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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밝혀낸 진짜 인류 족보: 사다리가 아니라 ‘덤불’ 본문
인류의 기원, 이는 과학책 독자라면,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갈지’ 항상 궁금해하는 빅 퀘스천의 팬이라면, 항상 가슴 뛰는 키워드일 것입니다. 이번에 「강양구의 과학의 민낯」에서는 이 문제를 다룹니다. 온갖 신화와 종교가 이 문제의 답이라고 제시해 놓은 것과 완전히 다른 답은 현대 과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편린을 함께 살펴보시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등.” 인류의 기원을 놓고서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전히 이 정도의 키워드를 늘어놓는 데에서 과학 상식이 멈춘 경우를 많이 보곤 한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20세기 후반, 21세기 초반에 이 분야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빛나는 성과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교과서가 인류 진화를 한 계단씩 올라가는 사다리처럼 묘사했다면, 오늘날 과학이 밝혀낸 인류의 진화는 사다리가 아니라 가지가 무성한 나무, 혹은 복잡하게 얽힌 덤불에 가깝다.
키워드 중심으로, 주입식으로 몇 개만 살펴보자. 1993년 12월 말 아프리카 북동부 에티오피아의 돌무더기 속에서 탈색된 작은 치아 화석이 발견되었다. 영장류 가운데 진화 과정에서 약 700만 년 전과 500만 년 전 사이에 인간과 갈라진 침팬지의 치아는 분명히 아니었다. 인간 계통의 치아 화석인데 연대를 측정하니 무려 440만 년이나 되었다.
미국의 고인류학자 팀 화이트(Tim White)가 이끄는 연구진은 그 장소에서 치아뿐만 아니라 손뼈 등 100개가 넘는 뼈를 찾아내서 최종적으로 키 120센티미터, 몸무게 50킬로그램 정도 여성의 흔적을 복원했다. 이들은 15년간 신중하게 연구와 검증을 거듭한 끝에 2009년에 최종적으로 새로운 고인류 종을 보고했다.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
흔히 ‘아르디(Ardi)’로 불리는 이 화석은 현재까지 발견된 인류 조상의 전신 골격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형태를 완벽하게 보여 주며 세상에 등장했다. 약 440만 년 전 아프리카 동북부에 살았던 아르디야말로 진화의 시간순으로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에서 갈라진 분기점에서 인류의 진화가 시작될 즈음에 존재했던 고인류다. 이제, 우리 인류의 기원 상식은 아르디에서 시작해야 한다.
(팀 화이트를 중심에 놓고서 아르디의 발견을 극적으로 보고한 책이 커밋 패티슨(Kermit Pattison)의 『화석맨(Fossil Men)』(2020년)이다. 국내에서도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5년)의 공저자 윤신영의 번역으로 소개돼 있다.)

사다리를 내려와 무성한 ‘덤불’ 속으로
공간 배경은 계속해서 오늘날의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에 해당하는 아프리카 북동부이다. 같은 아프리카에 살았던 고릴라와 침팬지가 계속해서 열대 우림에 남았던 반면에 인류의 조상은 아르디부터 초원(사바나)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두 발로 균형을 잡고 서서 걷는 오늘날까지 남아 두 발 직립 보행의 특성이 자리를 잡았다.
그 두 발 직립 보행 특징을 또렷하게 찾아볼 수 있는 고인류가 바로 여러분이 인류의 조상 하면 현재까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이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비틀스의 노래(「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즈(Lucy in the Sky with Diamond)」)와 함께 그 최초의 화석이 발견되어 ‘루시’라는 별명이 붙게 된 바로 그 인류의 조상이다.
아르디와 루시가 나왔으니 흔히 하는 오해도 교정하고 넘어가자. 아프리카 동북부에서 아르디가 살다가 멸종하고 루시가 등장하는 그런 식이 아니었다. 아르디 뒤에 루시가 나오긴 했지만 둘은 상당 기간 공존했을 수도 있고, 둘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약 450만 년 전과 약 350만 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 곳곳에서는 수많은 고인류가 공존하면서 살았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약 340만 년 전부터 석기도 사용하기 시작한다. (흔히 우리가 ‘구석기 시대’라고 부르는 시대가 이때부터 시작한다!) 그러다가 약 280만 년 전 이전에 루시(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두 팔은 짧아지고 두 다리는 길어져서 더 꼿꼿하게 서서 걷는, 뇌가 커져서 사냥감을 쫓아서 먼 거리를 집단 이동하는 고인류가 등장했다.
우리 인류가 속해 있는 호모(Homo) 속의 시작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등장했다. 이 호모 에렉투스는 210만 년 전 이전부터 아프리카 북동부를 벗어나서 남쪽으로 또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후손 가운데 일부는 동북아시아까지 진출했고, 그 주인공이 약 75만 년 전 베이징 외곽의 동굴에 흔적을 남긴 베이징 원인(Peking Man)이다.
이 호모 에렉투스는 오늘날의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에도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고립된 채 진화한 그들의 후손 가운데 약 5만 년 전까지 살았던 고인류가 바로 인도네시아 플로렌스 섬에서 발견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다. 키가 1미터에 몸무게도 25킬로그램에 불과해서 언론에서 ‘호빗족’이라고 별명을 붙인 그 고인류다.

우리 안에 흐르는 ‘2퍼센트의 네안데르탈인’
이렇게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나서 아시아 끝까지 이동하는 긴 시간 동안 그들의 고향(아프리카 북부)에서 인류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약 31만 5000년 전에 그 아프리카 북부에서 지금 인류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드디어 세상에 등장했다. (아프리카 북서부 모로코 제벨 이르후드에서 발견되었다.)
이 호모 사피엔스가 기존에 자리를 잡고 있던 수많은 친척과 약 20만 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진화를 거듭하면서 약 10만 년 전부터 오늘날의 현생 인류와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는 현생 인류가 등장했다. 그들은 호모 에렉투스 같은 이전의 고인류와 비교할 때 뇌의 크기도 컸고, 집단의 크기도 컸고, 도구의 사용도 능숙했다.
게다가 호모 에렉투스보다 더욱더 집요한 방랑벽이 있었다. 약 30만 년 전에 등장하고 나서 끊임없이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북쪽(서남아시아)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그러다 약 6만 년 전에서 5만 년 전이 되면 그 이동 규모가 커지고 거리는 멀어졌다. 호모 사피엔스가 전 지구로 확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럼,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s)은?” 하고 묻는 독자가 있겠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서 서남아시아 그리고 유럽으로 가 보니 그곳에는 이미 인류의 친척이 정착하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와 뇌의 크기, 사회성, 도구 사용 등 모든 면에서 유사한 네안데르탈인이었다.
서남아시아와 유럽에 네안데르탈인이 있었다면 아시아, 예를 들어 아시아 북쪽의 시베리아에서는 데니소바인(Denisovans)이 있었다. 2008년 시베리아 동굴에서 발견한 한 젊은 여성의 손가락뼈를 통해서 그 존재가 확인된 데니소바인은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과 친척인 또 다른 고인류였고, 적어도 19만 5000년 전부터 티베트 고원과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퍼져서 살았다.
여기서 질문!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앞서 아프리카를 벗어나 구대륙 곳곳으로 이동했던 호모 에렉투스가 진화한 고인류일까?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처럼? 이렇게 간단히 결론을 내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2022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가 고유전체 분석으로 확인했듯이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와 어울려 번식했기 때문이다.
페보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고유전체를 분석해서 현생 인류의 그것과 비교해서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비아프리카계 인류는 모두 네안데르탈인과 1.5~2.8퍼센트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역시 21세기를 살아가는 동아시아(약 0.1~0.5퍼센트)와 오세아니아(약 4~6퍼센트) 사람은 상당한 수준의 유전자를 데니소바인과 공유하고 있다. 특히 티베트 인이 고산 지대에 적응할 수 있게 해 준 유전자(EPAS1)는 데니소바인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렇게 수만 년이 지난 지금까지 호모 사피엔스의 직계 자손인 우리가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정도라면 적어도 두 가지를 사실로 유추할 수 있다. ①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 곳곳으로 이동해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을 만났을 때 성관계를 통한 유전자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② 그들의 유전자가 호모 사피엔스 생존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 정도라면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호모 에렉투스보다 호모 사피엔스와 더 가까운 친척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고유전체 연구를 종합하면,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약 60만 년 전과 약 50만 년 전 사이 아프리카에서 먼저 떠난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각각 서남아시아와 유럽 또 아시아에 정착한 이들로 보인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을 포괄하는 공통 조상의 존재는 가정일 뿐이다.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그들만큼이나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 곳곳으로 이동한 또 다른 고인류가 있었던 것일까? 인류에게 또렷한 흔적을 남긴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혹은 또 다른 고인류 미스터리는 여전히 미해결 과제다.
(네안데르탈인 연구의 이모저모를 파악하려면 우은진, 정충원, 조혜란의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뿌리와이파리, 2018년)와 리베카 랙 사익스(Rebecca Wragg Sykes)의 『네안데르탈(Kindred)』(2020년)이 유용하다. 후자는 국내에도 번역 소개되었다.
(인류와 조우하고 나서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게 된 이유를 놓고서 최근 연구를 종합해 놓은 글은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2025년)의 6장 『다름을 배격하고 순수에 집착한다면 』에서 정리했다. 인류의 기원 전체를 조망하는 가장 좋은 책은 여전히 이상희, 윤신영의 『인류의 기원』(2015년)이다.)

빙하기가 열어 준 위대한 이주의 길, ‘베링 육교’
여기까지 단숨에 읽었다면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쌓인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연구 성과를 거칠게나마 교양 과학 수준에서 머릿속에 정리한 셈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가 약 6만 년에서 5만 년 전부터 북동 아프리카를 벗어나서 세계 곳곳으로 이동한 과정을 살펴볼 차례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한창 이동하던 수만 년은 지구의 북반구 대부분이 빙하로 덮여 있던 때였다. 당연히 빙하에 물이 갇혀 있었으니, 해수면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예를 들어, 마지막 빙하기 절정기였던 약 2만 년 전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120~130미터가 낮았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많은 땅이 당시만 하더라도 뭍이었다. 예를 들어, 강원도 속초에서 북동쪽으로 동해, 러시아 캄차카반도와 쿠릴 열도 인근을 지나 2,5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베링 해가 그렇다. 유라시아의 동쪽 끝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의 서쪽 끝 알래스카를 사이에 둔 베링 해가 2만 년 전만 하더라도 육지였다.
바로 이 베링 해에 있던 육교를 통해서 동북아시아로 진출한 호모 사피엔스가 약 3만 년 전과 1만 5000년 전 사이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들이 차근차근 남쪽으로 내려가서 북아메리카 원주민, 중남미 아스테카 문명(13~16세기), 남아메리카 잉카 제국(1438~1533년)의 조상이 된다.
이렇게 베링 육교로 호모 사피엔스가 동북아시아 시베리아에서 북아메리카 알래스카로 건너갔다면, 그 시점, 즉 약 3만 년 전에는 이미 동북아시아에 호모 사피엔스가 이동을 마무리하고 정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동북부에서 동북아시아로 호모 사피엔스는 언제, 어떻게 이동했을까? 결정적으로, 한반도에는 언제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정착했을까?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뚫고 동쪽 끝까지 다다른 호모 사피엔스의 발걸음은 마침내 그 남쪽 한반도의 끝까지 닿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다. 한반도에 인류가 정착한 과정을 두고 여전히 활개 치는 『환단고기』 식의 망상은 과학적 사실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판타지 소설 소재로 쓰기에도 민망한 가짜 역사가 그려낸 허황한 지도 대신, 유전자와 유물이 말해 주는 진짜 드라마는 훨씬 더 치열하고 흥미진진하다. 아프리카를 떠난 위대한 방랑자들이 어떻게 이 땅의 주인이 되었는지, 한반도 호모 사피엔스의 진짜 정착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강양구
서울시 미디어 재단 TBS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참여연대 과학 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시민 과학 센터) 결성에 참여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 환경 담당 기자로 일했고,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메르스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 언론상, 녹색 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과학의 품격』, 『강양구의 강한 과학』,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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