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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사랑한 번역가 김명남 편] ③ 글 잘 쓰고 솔직한 과학자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과학자를 사랑한 번역가 김명남 편] ③ 글 잘 쓰고 솔직한 과학자

Editor! 2014.10.28 13:58



과학+책+수다 첫 번째 이야기

과학자를 사랑한 번역가 김명남 편



책 속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알고 나면 책이 더 재밌어지는 이야기! 한 권의 책을 놓고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모여 수다를 떱니다!

첫 번째로 ‘과학+책+수다’에 오른 책은, 어마무시한 두께로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그리고 이 어마무시하고도 아름다운 책을 번역한 과학 전문 번역가 김명남과 담당 편집자가 출간에 쫓겨 그간 못 다한 이야기를 수다로 풀기로 했습니다.







➂ 글 잘 쓰고 솔직한 과학자 




편집자: 이제 작가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하는데요. 스티븐 핑커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는 꽤 됐잖아요. 그런데 앞서 출간된 언어와 관련한 책들은 저는 너무 어려워서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거의 다 읽지를 못했어요. 그나마 『빈 서판』은 챕터별로 읽을 수가 있잖아요.


김명남: 저도 생각을 해 보니까, 제일 먼저 읽은 게 『빈 서판』이더라고요. 『빈 서판』을 읽고, 그 전에 나온 『언어 본능』 같은 책들을 나중에 읽었는데 되게 어려운 거예요. 거기에 비하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굉장히 쉬워요. 


사람들이 핑커의 전작들과 비교해서, 거기다 두께까지 언급하며 이 책 역시 엄청 어렵지 않을까 하고 얘기하면, 저는 정말 안 그렇다고 정말 말해 주고 싶어요. 이 책 되게 쉽다고, 일단 읽기는 쉽다고. 본인 전공인 언어학이 아닌 걸 이야기를 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데이터들을 모은 논증이기 때문에 굉장히 읽기가 쉽거든요. 『빈 서판』보다도 읽기가 쉽지 않나요? 그렇죠? 내용도 쉽고.



편집자: 핑커가 예전에 본인의 저술 계획을 야심차게 언어 3부작, 마음 3부작이라고 이름 붙였었잖아요. 지난 2006년에 『생각거리』를 출간하며 이 언어 3부작과 마음 3부작을 동시에 마무리 지었고요. (언어 3부작: 『언어 본능』, 『단어와 규칙』, 『생각거리』 / 마음 3부작: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빈 서판』, 『생각거리』) 


그냥 제 느낌엔 오랫동안 이어 온 이 계획을 끝내고 나니까, 본인도 굉장히 홀가분해져서 좀 다른 저술 활동을 시도해 본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딱 그때 존 브록만이 던진 “당신은 어떤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꽂힌 게 아닐까. (웃음) 그렇지만 그 질문에서 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모으는 게 정말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김명남: 이 책은 사실 인문학으로도 분류가 될 수 있고 역사로도 분류가 될 수 있지만 그래도 결국은 과학책이라 말해도 수긍할 수 있는 이유가, 이 사람의 접근법 자체가 굉장히 과학적인 거예요. 데이터들을 조직하고 그 데이터에 기초해 본인의 이론을 세우고 검증하며 나름대로 결론에 도달하는. 아, 역시 이 사람은 과학자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또 좀 놀란 게 책을 읽으면서 핑커가 되게 솔직하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얘기가 좀 빗나가지만, 중간에 문명화 과정 얘기 나오면서 인간이 선해진 하나의 단계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이야기를 하잖아요.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은 인류학이나 이런 데서는 너무나도 이미 유명한 걸작인데 이 책과 관련해서 조사하면서 그 책을 처음 읽었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잖아요. 그러면서 그 안에 나오는 포크 얘기가 자긴 너무너무 놀라웠다고. 그런데 제가 만약 핑커 정도 되는 위치에 있다면, ‘세계 100대 사상가’ 이런 데 뽑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 안 쓸 것 같거든요.


편집자, 김명남: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웃음)



김명남: 그런데 자기가 자료 조사하면서 읽었는데 너무 놀랐다. 막 개안이 됐다, 이런 얘기를 쓰는 것도 놀랍고. 또 두 번째로는 책 후반부에 선한 천사가 발휘가 된 요인들, 그중에서 감정 이입 얘기하면서 소설이랑 문자 공화국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언급하는데 사실 그 뒷부분은 아내의 영향을 받은 거잖아요. 지금 세 번째 아내인 그 작가분을 만난 다음에 인생관이 바뀐 게 너무 보이는데, 그것도 너무 가감 없이 쓰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가 핑커라면 그렇게 안 쓸 거 같거든요. 마치 원래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쓰겠죠. 


그리고 앞에 등장하는 데이터들, 폭력이 줄어든 데이터들도 남들이 자기한테 다 얘기를 해 준 거다라는 걸 다 밝히고 있고. 그래서 아, 작가로서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전 책들에서 언어학 이론을 설명할 때와는 확실히 좀 다르게, 얼마든지 여기에 대해서 다른 데이터나 이론이 오면 토론할 여지가 있다라고 마음도 열려 있는 거 같고요. 그래서 그냥 그 전 책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우습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웃음) 쉽게 느껴지고 가깝게 느껴졌어요. 필자로서는 되게 열려 있는 느낌이 들었고요.


편집자: 글로 사람을 만나는 거랑 영상이나 오디오로 만나는 거는 또 다르잖아요. 


김명남: 이번에 이 책과 관련해서 핑커가 빌 게이츠와 대담한 동영상을 집중적으로 많이 봤는데, 말을 너무 잘하시는 거예요. 언어학자라서 그런가? 주술이 딱딱 호응되게, 받아 적으면 그대로 글이 될 것 같이 말하시더라고요.


편집자: 그게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김명남: 정말 힘들죠. 그래서 강연도 되게 잘하실 것 같아요. 하버드에서 지금도 수업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수업도 그런 식으로 할 거 같고요. 잠 오는 목소리로. (웃음)


편집자: 저는 약간 왜, 그 목소리가 좀 저음이잖아요. 리드미컬하지도 않고, 듣고 있으면 약간 졸리더라고요. (웃음) 좀 다른 얘기지만 리처드 도킨스는 목소리를 들으면 좀 약간 공격적인 느낌이 들더라고요.

 

김명남: 그렇죠, 날카롭고.


편집자: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에드워드 윌슨은 약간 거만하다는 느낌도 조금 있고요. 


김명남: 네?! (웃음)


편집자: 거만하면서도, 뭔가 연세 탓인지 이 분 혹시 지금 얘기하면서 졸고 계신 게 아닌가 싶게 목소리가 잦아들다가 또 막 열정적으로 얘기하시고. 


김명남: (웃음) 글도 그래요.


편집자: 핑커는 다른 사람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조곤조곤 정확하게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김명남: 맞아요, 맞아요.


편집자: 사진도 보면 그냥 자유로운 젊은 학자 느낌? 마음을 열고 들을 자세가 돼 있는, 토론할 자세가 되어 있는 그런 느낌이에요. 어떻게 보면 약간 위험할 수 있는 발언이다 싶은 것들도 이 사람 입을 통해서 나오면 그렇게 공격적으로 들리지 않는 게 그런 영향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김명남: 지금 말씀하신 비유가 너무 잘 맞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믿음을 갖고 있어요. 일류 작가들은 말이랑, 자기 생각이랑, 글이 같이 간다고. 핑커는 진짜 글이랑 말이랑 자기 생각이 같이 가는 것 같아요. 글이 굉장히 신중한데, 신중하다고 해서 소심한 게 아니고 굉장히 단호하면서도 신중해요. 


원서가 왜 이렇게 두껍냐 하면, 데이터가 물론 많이 들어가서도 있지만 워낙에 민감한 주제다 보니까 반복을 많이 해요. “현대가 안 위험하다는 건 아니지만, 중세가 상대적으로 더 위험했다는 거다.” 얘기를 할 때마다 꼭 이렇게 “현대가 안 위험하다는 건 아니지만” 하고 지적을 해 주잖아요. 다른 작가 같으면 처음 한 번만 하고 뒤에서는 안 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너무 잘 아는 거예요. 자기 말의 효과가 무엇일지, 자기가 그렇게 말을 했을 때 어떻게 오용이 될 수 있는지. 그래서 차곡차곡 다 짚어 주다 보니까, 책이 두꺼워진 게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사람이 정말 글을 쓰는 법을 아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 차기작(『Sense of Style』)으로 글쓰기 책도 쓰셨지만요. 


김명남: 이것도 또 딴 얘기인데 (웃음) 번역을 하다 보면, 영국 영어를 쓰는 사람이랑 미국 영어를 쓰는 사람이 또 다르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미국 영어를 쓰는 미국 작가들의 특징이 좀 있어요. 자기 과시가 심하고. 


(모두 폭소) 


김명남: 자기 과시를 꼭 해야 하는 거 같아요. 안 하면 안 되는 거 같아요. 마치 하라고 배운 거 같은? 아무튼 그런 게 좀 있는데 핑커는 그런 것도 못 느꼈어요. 그러니까 글을 잘 쓰기는 굉장히 잘 쓰는 거 같아요. 


편집자: 그런데 어떻게 보면 사실 핑커는 캐나다 사람이잖아요. (웃음)



김명남: 그러니까요. 이 책에도 막 나오잖아요. 프랑스 어를 할 줄 알 수도 있겠네요.


편집자: 할 줄 알지 않을까요? 언어학을 연구하게 되는 계기에는 대개는 다양한 언어에 대한 관심이 깔려 있잖아요.


김명남: 그렇죠. 비교 언어적인 그런 게 깔려 있죠, 분명히. 


편집자: 영어와 불어가 혼재하는 나라에서 자랐고, 그리고 미국에서 미국인과 캐나다인과 영국인의 입지가 다를 테니 그런 부분이 핑커의 글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명남: 도킨스가 예전에 왜 노벨 문학상을 꼭 소설이나 시에만 주냐고, 왜 논픽션은 안 주냐고, 20세기에 제일 중요한 게 과학이고, 좋은 과학 논픽션이 많으면, 뭐 그냥 예를 든 것일 수도 있지만 핑커한테 줄 수도 있는 게 아니냐 이런 얘길 했었거든요. 그 얘기도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꼭 잘 써서 그렇다기보다 도킨스가 한 말이 맞는 말이기는 맞는 말이잖아요. 처칠도 받았으니까.

 

편집자: 신작으로 글쓰기에 관한 책을 낸다고 했을 때 “어, 왜 난데없이 글쓰기로 갔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김명남: 이 사람의 관심사 안에 다 있는 거 같아요.


편집자: 그런 거 같네요. 



4편에서 계속…



▶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도서 정보 (클릭)



과학+책+수다 [과학자를 사랑한 번역가 김명남 편]은 다음과 같은 목차로 진행됩니다.

① 보기만큼 대단한 책! (연재) 바로가기

② 핑커의 핑크?! (연재) 바로가기

③ 글 잘 쓰고 솔직한 과학자 (연재)

④ 불규칙 동사로 엮인 영혼의 동반자 (연재바로가기

⑤ 과학 그루피의 세계로! (연재바로가기

⑥ 과학 콘텐츠의 유통자 (연재바로가기

⑦ 팬심으로 움직이는 과학 전문 번역자 (연재바로가기


※ ④ 불규칙 동사로 엮인 영혼의 동반자는 목요일에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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