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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멧돼지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참관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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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멧돼지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참관기

Editor! 2019. 12. 10. 10:56

지난 11월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토론회의 패널로 생명 다양성 재단 사무국장이자 『습지주의자』, 『비숲』의 저자인 김산하 선생님께서 참여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사이언스북스에서도 이번 토론회에 다녀와서 그곳에서의 논의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마침 오늘은 국제 동물권의 날이지요. 읽으시면서 질병 확산을 위한 대응책 마련과,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어떻게 병행되어야 할지를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과학 Talk 
우리는 멧돼지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참관기

 

 

인간과 야생 동물의 공존을 위한 자리

2019년 11월 29일, 환경 노동 위원회 소속의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이 주최하고 환경부에서 주관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대응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인간과의 공존을 위한 야생동물 질병 관리」에 다녀왔습니다.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에서는 이화 여자 대학교 에코 과학부 최재천 석좌 교수와 서울 대학교 수의과 대학 유한상 교수, 서울 대학교 산림 과학부 이우신 교수가 발제를 맡았으며, 토론자로는 경희 대학교 생물학과 유정칠 교수의 사회로 전북 대학교 수의학과 조호성 교수, 《중앙일보》 강찬수 기자, 《한겨레》 조홍섭 기자, 야생 동물 연합 조범준 사무국장, 그리고 생명 다양성 재단 김산하 사무국장이 참석했습니다. 그 외에도 120석 규모의 회의실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분께서 이번 토론회에 찾아 주셨습니다. 그만큼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입니다.

강찬수 기자가 지적한 대로 이번 토론회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논의되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으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와 ‘야생 멧돼지를 도살하는 것이 문제인가?’가 그것입니다. 이를 따져 보기 위해 토론에 앞서 환경부에서 지금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현황과 그에 따른 정부의 대응을 정리했습니다.

 

야생 멧돼지 도살이라는 문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2019년 9월 17일 경기도 파주의 한 사육 돼지에게서 국내 최초로 발병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후 양돈 농가에서는 14건(파주 5건, 연천 2건, 김포 2건, 강화 5건)이 보고되었습니다. 한편 야생 멧돼지는 2019년 10월 3일 연천군 DMZ 내에서 최초로 감염 사례를 확인했고, 2019년 12월 7일까지 총 41건(연천 10건, 철원 15건, 파주 16건) 보고된 바 있습니다.

야생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 검출 현황, 자료 제공: 환경부

이에 따라 환경부는 발생 지역과 완충 지역, 경계 지역 등으로 세분화해 질병을 관리하고 있으며, 발생 지역에 대해서는 1차 차단 울타리와 2차 차단 울타리, 광역 울타리를 설치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체코나 프랑스 등 외국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멧돼지가 사육 돼지에 병을 전염시킬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다만 매개체의 가능성이 있는 모기, 파리, 임진강의 물 등을 채취해 역학 조사를 벌였으나 이들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아직까지 감염 경로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현재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검출된 것은 멧돼지와 사육 돼지뿐이기 때문에 멧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매개체인 양 알려진 것입니다.

따라서 2019년 9월 17일부터 11월 18일까지 사육 돼지 38만여 마리가 살처분 처리되었습니다. 또한 2019년 10월 15일부터는 멧돼지에 대한 전면 포획 조치가 실시되어 11월 10일까지 1만 5000마리 가까운 멧돼지가 포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중 3,800여 마리는 경상북도에서, 2,200여 마리는 충청북도에서 포획된 것으로 집계되어 아프리카돼지열병과 무관하게 무분별한 멧돼지 사냥이 행해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번 토론회가 개최된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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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사토리가 촬영한 혹멧돼지(common warthog, Phacochoerus africanus, LC) 사진. 『포토 아크』 88~89쪽에서.

 

멧돼지 죽이기

이에 대해 최재천 교수는 이번 토론회에서 ‘멧돼지 죽이기’라는 제목의 발제를 했습니다. 최 교수는 2007년에도 「철새들을 위한 변호」라는 조선일보 기고문을 통해, 문제는 축산 농가에서 기르는 동물들의 다양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즉 자연 세계에서는 각 개체마다 면역력이나 건강 상태 등이 다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복제 닭 수준”인 닭장의 새들에게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2019년에도 다르지 않다고 최 교수는 말합니다. 그는 야생 동물 질병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향으로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가치를 제시했습니다. 최 교수는 우리가 더는 “생태적 죄”를 짓지 않도록, 고위 공직자가 직접 현장에 참관·참여할 것을 권하며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최재천 교수 사진. ⓒ 김현성 / (주)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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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유한상 교수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특성을 소개함으로써 관리 방안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폐사율이 최대 100퍼센트에 달하는 전염병입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유발하는 ASF 바이러스는 크기가 약 200나노미터로 바이러스 중에서는 큰 축에 들며, 유전적 다양성 또한 높아서 현재까지 백신은 없는 상황입니다. 유럽의 발생 원인별 비율을 살펴보면 감염원(생축, 축산물)의 이동이 38퍼센트, 잔반 급여로 인한 감염이 34퍼센트를 차지하며,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 야생 멧돼지와의 접촉에 따른 전염은 2퍼센트를 차지했다고 유 교수는 밝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야생 멧돼지가 매개체일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마지막 발제를 맡은 이우신 교수는 아프리카돼지열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책·전략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 교수는 병의 원인과 전파 경로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이 병에 감염된 멧돼지는 DMZ와 민간인 통제선 주변 지역에서만 확인되었음에도 전국적으로 무분별한 포획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이번 대처의 문제점으로 꼽았습니다. 오히려 멧돼지 개체군의 분산을 유도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따라서 멧돼지에 대한 생태 정보를 수집하고, 포획이 불가피하다면 각 지역의 환경 수용 능력(carrying capacity, 한 서식지가 부양할 수 있는 생명체의 수 또는 생물량)을 따져서 지역별로 적정 개체수를 산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와 자연의 관계를 규정할 것이다

발제 이후에는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토론자들은 대처가 과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호성 교수는 현재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대처로서 우리가 멧돼지에 주목하는 까닭으로, 멧돼지 외에는 바이러스가 검출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또한 질병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개체수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조홍섭 기자는 단기적 대응과 장기적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특히 장기적인 대응으로 조홍섭 기자는 멧돼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멧돼지 연구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으며, 더 멀리는 값싸게 돼지고기를 공급하는 대가로 국토의 항구적인 영양 오염을 초래하는 한국의 양돈 산업 자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찬수 기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발병 경로를 주목했습니다. 현재로서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조범준 사무국장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개체수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며, 언론을 통해 그려지는 멧돼지의 모습이 실제와는 다르게 포악한 것에 대해서 지적했습니다. 또한 역학 조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야생 동물에 병에 대한 책임을 계속 전가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산하 사무국장은 이번 사건과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이 결국에는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를 규정할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 사건이 사실과는 관계없이 크게 세 가지 내러티브를 통해 대중에게 이해되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멧돼지가 이 병을 옮기고 있다. 
2) 이 병이 북한에서 왔다.
3) 수세에 몰린 농가를 위해서는 멧돼지를 사냥해야 한다.

김산하 박사는 앞의 세 가지 내러티브가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김산하 박사가 쓴 아래의 《한겨레》 기고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산하 박사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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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20세기 진화 생물학자 윌리엄 도널드 해밀턴은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번 토론회 발제 중에 최재천 교수가 소개했는데요. 문명의 대척점으로서 자연은 순수하리라는 인간의 인식과는 반대로 자연은 언제나 섞이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고, 또 그렇기 때문에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물과 흙이 섞여 만들어지는 공간인 습지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섞여서 ‘있다’기보다는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오해되어 온 땅이지요. 그 결과 습지는 꾸준히 훼손되어 왔습니다. 병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이때다 싶게 포획되고 있는 멧돼지도 습지와 닮아 있는 것만 같습니다.

과학적인 역학 조사를 통해 질병의 감염 경로를 규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질병을 종식시킬 대응책도 중요합니다. 살처분 농가에 대한 보상 또한 논의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잔인한 태도를 마주할 과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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