥 안의 그녀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 그녀에게 조언을 하거나 군주나 제후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피의자의 무죄를 증명하는 무언가가 드러나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 피의자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사람은 재앙의 원인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34. 그녀가 감옥에 갇혀서 고문당하는 동안 재판관들은 그녀의 눈앞에서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서 교묘한 수단을 동원해 새로운 증거를 축적해 간다. 그 결과 어딘가 대학의 학자가 이것을 추후 재검토한다고 해도 그녀가 산 채로 불태워진 것을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게끔 된다.

 

35. 재판관 중에는 극도로 신중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그녀에게 악령 쫓는 의식을 행하고, 다른 곳으로 이송한 다음, 처음부터 전부 다시 고문해 입을 열게 하는 자도 있다. 그래도 그녀가 입을 열지 않으면 그때에는 그녀를 화형에 처해도 무어라 할 이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백하든 말든 모두 다 죽는데, 무고한 저는 어떻게 해야 이것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천국의 이름으로 저는 알고 싶나이다. , 불행한 여자여, 왜 무모하게 희망을 가지는가? 왜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인정하지 그랬는가? 어리석고 정신 나간 여자여, 한 번만 죽어도 족한데, 왜 그렇게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여러 번 맛보기 바라는가? 나의 충고를 따르라,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을 겪기 전에 자신이 마녀라고 말하고 죽음을 맞이하라.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을 놓아주는 것은 마녀를 잡아 죽이려는 독일의 광기에 있어 재앙과도 같은 치욕이기 때문이다.

 

36.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마녀가 자백하면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녀 자신이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문관들이 그녀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밀고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고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심문관이 몇 차례 입에 올렸던 이들일 수도 있고, 사형 집행인이 넌지시 언급했던 이들일 수도 있으며, 그녀가 용의자, 피의자라고 들은 적이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이들이 다시 다른 사람을 고발하라고 강요받고, 이들 역시 또 다른 사람들을 고발하라고 강요받고, 그런 식으로 계속된다. 이런 일이 끝없이 계속되리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37. 재판관은 마녀 재판을 중지하거나(이것은 이 재판이 올바르지 않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아니면 자신의 가족이나 자기 자신, 또는 다른 모든 사람을 화형에 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만간 모두가 부당한 죄로 고발당하고 고문받게 되면 모두가 유죄가 될 테니 말이다.

 

38. 결국에는 처음에 마녀를 태워 죽이라고 큰소리로 부채질하던 자들도 말려들게 된다. 그들은 경솔하게도 그들의 차례가 언젠가 오리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살스러운 혀를 놀려 수많은 마녀를 만들어 내고 무고한 사람을 수없이 화형대로 보낸 자들에게 천벌이 내리리라.

-프리드리히 슈페이 폰 라겐펠트, 검사들을 향한 경고(Cautio Criminalis)(1631)에서

 
 

 


 

퀴스타브 도레가 그린 「실락원의 도판」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