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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SF를 책임질 10인의 원더우먼들 본문

완결된 연재/(完) <칼 세이건 살롱> 스케치

(8강)SF를 책임질 10인의 원더우먼들

Editor! 2016. 11. 30. 17:35

올해, 칼 세이건 서거 20주기를 맞아 사이언스북스와 과학과 사람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칼 세이건 살롱 2016’의 문이 열렸습니다. 우주를 꿈꾸던 뛰어난 천문학자이며,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세계적인 과학자 칼 세이건. 앞으로 13주 동안 진행될 ‘칼 세이건 살롱 2016’은 그의 과학과 사상, 꿈을 공유하는 특별한 자리가 될 예정입니다.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 있네> 진행자 원종우 대표가 메인 호스트로,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가 서브 호스트로 참여해 매회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이번 행사는 9월 30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다큐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를 한 편씩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코스모스를 만든 ‘여성’들

고대 그리스, 시민이란 오직 성인 남성만을 지칭한 말이었습니다. 여성 참정권이 최초로 시행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123년 전인 1893년의 뉴질랜드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2015년이었습니다. 얼마 전, 역대 가장 진보적이라 평가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끝내 여성 사제 서품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몇몇 장면에서 어딘가 따가운 감각이 느껴지면 좋겠습니다. 역사와 숫자에서 지워진 수많은 여성들을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다보면 우리가 서 있는 땅이 여전히 기울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겁니다. 


천문학 분야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세기 초만 해도 여성들은 천문학 연구를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곳은 오직 “남자들의 세계”였으므로 여성은 정식 학자로 고용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미국 하버드 대학의 천문대장 에드워드 피커링은 여성을 ‘컴퓨터’로 고용합니다. 수많은 천문 데이터를 비교, 분석하는 일을 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교육을 받아 전문 지식은 있으면서도 저렴한 급여를 주고 일을 시킬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애니 점프 캐넌, 헨리에타 스완 리비트, 세실리아 페인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왼쪽부터 차례로 캐넌, 리비트, 페인(cc)wiki


애니 캐넌은 팀의 리더였습니다. 캐넌은 수십만 개의 항성 목록을 작성하고, 별의 스펙트럼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범주화했는데 이 분류법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헨리 드레이퍼 목록’입니다. 헨리에타 리비트는 밝기가 변화하는 별을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 변광성의 밝기 변화에 주기가 있고, 밝은 별의 변광 주기가 길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리비트를 통해 우주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세실리아 페인은 지난 5강, 윤성철 교수님의 강연에서도 등장한 이름입니다. 페인은 캐넌의 자료를 분석해 별의 스펙트럼이 항성의 온도를 나타내고, 항성은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별을 구성하는 물질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고요. 더 나아가 이제는 우주의 역사까지도 탐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던 윤성철 교수님의 말을 기억하시나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이름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태양의 자매들’을 말입니다. 이명현 박사님은 “당시 여성 과학자들이 어떻게 취급받았고,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보여 주는 헨리에타 리비트의 일생을 다룬 책 『리비트의 별』(궁리, 2011년)을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 여덟 번째 시간은 바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코스모스」 여덟 번째 에피소드 ‘태양의 자매들(Sisters of the Sun)’을 본 후 정세랑 작가님의 강연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2010년 등단한 정세랑 작가님은 『지구에서 한아뿐』, 『보건교사 안은영』 등을 썼고 최근 『피프티 피플』을 출간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작가님은 ‘여성 SF 작가들을 만나 보시겠어요?’라는 강연 제목으로 10명의 작가를 소개했습니다. 작가가 사랑하는 작가, 언제나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아마 읽을 책 목록이 꽤나 묵직해지겠네요. 함께 책 여행을 떠나 봅시다. 




혼자 보기 아까운 여성 SF 작가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강연을 준비하며 여러 책을 살폈다는 정세랑 작가님은 책 『사라진 스푼』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여성 과학자들이 어떤 업적을 세웠는지, 또 어떻게 이용당했고 어떻게 업적을 빼앗겼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공정하게 다루는 과학사 책이라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좀 더 열심히 여성 과학자들의 책을 읽고 그 영향을 받아 글을 써야겠다.”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많은 경우 여성들의 업적이 깎여 내려가거나 일부러 잊히거나 하는 일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 스스로를 작가로 생각했지 ‘여성’ 작가로는 생각 안 했거든요. 삶의 다른 영역에서는 여성임을 잊기 힘들지만 글을 쓸 때만은 성별에 상관없이 그냥 작가라고 생각했는데요. 몇 가지 계기로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계기 하나는 몇 년 전 인터넷에서 발견한 글이었습니다. 활동 중인 국내 SF 작가를 비하하는 글이었는데 그 안에도 여성 비하는 더 심했습니다. 글은 남성 작가들을 각각의 작품으로 비하한 반면 여성 작가들은 한데 묶어 “여자 냄새가 난다.”라고 일축해 버렸습니다. 정세랑 작가님이 그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작가로서 모멸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그러다가 『죽이는 책』을 만납니다. 미스터리 작가가 추천하는 미스터리 작품을 묶은 이 책에 “여성 스릴러 작가들이 이제는 잊힌 옛날 여성 스릴러 작가들을 추천하면서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여자를 말하지 않는다, 이들이 못 쓰지 않았고, 못한 것이 없었는데 일부러 잊혀졌다’라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정세랑 작가님은 이때 다시 한 번 “여성 작가로서 여성 작가의 작품을 추천하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낸시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도둑 잡기부터 펑크 난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것까지. 그렇다면 내가 못할 게 뭐람? 낸시와 친구 베스, 조지는 일을 바로잡기 위해 남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의지했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미스터리를 해결했다. 수많은 저명한 여성 인사들이 낸시 드루를 역할 모델이자 페미니스트 아이콘으로 꼽았고, 나도 그에 완벽하게 동의한다. ─『죽이는 책』, 201쪽, 『블랙우드 홀의 유령』을 소개한 리자 마르클룬드의 글


한 작가의 생각이 바뀌는 과정이 참으로 아프게 다가옵니다. 건강하지 않은 방식에 맞선 건강한 변화라는 점이 더욱 그렇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좋은 SF 작가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요. 이제 정세랑 작가님이 소개한 여성 SF 작가를 한 명씩 만나 보겠습니다. “소개한 책 중 한 권만이라도 사서 보시면 정말 좋겠다는 목적”으로 한 유쾌한 이야기니 관심 갖고 살펴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①『체체파리의 비법』,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여성SF선구자 #남성필명

“정말 놀라워요. 1970년대 주로 쓰인 작품인데 2010년대 한국에 너무나 적합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 말이에요. 군과 CIA 등에서 근무한 앨리스 셸던이 50대에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명민한 여성이 중년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건데요. 특히 자신이 어떤 영역에서 최초의 여성이기 때문에 느낀 차별이나 젠더 이슈들이 있었을 텐데 그런 점에 대해서 정말 획기적으로 썼어요. 보시다시피 남성 필명을 썼죠. 나중에 이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이른바 ‘팁트리 쇼크’가 오는데요. 그가 여성일 리가 없다는 거였어요.”


② 『아직은 신이 아니야』, 듀나

#초능력자 #그로테스크

“듀나 작가님 작품 중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연작 소설집인데요. 인천에 연고가 있는 분들도 재미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폐허가 된 송도 신도시가 중요한 배경으로 나와요.(웃음) 폐허가 된 미래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초능력자들이 오는데요. 밝은 초능력물은 아닌데 굉장히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다워요. 연작이 너무나 완벽한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요. 단편 하나씩 읽어도 좋지만 연달아 읽었을 때의 증폭 효과가 굉장히 좋은 작품입니다.”


③『씨앗』, 정도경

#바이오산업 #식물인

“이 작가님은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학자신데요. 호러도 쓰고, 판타지도 쓰고, SF도 쓰세요. 이 단편집의 표제작인 「씨앗」이 정말이지 인상 깊은 작품이에요. SF 문학상도 받았는데요. 관심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바이오 자원은 현재도 큰 국제 기업이 독점을 하고 있잖아요. 이 작품은 독점이 심해져 망한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다국적 기업에 저항하는 식물인(人)이 있어요. 재채기를 하면 씨앗이 퍼져 다른 사람도 식물인으로 만들어 버리는데요. 이 식물인들이 정말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읽고 있으면 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나고요. 읽고 나면 내 안에서 뭔가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좋은 단편이에요.” 


  

④『크로스 토크 1, 2』, 코니 윌리스

#텔레파시 #로맨스

“코니 윌리스는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예요. 나이가 들수록 더 좋은 작품을 쓰기가 쉽지 않잖아요. 밥 딜런도 30대에 쓴 노래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죠. 코니 윌리스는 그렇지 않고 지금도 정말 잘 쓰는, 힘 있게 쓰는 작가 중 한 명이에요. 굉장히 수다스러워요. 취향이 안 맞을 수도 있는데요. 이 작품은 특히 로맨스가 강해요. 뇌에 간단한 시술을 하면 연인과 소통 능력이 올라가는데요. 주인공에게는 우연히 소통 능력이 아니라 텔레파시가 열려 버립니다. 모든 사람의 소리와 먼 도시의 소리까지 들리는 파괴적인 텔레파시가 열리는데, 이 텔레파시라는 주제도 끝없이 밀어붙이고, 로맨스도 갈 데까지 밀어붙이는, 홍수 같은, 좀비 영화 같은 소설이에요. 정말 긴 소설인데 이틀 만에 다 읽었어요.” 


⑤『블러드 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외계인 #인간본성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스스로 문학을 깨친 흑인 여성 작가입니다. 젠더는 물론, 인종에 대해서도 아주 깊숙하게 다루는 농밀한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깜짝 놀랐어요. 외계인을 이야기할 때 보통 인간형으로 하잖아요. 그런데 옥타비아 버틀러는 정말 멀리 가요. 이 책에 「책사」라는 단편이 있는데요. 구형의 외계인이 나옵니다. 군집형이고요. 제가 느끼기에는 미역 줄기가 뭉쳐 있는 그런 느낌이었는데요. 그 외계인은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서 만져 주는 것을 좋아해요. 인간을 노예로 잡아 마약처럼 쓴 거죠. 외계인들이 인간을 지성체로 생각하지 않은 거예요. 우리가 동물 실험을 하듯 실험에 써 버린 건데요. 외계인과 수화로 소통하기 시작한 소녀가 책사가 되어 화해를 위해 다시 인간들에게 보내지는데 인간들은 소녀를 스파이로 생각하고 고문합니다. 외계인과 인간, 양쪽에서 고문을 당하는 거죠. 그렇지만 소녀가 평화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두 종족을 이어 주려고 차분하게 노력하는 이야기예요. 외계인 이야기지만 인간 본성 이야기를 너무 진하게 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입니다.”


⑥『진화신화』, 김보영

#신화와진화론 #SF와민주주의

“한국 SF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님 중 한 분이죠. 이 분의 단편 두 개를 추천하고 싶어요. 「진화신화」는 원형의 신화와 진화론을 접붙인 굉장히 독특한 소설이에요. 생명 공학 전공한 친구가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아주 독특하고 유명한 대표작입니다. 제가 더 좋아하는 작품은 『독재자들』에 수록된 「신문이 말하기를」이라는 작품인데요. 시위에 관한 이야기예요. 시위대가 정부에 의해 죽음을 맞는데 그게 정말 일어난 일인지 홀로그램인지 의견이 분분해요. 2010년에는 뛰어난 소설이구나, 하고 읽었는데 최근의 사태들을 보면서 이렇게 민주주의가 잘못 흘러갈 것을 작가가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은 작가거든요. 사회적이면서도 정갈하면서 아름다운 소설이니까 이 분의 작품을 찾아보시면 후회를 하나도 안 하실 거예요.”


⑦『신더』, 마리사 마이어

#소프트SF #마법소녀들

“연령이 어린 분들은 이 책부터 시작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과학 정보를 많이 담은 하드SF뿐 아니라 소프트 아이스크림 같은, 동화 같은 SF도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작품은 알려진 동화를 조금씩 비틀어요. 신데렐라는 구두가 벗겨진 게 아니라 다리가 기계 의족이고요. 뛰어난 기계 정비공이죠. 빨간모자는 농장을 운영하며 비행정을 몰고 다녀요. 라푼젤은 탑이 아니라 인공위성에 갇혀 있고, 해커예요. 백설공주는 달에 사는 초능력자입니다. 이 넷이 힘을 합쳐 독재자와 싸우는, 진취적인 소녀들의 이야기예요. 인물들이 정말 씩씩하고 재미있기 때문에 금방 읽히는 책이에요.”


⑧『옆집의 영희 씨』, 정소연

#평행우주 #두자아

“이 책에 「앨리스와의 티타임」이라는 단편이 있는데요. 처음에 소개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본명이 앨리스 셸던이잖아요. 차원 이동으로 우리 세계에는 없는 발견들을 가져오면서 문명을 진보시키는 역할을 하는 공무원이 있어요.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간 세계에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있는데 그가 아직 죽지 않은 거예요. 알고 보니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도 주인공과 똑같은 직업을 갖고 있어서 그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본 거죠. 둘이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인데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자신의 세계에 살아 있긴 하지만 작가는 되지 않았어요. 자신이 죽은 세계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묻기도 하면서 두 여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소설입니다. 다 읽고 나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드는 이야기예요.”


⑨『소년 소녀 진화론』, 전삼혜

#청소년 #말랑말랑 

“전삼혜 작가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일곱 편 중 세 편 정도가 SF예요. 환경 오염이 너무 심해져서 공중 도시와 심해 도시가 생겼어요. 공중 도시에 사는 소년은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 하고요. 해저 도시에서 태어난 소녀는 심해저 도시에 가고 싶어 하는데 아가미에 문제가 있어 수술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이 둘이 우연히 사고로 바다 표면에서 만나서 호감을 느끼고 우정을 가져요. 가야 하는 방향이 다르잖아요. 게다가 둘 다 미성년자라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요. 그런 청소년의 고민과 SF를 잘 접합시켰어요. 아주 감각적으로 쓰인 소설입니다. 약함과 강함의 이면을 정말 잘 포착하는 작가 같아요.”


⑩『러브 레플리카』, 윤이형

#기계와의사랑 #그것이알고싶다

“저는 이 분이 정말 좋은 SF작가라고 생각해요. 이 책의 첫 작품인 「대니」가 굉장히 좋았는데요. 주인공은 할머니고 딸의 아이를 키웁니다. 이 일이 쉽지가 않아요. 이 세상에는 육아 로봇이 있는데요. 놀이터에 가면 그 로봇이 아이들과 너무 잘 놀아 주죠. 잘생긴 미청년이고요. 이 둘이 나이와 존재를 뛰어넘어 서로를 이해하며 교감하는 내용이에요. 중간에 경찰 조서가 들어가 있어요. 사람들은 이 로봇이 할머니에게 사기를 쳤다고 생각하는 건데요.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아요. 읽어 보시고 직접 판단하셔도 될 것 같아요.”


정세랑 작가님의 작품이 궁금해요!

멋진 소개로 좋은 작품들을 이곳까지 끌고 온 정세랑 작가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자연스러운 궁금증이 생깁니다. 정세랑 작가님의 작품은 어떨까요? 정세랑 작가님은 자신의 작품 『지구에서 한아뿐』과 『독재자들』에 수록된 단편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소개했습니다.


“『지구에서 한아뿐』은 외계인이 지구에 있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이 둘이 친환경 연애를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속가능한 연애를 하는 내용이고요. 제가 쓴 중단편 중 가장 많이 읽힌 작품은 「목소리를 드릴게요」입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고 수용소 소설을 쓰고 싶은데 한국 배경으로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게임기도 있고 다 있는 그렇지만 밖으로 나갈 자유는 없는 수용소 이야기를 썼어요. 저도 이 작품을 좋아하긴 하는데요. 어떤 독자 분이 몇 년에 한 번씩 인터넷에 ‘정세랑 작품은 그것 빼고 나머지는 다 버려도 된다.’(웃음)라고 해서 약간 서운해요. 칭찬도 아니고 욕도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그 비슷한 것을 써야겠죠.”


태양의 자매들을 많이 만난 만큼 기억해야 할 것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여성 SF 작품만의 특성이 있을까요? 원종우 대표님의 질문에 정세랑 작가님은 “그 점이 이상했다.”라고 말하며 『익명소설』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일화를 전합니다.



“실험을 해 본 적이 있어요. 『익명소설』을 기획하면서 계급장 떼고 작품으로만 독자를 실험해 보자라는 취지로 작업했는데요. 10명의 작가들이 모여서 장르도, 성별도, 경력도 밝히지 않고 10편의 작품을 묶었죠. 여기에 저는 제가 평소에 쓰던 것과 똑같이 쓰고 화자만 남자로 바꿨어요. 야한 얘기를 조금 더 넣었죠. 그랬더니 문학 평론가들이 ‘이 작품은 분명히 남자가 썼다.’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문학 평론가 세 명을 속였거든요. 그러니까 사실은 제가 여성이라는 게 알려져서 그런 평가를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판단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선입견이 얼마나 많은 부분들, 얼마나 멋진 요소들을 놓치게 만드는지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하나하나의 독보적인 세계가 ‘여성’이라는 단어로 납작해지는 것은 그대로 인류의 손실이 아닐까요. 기억해야 할 많은 여성들과 호명해야 할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더 찾아 나서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질의응답

그간 ‘칼 세이건 살롱 2016’에서 하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뜨거운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별과 우주에 관한 이야기도요. 


별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세히 알려 주세요. 

이명현(이하 ‘이’): 저는 서울에서 별 보는 게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해요. 하늘을 둘러보면 10개 정도밖에 안 보여요. 제일 밝은 것들이죠. 별자리 익히기에도 좋아요. 시골 가면 저도 별자리가 헷갈리고 그렇거든요. 서울에서 보이는 별들은 빛 공해를 뚫고 나온 별들이니까 그런 별들을 먼저 보시고요. 그래도 마음이 동하면 용산 과학동아 천문대에 가 보세요. 더 마음이 동하면 전국 곳곳에 있는 40여 개의 시민 천문대에 가 보시면 돼요. 특히 평일에 가면 종일 손님도 없고 그래요.(웃음) 한국 천문 연구원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조금씩 넓혀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별은 어떻게 생기나요? 

: 별은 성운에서 생겨요. 성운은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때문에 성운을 별들의 자궁, 별들의 고향, 이렇게 불러요. 생태계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성운이 10분의 1 정도로 압축이 되면서 밀도가 높아지면 핵융합이 일어나요. 거기서 빛이 발생하는데 그 빛을 별빛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 순간을 별의 탄생이라고 부르고요. 


초신성의 크기는 어느 정도 되나요? 

: 태양보다 무거운 별들,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8배에서 10배 정도만 더 무거워도 그 별들은 죽을 때 초신성 폭발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태양보다 100배 무거운 별도 많지만 대략 8배, 10배 정도만 무거워도 죽을 때 터지면서 초신성으로 폭발하고 가운데 블랙홀이 생기는 거죠. 


백색 왜성은 결국 사라지는 건가요? 

: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별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결정되요.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질량입니다. 크게 태어나면 질량이 무겁겠죠. 그 안에 수소가 엄청 많은 거예요. 그러면 빛을 더 밝게 내고요. 큰 별이기 때문에 유지하려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야 해요. 그래서 수명이 짧죠. 태양은 100억 년 정도 되는데 초신성 같이 폭발하는 큰 별들은 1억 년 정도밖에 안 되고 그렇습니다. 그런 별이 터지고 나면 블랙홀이 되는 거고요. 그것보다 조금 작은 별이 터지면 가운데가 중성자별이 돼요. 태양은 조금 작은 별이라고 했잖아요. 얘는 터지지도 못해요. 분리가 돼요. ‘행성 상 성운’이라는 게 되고 가운데 백색 왜성이라는 게 되는 거죠. 백색 왜성은 아주 콤팩트한 별이에요. 백색 왜성, 중성자별, 블랙홀 등은 별이 일생을 살고 난 후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말하자면 사후 세계 같은 거죠. 그래도 중성자별, 백색 왜성은 빛을 근근이 내요. 그러다가 언젠가는 동력이 떨어질 텐데요. 그러려면 엄청 시간이 오래 걸릴 거예요.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이잖아요. 이론적으로는 백색 왜성이 근근이 빛을 내다 꺼질 거라고 하는데 아직 발견된 건 없어요. 


블랙홀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나요? 

: 이 얘기는 쟁점이에요. 블랙홀도 크기가 있어요. 별 크기의 블랙홀로 얘기하자면 이것은 초신성이 폭발한 후 안쪽으로 수축하는 게 블랙홀이 되는 거예요. 블랙홀은 표면 중력이 너무 커서 빛이 그 밖으로 못 나오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블랙홀은 점점 증가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사라질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스티븐 호킹이 1970년대에 ‘호킹 블랙홀’이라고 해서 증발하는 블랙홀 아이디어를 냈어요.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는 플러스, 마이너스가 양자 요동을 치다가 예를 들어 마이너스만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 플러스가 튕겨져 나오겠죠. ‘호킹 복사’라고 해요. 블랙홀에서는 뭔가 나올 수가 없는데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그렇다면 플러스는 나오지만 사실 마이너스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거잖아요. 마이너스를 먹으면 블랙홀이 점점 줄어들겠죠. 그렇게 블랙홀이 소멸되는 거죠. 거기에 걸리는 시간이 10의 60승 년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스티븐 호킹은 노벨상은 못 타는 거죠.(웃음)


SF를 쓸 때 과학에 대한 자료 수집을 먼저 하고 쓰시나요?

정세랑(이하 ‘정’): 평소에 과학 기사를 찾아 읽어요. 물론 이해하는 데 한계는 있지만 과학 잡지도 읽고, 과학 책도 많이 읽고 해요. 마음에 드는 내용은 메모를 해 놓는데요. 메모가 바로 소설이 되는 건 아니고요. 대충 여섯 개쯤 모이면 단편 하나를 쓸 수 있어요. 그런 경우가 있고 반대로 이야기가 막혔는데 다른 걸 읽다가 뚫릴 때도 있고 그래요. 대개의 경우 100을 읽으면 1을 쓸 수 있어요. 생산성이 낮죠.(웃음) 


하드 SF와 소프트 SF를 분류하는 기준이 있나요?

정: 사실 독자들마다 그런 기준도 다르고요. 저는 작품 안에서만 논리가 설명이 되고 일관성이 있으면 다 SF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올바른 성평등, 페미니즘 운동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요?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수식어가 뒤에 붙은 직업이나 계층에 한계를 긋는 경우를 겪으신 적이 있나요? 어떤 대처법이 있으세요? 

정: 스물다섯까지는 별로 생각을 못 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광고계에서 일을 하려고 스펙을 열심히 만들어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는데요. 그때부터 기울어 있구나, 느꼈어요. 서류 통과자가 10명이면 8명이 남자고 2명이 여자더라고요. 실제 여자를 뽑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1:1의 대학생이 있는데 8:2의 서류 통과자가 생기는 이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그 후 출판계에 들어왔는데요. 그나마 여성이 많은데 남자들이 훨씬 승진이 빠르고 연봉을 많이 받는 거예요. 그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SF 쪽에서는 최근 SF 어워드의 심사 위원이 전부 남자인 것에 대해 굉장히 큰 격론이 있었거든요. 감정이 상할 정도로 싸웠고요. 중년 남성이 뽑는 SF는 중년 남성의 SF가 아닌가, 젠더 불균형이 심지어 과학을 하고 과학 소설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도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동료 작가들과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저는 아주 천천히 깨달은 거죠. 그렇지만 한 사람이 모든 걸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저는 가까운 부분부터 바꾸려고 노력 중이에요. 부끄럽지만 문단 성폭력 문제가 크게 터졌는데요. 그 문제를 일단 해결하는 것, 그것을 중요한 목표로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제 뒤에 오는 여성들이 저보다는 나은 환경에서 성희롱을 당하지 않고, 업무 외적인 걸로 차별당하지 않고 똑같이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 페미니즘,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어디서 출발할 것인가 한다면 저는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봐요. 경기장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애초에 경기가 안 되는 거예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제일 쉬운 방법은 보조를 하는 거죠. 의도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균형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고, 그것들을 통해 공정하고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단 형평을 맞게 한 뒤에 세부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죠. (개인적으로) 이런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  10강 ‘세상을 바꾸는 힘(The Electric Boy)’은 12월 2일 금요일 7시에 ‘벙커1’에서 진행됩니다.



글 : 신연선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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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자연』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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