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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정신의 수호자 칼 세이건의 마지막 임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과학 정신의 수호자 칼 세이건의 마지막 임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Editor! 2022. 6. 30. 16:06

코로나19의 엔데믹과 함께 찾아온 전 세계적 경제 위기와 전쟁의 시대, 은하수 은하의 오리온자리 나선 팔 한쪽 구석에서 노랗게 빛나는 작은 별 주위를 도는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 사시는 독자 여러분은 안녕하신가요? 사이언스북스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오랜만에 칼 세이건의 책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이번 책은 세이건이 살아 있을 때 마지막으로 출간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입니다. 골수성 혈액암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칼 세이건은 글쓰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코스모스에 대해, 인간에 대해, 그리고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과 그것을 바로잡아 줄 유일한 길인 과학과 민주주의에 대해 뜨거운 바람을 담아 그의 생전 마지막 저술을 출간해 내고 세상을 떴습니다. 원서는 1995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한국어판은 2001년 여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습니다. 이번 책은 번역을 완전히 새롭게 다듬고, 누락된 부분을 온전하게 보강해 출간한 완전판입니다. 그 지난한 작업을 마무리한 옮긴이 이상헌 서강 대학교 전인 교육원 교수님이 후기를 대신해서 글을 한 편 보내 주셨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27년 만에 돌아온 칼 세이건의 마지막 편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사이언스북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칼 세이건은 행성 과학 연구와 과학 대중화에 일생을 바쳤으며 두 분야 모두에서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지난 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우주 계획들에 참여했다. 보이저 프로젝트와 파이오니어 프로젝트에서는 기금 조성에서부터 수행 과정에 이르기까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과학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고, 과학이 정치적 목적으로 잘못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커다란 노력을 기울였다. 과학 정신으로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로서의 역할 이외에 그가 일생의 과제로 삼은 또 하나의 임무였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세이건이 세상을 떠난 해에 출간되었다. 그는 우주 탐사 계획이든 과학 대중화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언제나 열정적이었다. 이 책에서는 미확인 비행 물체(UF0), 점성술, 초심리학, 정신 분석, 심령 치료, 신앙 요법 등 대표적인 반과학에 맞서 이것들에 숨겨진 거짓과 속임수를 밝혀내는 데 온 정열을 쏟아부었다. 아마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과학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장식하려고 한 듯하다. 반과학의 허위성을 밝히기 위해 그가 조목조목 따지고 있는 사례들의 방대한 분량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책이 나오기까지 그가 얼마나 오랜 기간 자료를 수집하고 생각을 다듬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과학 문맹률 95%,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유사 과학의 유행, 한국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 사이언스북스.

 

현대 문명에서 우리의 삶은 과학 기술에 의존해 있다. 따라서 과학에 문맹이 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는 과거 어느 때보다 위험천만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과학 문맹이라는 사실이 오늘의 현실이다. 세이건이 인용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 최첨단의 과학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경우에 과학 문맹률이 95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은 남북 전쟁 직후 흑인의 문맹률과 같은 수치인데, 당시에는 흑인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과학 문맹은 단순히 과학적 지식을 모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과학의 핵심은 과학의 성과에 있지 않고 과학적 사고 방식, 즉 회의적 태도와 엄격한 방법의 실천,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 자유롭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비판적 사고 방식에 있다. 히포크라테스 시대의 사람들은 간질의 원인을 신이 내린 벌로 생각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간질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과학적으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오늘날 간질에 대해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고 효과적인 치료법들이 발견되었는데, 여전히 간질의 원인을 신 또는 악마와 결부시키거나, 간질 치료에 있어 신적인 것 또는 초자연적인 것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왜 그럴까?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사 과학의 유혹이 너무도 매혹적이기 때문일까?

 

유사 과학에 대한 세이건의 분석은 매우 예리하다. 우리는 그의 분석에서 사람들이 유사 과학에 쉽게 속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유사 과학은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들의 욕구에 호소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문제를 크고 작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유사 과학은 결핍된 것에 대한 욕구,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현실의 삶에 대한 불만과 고통 등 사람들의 감정을 이용할 줄 안다. 유사 과학은 우리가 개인적인 갈망에 대한 환상을 제공한다. 우리의 꿈이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해 준다면,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면, 외계인에게 지구의 미래에 대해 듣게 된다면? 유사 과학은 사람들의 정신적 허기를 충족시키고, 환상으로 현실에서 도피할 길을 마련해 주는 척한다.

 

유사 과학은 실재와의 대면이라는 부담을 회피한다. 그래서 과학과 달리 상황에 따라서 이렇게 혹은 저렇게 대응하기 쉽다. 증거의 기준이 훨씬 느슨한 것은 유사 과학이 과학보다 일반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유사 과학은 과학 철학자 칼 포퍼(Karl R. Popper)가 이른바 점쟁이의 책략이라고 이름 붙인 전술을 이용한다. 유사 과학은 어떠한 연명도 명백하게 하지 않으며 엄밀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모호한 표현으로 해석의 다양성을 예약해 놓는다. 고대 아테네에서 유행하던 신탁의 예언은 너무나 모호하게 표현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런 전략으로 신탁은 늘 참이 되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점성술은 해석과 예언을 아주 모호하게 해서, 그 이론과 예언이 좀 더 정확했다면 논박되었을 그 어떠한 것도 설명해 넘길 수 있다.” 이것을 반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될 수 있는 한에서 분명하게 표현할 것을 요구받는 과학의 경우와 다르다.

 

 

 

유사 과학은 문제의 회피일 뿐

과학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오류 가능성에 대한 신랄할 인정에서 시작된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 사이언스북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세이건은 유사 과학의 문제를 강력한 어조로 지적한다. 유사 과학은 과학의 발전에 해를 입히고, 사람들을 오류에 빠뜨린다. 유사 과학은 과학을 부정하면서 과학의 방법과 발견을 임의로 활용하여 사람들을 오류에 빠뜨린다. 과학은 경험과의 치열한 대결을 통해 생존하지만 유사 과학은 실재와의 대면으로 마음 고생 하는 일을 쉽게 회피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세이건의 말대로 유사 과학은 사람들을 암흑 속으로 몰아넣고 쉬운 답변을 제공해 회의적 태도에 기초한 엄밀한 검증을 교묘하게 회피하게 하고, 사람들의 두려움 마음을 자극하고 경험을 천박하게 만들며 사람들을 관성적으로 움직이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나태한 인간으로 전락시킨다.

 

세이건은 과학과 유사 과학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유사 과학이 오류를 무조건적으로 회피하는 데 반해서 과학은 오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실, 과학은 오류를 토대로 번성한다. 오류를 발견하고, 오류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방식으로 과학은 발전한다. 언제나 틀릴 수 있지만, 또 언제나 틀린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유사 과학은 절대로 틀릴 수 없다. 포퍼가 말한 반증 가능성은 과학과 유사 과학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기준이다. 과학적 진술은 경험을 통해 그것이 참임을 입증할 수단을 강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참이 아님을 증명할 수단에 대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 예컨대, 영혼의 환생에 관한 진술은 그 진술이 거짓임을 입증할 방도가 없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오류 가능성에 대한 신랄한 인정이 있는 곳에서 과학이 시작될 수 있다. 유사 과학은 자신의 불완전성과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을 결단코 거부한다. 자신의 점괘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점쟁이가 어디 있겠는가? 유사 과학은 심각한 것일지도 모르는 우리의 오류가 영원히 우리의 동반자가 되게 만든다. 만일 우리가 조금만 용기를 내어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평가할 수 있다면, 비록 그것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무리 슬픈 반성일지라도 우리의 기회는 엄청나게 증가할 테지만, 유사 과학은 그 길을 차단함으로써 우리에게서 기회를 빼앗아간다.

 

 

 

유사 과학과의 대결은 과학자의 책임

탈진리의 시대와 대결할 길을 세이건에게 묻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 사이언스북스.

 

사정이 이러한데도 유사 과학을 그냥 보아 넘기고 대결하지 않는 것은 과학자의 무책임이다. 그런데 많은 과학자는 유사 과학을 논박하는 것, 유사 과학과 공개적인 토론을 벌이는 것을 혐오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한편으로 이런 과학자의 태도를 비판하고, 진리 탐구자로서 과학자의 책무를 일깨우고 있다. 유사 과학의 유혹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고, 대중이 유사 과학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과학적 이해를 돕는 것은 과학자의 본연의 책임이다.

 

세이건은 유사 과학적 믿음을 퇴치하고 과학적 정신을 확산시키기 위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회의하고 냉정하게 비판하는 과학적 사고, 비판적 정신을 어렸을 때부터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올바른 과학 교육은 과학적 지식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요체인 과학적 사고와 태도를 길러 주는 것이다. 세이건은 이것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일깨워 주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21세기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과학 기술의 위력이 크게 발휘되는 시대이다. 과학 기술의 성과물들이 우리 삶의 세부적인 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어느 시대보다 많은 사람이 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정보 기술 덕분에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에 접근 가능한 시대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지금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단어가 탈진리(post-truth)’이다. 참과 거짓, 실재와 허상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과학으로부터 과학 아닌 것(유사 과학)을 분별해 내고, 인류에게 해악이 되는 유사 과학을 떨쳐 버릴 것을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권고한 그의 책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읽으면서 여전히 우리에게 그의 목소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이상헌

서강 대학교에서 칸트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기술의 대융합, 인문학자, 과학 기술을 탐하다, 따뜻한 기술, 싸우는 인문학(이상 공저), 융합 시대의 기술 윤리, 철학자의 눈으로 본 첨단 과학과 불교, 철학, 과학 기술에 말을 걸다, 철학, 과학 기술에 다시 말을 걸다등이 있다. 현재 서강 대학교 전인 교육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도서 정보]

 

『코스모스』 [도서 정보]

전 세계 과학자들이 추천하는 제1의 과학서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도서 정보]

전 세계 181개국, 10억 시청자를 사로잡은 「코스모스」의 정식 후속작!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도서 정보]

인류의 운명에 대한 괴학적 성찰

 

『혜성』 [도서 정보]

우주의 미스터리를 풀어 줄 타임캡슐의 모든 것

 

『지구의 속삭임』 [도서 정보]

인류가 심우주로 보낸 편지

 

『창백한 푸른 점』 [도서 정보]

현대 천문학을 바탕으로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를 찾다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도서 정보]

과학계와 종교계를 뜨겁게 달군 위대한 강연

 

『에필로그』 [도서 정보]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메시지

 

『콘택트』 전 2권 [도서 정보]

외계 생명과의 만남을 그린 명작 영화의 원작

 

『에덴의 용』 [도서 정보]

뇌과학과 우주적 상상력의 만남!

퓰리처 상 수상작

 

『코스믹 커넥션』 [도서 정보]

50년의 세월에도 바래지 않는 칼 세이건의 통찰

 

『브로카의 뇌』 [도서 정보]

칼 세이건 사상의 미싱링크를 밝혀 줄 우아한 과학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