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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저널리즘, 이어 원! 『과학의 품격』: 강양구 편 ①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과학 저널리즘, 이어 원! 『과학의 품격』: 강양구 편 ①

Editor! 2020. 5. 29. 17:03

코로나19 전문 기자로 여러 매체에서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는 강양구 기자님의 과학 기술 문화 비평서, 『과학의 품격』의 전자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과학의 품격』 전자책 출간을 기념해 아껴 뒀던 강양구 기자님의 인터뷰를 「과학+책+수다」로 방출합니다. 표지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와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 저널리스트 강양구 기자님의 출발점이라고 할 역사적 사건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모두 2편으로 발행됩니다. 


「과학+책+수다」

과학 저널리즘, 이어 원!

『과학의 품격』 : 강양구 편 ①

 

 

인터뷰당하는 것이 불편한 불편한 진실 추적자 강양구 기자.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이 표지는 파격이다!

 

SB: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 이 책, 『과학의 품격』은 20년 가까이 과학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온 강양구의 모든 것을 담은 책으로 평가할 수 있겠죠. 과학 기술에서 시작해서, 보건 위생 및 안전 문제까지 온갖 분야를 커버하고, 시간적으로는 2005년 황우석 사태 이래 현재 문재인 정부까지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과학 저널리스트로서의 인생을 스스로 개괄해 보신다면?

 

강양구: 제가 본격적으로 과학 기자를 시작한 게 2003년부터니까 이제 햇수로 따지면 올해로 18년이 되겠군요. 시간 참 빠르군요. 안 그래도 제 활동을 한번 정리하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공교롭게도 2017년 제가 오래 몸담고 있던 ‘공장’, 아니 프레시안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좀 자유로워졌죠. 마침 그때 한 선배가 자신이 일하는 잡지에 1주일에 한 번씩 최신 과학 기술 이슈와 사회를 연결해 고민하는 내용의 연재를 하자는 제안을 주었지요,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이 모여 어느새 이런 책이 되었군요. 하지만 표지가 좀 부담스럽네요. (웃음)

 

SB: 표지가요? 잘 나온 것 같지 않아요? 선거 포스터처럼 예쁘게 잘 나온 듯한데요. (웃음) 실제로 강 선생님도 자기 페이스북에서 공약하시기를 10만 부가 나가면 총선에 도전해 보겠다고 선언도 하셨잖아요. 21대 총선인지, 22대 총선인지 못 박아 두지 않았으니까, 2024년 4월 전까지 10만 부 팔면 출마하셔야 하는 것 아닐까요? (웃음) 

 

강양구: 평소에 외모에 자신이 있었던 편이 아니어서 표지에 제 사진 쓴 걸 보면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게 사실이고, 지금 이 영상을 보시는 독자 분들도 표지에 실린 사진과 실물 사이 괴리감 때문에 굉장히 당황하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자기 이름이 박힌 책을 가진 사람과 자기 이름이 박힌 책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제가 제 얼굴 사진이 크게 박힌 표지의 사진 책을 딱 받아보고 나서 아, 그렇게 책을 낸 저자들에도 두 부류가 있겠구나. 하나는 자기 얼굴이 표지에 박힌 책을 가진 저자들과 자기 얼굴이 표지에 박히지 않은 책을 가진 저자들. 그래서 처음에는 표지에 얼굴 사진을 크게 넣는다고 편집부에서 제안했을 때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과연 내 얼굴이 이렇게 크게 박힌 책을 독자들께서 선뜻 돈을 내고 구매하실까 걱정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걸 다 떠나서 저자로서는 상당히 새로운 경험이고, 그래서 나름 만족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권의 책을 냈었는데, 이렇게 자기 얼굴이 크게 박힌 표지가 있는 책을 가진 저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담스럽지만, 편집부에 감사드립니다.

 

SB: 디자이너 선생님이 편집부에 강하게 제안 주신 거니까, 책 디자인을 해 주신 정재완 영남대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돌리는 게 맞을 듯합니다.

 

강양구: 예. 정 교수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과학의 품격』의 표지.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SB: 편집부의 원래 표지 콘셉트는 실은, 책 재킷 한번 벗겨 보시죠. 제목 타이포그래피를 강조한 게 원래 표지 디자인이었습니다. 저자 사진은 책날개에 넣으려고 했었죠. 그런데 정재완 교수님이 지적인 듯, 우아하게 찍힌 박기수 작가의 저자 사진이 맘에 드셨던지, 저자 사진을 가지고 새로운 시안을 만드시고는, 이쪽으로 가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시더군요.

 

강양구: 네, 맞습니다. 이 표지가 원래 시안이었죠. 저는 사실 이 표지가 마음에 들었어요. 글씨체도 굉장히 힘이 있고, 세련되어 보여서 좋았죠. 하지만 편집부에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또 여러 의견을 종합해 본 끝에 저자 사진을 표지에 넣겠다고 하셨죠. 소극적으로 좀 저항을 해 보다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래,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저는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하고 동의를 했었는데 막상 책을 받아 보니까, 역시 이 우리나라 최고의 책 디자이너라고 할 정 교수님의 실력이 가미된 덕분에 부담스럽지만, 그리 과하지 않은 표지가 나온 것 같아서 만족스럽습니다.

 

SB: 편집부에서도 고민 많았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나 동양 문화권에서 표지에 저자 사진 넣는 걸 부담스러워하지요. 책날개에 작게 넣는 것도 싫어하시는 저자 분도 계시죠. 하지만 제 생각에 책 표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저자’가 아닌가 싶어요. 책 표지에 제목도 들어가고, 부제도 들어가고, 출판사 로고도 들어가고 그러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 책을 쓴 저자죠. 이 책을 주재요 온전한 책임자죠. 하지만 많은 책들이 저자를 강조하지 않죠. 저는 저자를 강조하는 방법을 우리나라 편집자들이 좀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책 표지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강양구: 제 얼굴 사진 때문에 책을 구매하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어요. 책이 많이 팔리면 리커버판 내는 게 요새 출판계 유행이니, 표지 갈이를 한 리커버판 나오면 그걸 사겠다, 강양구 사진이 크게 박힌 책은 내 돈 주고는 도저히 구매를 하지 못하겠다 하고 솔직하게 말씀하신 분들도 있더군요. 표지에 저자 사진을 박은 이유는 알겠는데, 판촉에는 실패한 것 아닐까요?

 

SB: 누구예요, 그런 얘기를 하신 분이?

 

강양구: 말 못 하죠. 편집부의 욕심이 성과를 낼지, 제 사진이 부담스럽고 싫다는 사람이 많아 판매에 실패할지 두고 보죠. 리커버판 내야 하니까요. (웃음)

 

SB: 과학이라고 하면 추상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인간 중심적 과학,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이 어떤 것인지 소개하는 책이니까, 그런 측면에서도 이 표지가 나쁘지 않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강양구: 강양구의 얼굴을 한 과학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뭐, 저도 인간이니까요. 이 표지 사진을 시안을 몇 분 보여 드렸는데, 그분들이 저한테 팁을 주셨던 게 있어요. 정 교수님이 의도하셨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묘한 매력 포인트가 있는 사진이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실제로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이 표지 사진을 어디에다가 둬도 다 자기를 감시하는 듯한 느낌이 든대요. 약간.

 

SB: 그래요?

 

강양구: 네. 강양구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이런 거죠. (웃음)

 

 

인터뷰 중인 강양구 기자.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과학의 품격이란?

 

SB: 자자, 책 표지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요. 감시마(魔) 강양구 선생님, 원래 얘기로 돌아가죠.

 

강양구: 네. 제가 기자 생활을 시작한 게 2003년부터인데, 벌써 18년이나 되었군요. 말씀하신 대로 그동안 주로 과학 기술, 보건 의료, 환경 분야를 중심으로 참 많은 기사를 써 왔어요. 여러 영역에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고민했었던 것들을 한번 갈무리하는 기회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죠. 어떻게 갈무리하면 좋을까, 고민했지만, 역시, 책을 쓰는 게 좋겠다, 생각했죠. 한편으로는 성인들을 첫 번째 대상 독자로 하는 책을 써 보고 싶었어요. 그동안 몇 권의 책을 내고, 나름 상업적으로든, 평론적으로든 좋은 평가를 받은 책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첫 번째 타겟 독자를 청소년 또는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책이었거든요. 공저 빼고는 제가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을 내 본 적이 사실 없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과학 기자 생활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책을 낸다면 그 책은 성인 독자를 염두해 두고 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죠.

 

그러면 두 가지 방식이 있을 텐데, 하나는 뭔가 주제를 하나 정해 가지고 그 주제에 따라 체계적인 책 한 권을 만드는 방법이 있을 테고, 또 다른 하나는 일관성이 약간 떨어지기는 해도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관심사와 고민 들을 지금 수준에서 정리해서 뷔페처럼 보여 주는 방법이 있겠죠. 『과학의 품격』은 후자, 그러니까 뷔페 상을 만들어 보겠다 하고 만든 책입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만 2년 좀 넘는 시간 동안 1주일에 한 편꼴로 글을 썼죠. 그렇게 하고 보니까 100여 편의 글이 모였고, 200자 원고지로는 2,500매 가까이 되더라고요. 과학 기술과 관련된 온갖 이슈들을 다 다뤘죠. 글들을 쓸 때도 2019년 정도에는 이 글들을 다 모아서 책으로 펴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글들을 저도 한 번 검토해서 덜어내고, 사이언스북스 편집부에서도 한 번 검토해서 약간 처지거나 중복되거나 아직 고민이 성숙하지 못한 글들을 30퍼센트 정도 덜어내고 나니 1,500매 정도의 원고가 남더군요. 그것을 제가 다시 보완하는 작업을 거쳐 원고를 만들었어요. 그사이에 생각이 바뀌거나 고민이 좀 진전된 내용이 있으면 그것들을 집어넣기도 하고 또 정보를 업데이트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정보도 업데이트하고 그렇게 해서 묶은 책이 바로 『과학의 품격』이라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제 깜냥의 최대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과학 기술에 관심이 있었던 분들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에 관심이 없었지만 과학 기술 시대를 좀 똑똑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이 책을 읽어 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지금까지 취재하고, 공부하고, 또 고민했던 내용을 흡수하셨으면 좋겠어요. 단언컨대 『과학의 품격』을 3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완독하신다면 18년 경력의 과학 전문 기자 강양구만큼의 지식과 고민을 쌓으실 수 있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과학자는 파격을 추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민과의 소통. 시민과 소통하는 과학이 품격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강양구 기자.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SB: 제목 얘기를 좀 해 볼까요? 함께 오래 고민했잖아요. ‘품격’, 좀 무겁고 보수적인 단어잖아요?

 

강양구: 그렇죠. 여러 가지 제목을 고민했었지만, 결국에는 이걸로 정하게 되었죠. 저는 기자 생활 내내 ‘진보’로 구분되는 매체에서 기자 생활을 해 왔고, 저의 개인적 포지션 자체도 진보 포지션인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17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 행복한 삶을 추구하면서 함께 상생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균형 감각 같은 것이 굉장히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SB: 나이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웃음)

 

강양구: (웃음) 그럴지도. 아무튼, 파격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 파격이 가지고 올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라든가, 문제점들을 미리 한번 점검하고 또 토론하고 공론에 붙여서 서로 의논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파격이 자칫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파격이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게끔 제어하고 토론하고 때로는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서로를 이해하고 상호 소통하면서 최선의 선택지를 찾아가는 공동 노력일 텐데, 저는 그런 공동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가치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그것은 품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과학 기술과 사회의 관계잖아요. 그런데 제가 만나 본 과학 기술자들은 대체로 파격을 추구합니다. 이전에 없던 것, 기존 틀을 깨는 것, 기성 세계에 도전하는 것을 추구하는 게 과학 기술자들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에요. 그러다 보니까 과학 기술자들은 자신의 파격적 연구가 가져올지도 모를 부작용이라든가 의도하지 못했던 결과까지 가늠하기 어려운 편이죠. 사실 그런 걸 밤새 연구만 하는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굉장히 가혹한 일이에요. 그렇다면 그 일은 누가 해 줘야 하냐. 시민들이 해 줘야 하죠. 또 과학 기술자들만큼이나 자신의 일상으로 바쁜 시민들을 대표해서, 저처럼 취재하고 문제 제기하는 게 업인 사람들이 과학 기술자들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면서 그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 같은 사람들의 노력이 파격을 추구하다 파탄에 이를지도 모를 과학 기술에 균형을 잡아 주고 품격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의 품격: 과학의 의미를 묻는 시민들에게』라는 제목과 부제는 이런 고민에서 나오게 된 거지요. 저는 품격이라는 단어가 보수의 단어가 아니라, 우리가 기본적으로 지향해야 되는 어떤 균형 감각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다 품격 있는 과학, 보다 품격 있는 사회, 보다 품격 있는 인간은 좌우를 떠나서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닐까 싶어요.

 

SB: 품격이 균형 감각의 결과물이라는 것 참 좋은 말인 듯합니다. 이 책이 ‘진보연하는’ ‘선비 기질’의 기자가 잘 나가는 과학 기술의 딴죽을 걸고 발목을 잡는 책으로 읽히는 게 아니라, 균형을 잡기 위한 시도로 읽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지식 큐레이터라는 새로운 업

 

SB: 17년 동안 과학 전문 기자 또는 과학 저널리스트라는 타이틀을 써 왔는데, 최근에는 ‘지식 큐레이터’라는 타이틀을 쓰시기도 하잖아요? ‘지식 큐레이터’라는 것의 의미를 소개해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최근 활동에 대한 소개도 되겠죠.

 

강양구: 제가 3년 전에 15년 가까이 몸담아 왔던 언론사를 나오면서 약간 자유롭게 이런저런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처지가 되었어요. 그러면서 저널리즘, 기자라는 업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고민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당시 시민 모두가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시민 저널리즘, 미디어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소셜미디어 등의 가능성 같은 이슈들이 뉴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굉장히 많이 거론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레거시 미디어’라고 불리는 전통적이고 매체에서 정통 저널리즘 교육을 받아 온 기자들이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니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일반인의 글들을 기사화하고, 속보 경쟁에서도 전통 기자들이 소셜미디어의 일반 이용자들을 속도 면에서 따라가지 못하고, 그들이 올리는 동영상이나 사진 등에 의존하거나 하는 것을 보면서, ‘아, 저널리즘의 정체성, 그리고 기자라고 하는 업의 정체성에 큰 변화가 오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새로운 저널리즘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새로운 직업군의 하나로 제가 떠올려 본 게 바로 ‘지식 큐레이터’였죠.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원래 있었지만, 그 앞에 ‘지식’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타이틀 삼아 여기저기 매체에 기고도 하고 방송에 출연도 하고 한 건 제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의 「신과함께」 118화에 출연한 모습. 사진 유튜브 화면 갈무리.

 

자, 지식 큐레이터라는 것은 어떤 업이냐? 한번 설명해 볼게요. 과거에는 일반 시민들이 정보 자체에 접근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기자가 필요했죠. 일반 시민들 대신 새로운 정보를 취재하고 발굴해서 그들에게 전달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마음만 먹는다면 기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굉장히 다양한 정보들에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죠. 시민들이 접근 가능한 다양한 정보 중 과연 어떤 정보가 진짜 정보이고, 어떤 정보가 가짜 정보이고, 또 어떤 정보가 가치 있는 정보이고 어떤 정보가 가치가 없는 정보인지를 판단해 주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즈음에 김준일 기자라고 하는 훌륭한 저널리스트 한 분과 협업을 해서 ‘뉴스톱’(홈페이지)이라고 하는 팩트 체크를 전문으로 하는 미디어를 새로 창간하는 데 참여도 했었죠.

 

한편으로는 세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진짜 정보는 무엇이고, 가치 있는 정보는 무엇인지를 ‘큐레이션’해서 전달해 주는 역할이 저널리즘의 중요한 새 임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식 큐레이터라고 하는 타이틀을 만들어서 기고하고, 활동하는 데 썼죠. 지식 큐레이터라고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제가 실험을 해 본 글들이 이 『과학의 품격』에 많이 묶여 있습니다. 시민들이 지금 꼭 알아야 할 과학 기술 관련 뉴스와 정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정보 속에서도 그냥 알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한번쯤 성찰해 봐야 할 내용들이 무엇인지를 제가 먼저 공부하고 먼저 고민해서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황우석 사태에서 한국 사회는 무엇을 배웠나?

 

SB: 자, 그럼 다음 책 내용으로 들어갈 볼까요. 이 책이 모두 4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황우석 사건을 되돌아보는 얘기이고, 2부는 과학 기술이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지 도움을 주는지, 과학 기술의 의미를 깊이 따져보는 꼭지이고, 3부는 신재생 에너지니, 인공 지능이니, 블록체인이니 미래 기술로 상찬되는 것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4부는 보건, 안전, 의료, 위생 등 여러 주제들을 다루고 있죠. 각 부별로 하나씩 살펴볼까요?

 

먼저, 황우석 사건을 다룬 1부 「과학의 품격을 지키기 위한 싸움: 아무도 말하지 않은 황우석 사태의 진실」. 벌써 15년이 지난 사건을 새로운 책의 첫머리에 실었는데, 왜 그랬는지 설명해 주시면 좋을 듯해요.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일부는 잊고 싶은 과거잖아요. 치부이기도 하고. 그 사건이 2020년 한국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던져 주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강양구: 2005년, 그러니까 15년 전에 있었던 황우석 사태를 지금 다시 소환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독자들이 분명히 있겠지요. 그런데 앞에서 분명히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은 과학 저널리스트로서 해 온 17년간의 활동을 한번 갈무리해 보자는 개인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 저널리스트로서 저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해 준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이어진 황우석 사태를 빼놓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겠더라고요.

 

사실 1부의 원고가 된 르포르타주를 이 책에 넣자고 제안했을 때 편집부에서는 반신반의하셨죠. 심지어는 편집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원래 4부, 그러니까 책 뒷부분에 있던 걸 앞으로, 1부로 당기자고 제안했던 것도 저죠.

 

거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먼저, 20세기 이후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 과학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세요. 나아가서 지금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저는 여전히 황우석 사태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우석 사태를 모티프로 한 2014년 개봉 영화 「제보자」. 이 영화에서 강양구 기자의 역할을 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황우석 사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추적했던 저널리스트로서 평가를 해 보자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황우석 사태와 관련된 여러 가지 교훈들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고 있고,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책에서, 그것도 1부에서, 도대체 15년 전 황우석 사태 때 실제로 벌어진 일이 무엇이고, 그 사건을 통해 우리가 성찰해 봐야 할 지점들이 무엇이었는지 꼭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짧은 르포르타주지만 읽어 보시면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여러 오랜 문제들이 뒤얽힌 수많은 이슈들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서 진실과 거짓을 어떤 식으로 판별할 것인가, 지식인과 저널리즘의 역할은 무엇일까, 성장 지상주의, 경제 지상주의는 과학 기술 분야에 어떤 폐해를 가져다주는가 등등,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여러 가지 내용들이 황우석 사태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짧은 르포르타주지만 그런 내용들을 추려 가지고 정리를 해 봤습니다. 독자 분들도 한번 읽어 보시면, ‘아, 황우석 사태라는 게 그저 과거 일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사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의미도 있습니다. 제가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과학 저널리스트 강양구의 정체성을 만들어 준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황우석 사태라고요. 그래서 독자들이 이런 즐거움도 있을 것 같아요. 15년 전에 3년차 햇병아리 기자였던 강양구가 황우석 사태를 겪으며 어떤 식으로 성숙했고, 또 어떤 식으로 관심이나 관점이 변화했는지를, 1부를 읽고, 황우석 사태의 영향을 염두에 두면서 2부, 3부, 4부를 읽는다면, 직접 확인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황우석 사태와 관련된 르포르타주를 일부러 1부에 넣었고, 이제 2부, 3부, 4부에는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지식 큐레이터인 강양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관심사와 관점, 고민을 좀 다양하게 보여 줄 수 있는 글들을 배치했습니다.

 

SB: 저는 1부를 보면서 우리 강양구 선생님이 소설가 재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을 워낙 좋아하시는데 작가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기자 하다가 소설가 하는 분들도 역대로 많았잖아요? 소설, 픽션 욕심은 없어요?

 

강양구: 사실, 이 글을 보시고 소설가 재능이 보인다고 칭찬해 주신 분들이 없지는 않아요. 부끄럽네요. 그런데 단언컨대 저는 평생 단 한 번도 문청(문학 청년)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제가 소설을 창작할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좋은 소설 독자로 남고 싶습니다. 소설 쓸 생각 없어요. (웃음)

 

SB: 황우석 사태가 과학 저널리스트 강양구에게 정말로 중요한 사건이었군요. 그렇다면 2020년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 주시면 어떨까요.

 

강양구: 제가 앞서 에둘러서 말씀을 드렸던 것 같은데, 2005년에 황우석 사태가 일어났을 때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2019년, 2020년에도 사실은 별로 변한 게 없다고 했었죠. 포커스를 좁혀서 과학 기술 정책만 놓고 이야기해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는 실체가 없는 연구였어요. 줄기 세포가 없었지요, 연구 과정 자체도 굉장히 불투명했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았죠. 심지어 과학자가 해서는 안 되는 데이터 조작까지 서슴지 않았죠.

 

자, 그런데 그런 모든 일들이 가능했고, 또 용인될 수 있었던 분위기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죠. 당시 황우석 박사의 인간 배아 줄기 세포 연구가 세계 최초이고, 또 어쩌면 굉장히 많은 부를 낳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에 과학 기술에 아무런 이해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많은 일반 시민들이 황우석 박사 연구에 열광을 했고, 그리고 또 정부에서도 한 명의 과학자가 받기에는 파격적인, 굉장히 많은 지원을 범정부, 전 국가적인 차원에서 했었던 거지요.

 

자, 그렇다면 지금은 좀 달라졌나? 저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가끔 나서서 특정한 과학 기술 연구 방향을 목소리 높여서 이야기하실 때가 있습니다. 얼른 떠오르는 예는 인공 지능(AI), 수소 자동차 같은 것들이겠지요. 그런데 대통령께서 수소 경제, AI 언급하실 때면 항상 우리나라가 수소 경제로 전환하면, 얼마나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고, 경제 성장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고, 우리나라가 얼마나 더 잘살 수 있는지만 말씀하십니다. AI도 똑같아요. 우리나라가 AI 분야에 돈을 많이 쏟아부으면 AI 연구의 세계적인 선두 그룹이 될 테고, 그것이 결국에는 기업에 도움을 줄 테고, 많은 부를 창출할 것이라는 뻔한 이야기만 하시지요. 인간 배아 줄기 세포가 수소 경제나 인공 지능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그 틀이나 정서나 가치관은 바뀐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기술은 물론 먹고사는 일과도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은 먹고사는 일로만 환원할 수 없는 굉장히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과학 기술은 그 자체로 예술에 비견할 만한 창의력의 산물이고요. 그리고 우리의 일상과 세상을 굉장히 많이 바꿀 수 있는 변혁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요.

 

인터뷰 중인 강양구 기자.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SB: 「머리말」에서 “이 책에서 나는 결코 ‘돈’ ‘경제’ ‘성장’과 동일시할 수 없는 과학 기술의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당장 과학 기술은 문학, 그림, 음악 등 훌륭한 예술 작품이 그렇듯이 인간의 가장 빛나는 창의력의 산물이다. 더구나 그렇게 세상에 등장한 어떤 과학 기술은 우리 삶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과학 기술은 그 자체로 ‘문화’다.”라고 하셨죠.

 

강양구: 네. 과학 기술 자체가 하나의 문화죠. 또 한편으로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 불공정, 불행 같은 것을 낳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과학 기술이 돈을 얼마나 벌어다 줄지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그 과학 기술의 혜택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지, 또 혹시 그 과학 기술이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 과학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여러 문제들을 오히려 심화시키고 조장하지는 않는지, 성찰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과학 기술 담론 속에서는 과학 기술을 문화로 보는 시각이라든지, 그리고 과학 기술과 사회의 상호 작용을 성찰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정작 창의력 있고, 새로운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나 공학자들조차도 행복하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한국 사회나 정부가 항상 성과를 요구하고,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다 보니까 자기가 하는 연구를 당장의 성과나 돈벌이와 연결시키지 못하는 과학 기술자들은 항상 주변으로 밀려서 소외되는 거죠.

 

또 지금은 각광 받는 분야에 있는 과학자나 엔지니어도 계속해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 나머지 불행해지죠. 경쟁하면 불행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해서는 안 될 논문 조작을 한다든지, 아니면 자신의 연구 성과를 부풀린다든지 하는 유혹에 넘어가기가 쉬운 거죠.

 

이 모든 상황은 15년 전 황우석 박사가 처했던 것과 하나도 바뀌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언제라도, 어떤 실험실에서라도 개인적, 구조적 일탈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 지금의 현실을 성찰해 보자고 제안을 드리는 것입니다.

 

(2편에 계속)

 


강양구

프리랜서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환경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부안 사태, 경부 고속 철도 천성산 터널 갈등,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 언론상, 녹색 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프레시안》 편집부국장, 코리아메디케어의 콘텐츠 본부장(부사장)으로 재직했다. 현재 팩트체크 미디어 《뉴스톱》의 팩트체커로 활동하면서, 지식 큐레이터로서 「YG와 JYP의 책걸상」을 진행하고 SBS 라디오 「정치쇼」 등 여러 매체에서 과학 뉴스를 소개하고 있다. 『과학의 품격』,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1, 2권),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과학 수다』(공저), 『밥상 혁명』(공저), 『침묵과 열광』(공저), 『정치의 몰락』(공저), 『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공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공저) 등을 저술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과학의 품격』 [도서정보]
과학은 만능일까 묻는 시민들에게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원자력과 석유 없는 세상을 예언한, 에너지 전환 시대 필독서

 

『과학 수다』 1권

과학 콘서트의 시대가 가고 과학 수다의 시대가 왔다

 

『과학 수다』 2권
빅 데이터에서 투명 망토까지

 

『과학 수다』 3권
대통령을 위한 뇌과학 이야기

 

『과학 수다』 4권
김상욱, 이명현, 강양구가 펼치는 우주 최강의 과학 토크쇼

 

『불확실한 세상』

위기의 시대를 좌우할 열쇳말이 담겼다!

 

 

『정치의 몰락』

보수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권력의 탄생을 예언한 정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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