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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심리 극장 (6관)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가져다 준 것은?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한밤의 심리 극장

한밤의 심리 극장 (6관)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가져다 준 것은?

Editor! 2013.11.25 14:39

진화심리학으로 드라마와 영화, 소설, 그림 등을 들여다봄으로써 인간 본성에 한 발짝 더 다가서려는 시도를 담은 <한밤의 심리 극장>,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한밤의 심리극장

by 홍승효


한밤의 심리 극장 (0관) / 

한밤의 심리 극장 소년 (1관) 질투는 나이 들지 않는다 

한밤의 심리 극장 (2관) 구애의 정석 : 썸남, 썸녀를 만나다 

한밤의 심리 극장 (3관) 거울이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한밤의 심리 극장 (4관) 선하지만 '공감제로'인 그와 공존하는 법 

한밤의 심리 극장 (5관) 친절한(?) 악마, 사이코패스의 두얼굴 에 이어...


제6관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가져다 준 것은?

       -- 리얼 야생 체험 버라이어티「정글의 법칙」




   ‘정글의 법칙’은 스타들로 이루어진 정글 원정대가 오지를 찾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숙식을 해결하며 생존의 법칙을 몸소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얼마 전 ‘조작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겪은 바 있다. 불을 피우느라 고생하는 동료 뒤에서 출연진 중 한 명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방영된 것이다. 잠자리 해결, 먹을 것 찾기, 해충과 위험한 동물 피하기 등 야생에서 해결해야 되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불 피우기는 굉장히 중요한 작업에 속한다. 방송을 보면 경우에 따라서 몇 십 분 내지는 몇 시간까지 소요되는 경우가 있는데 문제가 된 방송에서도 2시간 가까이 불붙이기에 실패한 상태였다. 바로 앞에서는 불 피우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뒤에서는 버젓이 담배를 피우다니! 시청자들이 화를 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제작진들은 편집 실수라 해명했지만 이로 인해 방송 때마다 여러 번 부각됐었던 불피우기의 고생은 그다지 진실성이 없는 싱거운 드라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찌되었든 이 일은 불피우기가 야생에서 주요한 난제가 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병만족이라 불리는 원정대는 여러 가지 필요에서 불을 피우느라 매번 고생하지만 그 중 큰 이유 하나는 획득한 음식을 익혀먹기 위해서다. 간혹 현지인들에게 날로 먹어도 된다고 인증받은 먹거리에 대해서도 병만족은 익혀먹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그편이 안전하기도 하고 먹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야생에서 고생하다가 부족하나마 획득한 먹거리로 따뜻하게 조리된 만찬을 나누는 순간은 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훈훈한 모습들 중 하나다. 부드럽게 익힌 음식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고 내일 또 야생으로 나가 활동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만약 이들이 하루 종일 고생하고도 불을 피우지 못한 채 뻣뻣한 야생과일과 애벌레로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마도 시청자들이 느끼는 안쓰러움은 배가 될 것이다. 생선 두어 마리, 라면죽 하나가 될지라도 뜨끈하게 익힌 음식이 주는 든든함은 먹는 사람에게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현실에서는 회가 고급 음식에 속하고, 다이어트나 건강상의 이유로 생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더라도 힘든 야생에서의 만찬은 역시 따뜻하게 익힌 음식이 되어야 맞는 것 같다. 정확히 테스트해 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은 익힌 음식이 가진 파워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오늘도 병만족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불을 피우는 것일테다.



<정글의 법칙>

야생에서 불을 피우느라 고생하고 있는 원정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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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년 전 나는 생채식에 도전해 본 적이 있다. 반복되는 과식과 야식, 만성피로로 소화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고 더불어 늘어나는 뱃살이 걱정되기도 하던 때였다. 그런 내게 음식을 익히지 않고 먹으면 몸에 필요한 효소들을 파괴하지 않고 섭취할 수 있으며, 소화에 쓰이는 에너지는 증가하는 반면 흡수되는 에너지는 감소하여 다이어트가 되는 효과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는 말은 꽤나 매력적으로 들렸다. 나는 생채식 가이드에 따라 품질이 좋은 유기농 채소들과 과일, 견과류와 곡식들을 준비했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 대신에 생현미를 깨끗이 씻어 물에 삼십분 이상 불린 후 10숟가락 가량을 천천히 씹어 먹었다. 푸른 잎 야채와 견과류, 과일들도 양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먹었다. 가이드에서 제시하는 한 끼 식사량은 생각보다 풍성했다.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려 제시된 식사량을 다 먹었다. 배도 든든했고 어딘가 영혼이 맑아진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루 만에 몸무게도 1키로나 줄었다. 생채식, 정말 대단한 방법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생채식 도전기는 3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익히지 않은 곡식을 씹어 삼키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턱이 몹시 아프고 뱃속도 부글거리는 것이 영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경험자들은 곡식을 씹어 먹는 대신 갈아먹을 것을 권했지만 곡식 가루의 까슬까슬한 식감이 마뜩잖고 가는 행위 자체가 상당히 귀찮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잘 익은 요리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맛이 그리웠다.

   3일 만에 끝난 생식 체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생식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에서는 화식이 오히려 드문 일이지만 현대의 인간에서는 날음식을 주식으로 삼는 일이 상당히 드물다.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날음식을 씹어 삼켜 소화시킬 수 있는 기능이 상당부분 결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과일을 제외한 날음식, 날고기나 곡식을 먹는 행위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기에 정글의 법칙에서 병만족이 순록 생식을 했을 때 ‘못 먹는 게 없다’, ‘멘붕의 결정타’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나타난 것이겠지. 어째서 이러한 차이가 생긴 것일까? 화식이 가능하려면 먼저 ‘불’이 있어야 한다. 불을 이용하기 전에는 인간들도 다른 동물들처럼 생식을 했을 게 분명하다. 화식이 인간의 식탁에 언제 맨 처음 등장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 사라지지 않고 식습관 전반으로 퍼져나가게 된 데에는 분명 무언가 중요한 이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을 익혀먹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익힌 음식은 음식 내부나 표면에 존재하는 기생충과 바이러스, 곰팡이, 세균들을 제거하여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준다. 또 익히는 과정에서 음식 내부의 독성이 감소하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로 감자를 익히면 아린 맛이 없어지는 현상을 들 수 있다. 또 불에 익히는 과정을 통해 음식물의 ‘저장성’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가열하여 음식물의 수분을 줄이고 세균을 제거함으로써 부패의 진행속도를 늦추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음식을 익히면 먹기가 편해진다. 딱딱한 껍질, 단단한 과육, 질긴 고기들이 자르고 으깨기 쉬운 상태로 변한다. 덕분에 식량으로 유용할 수 있는 식재료의 범위도 넓어진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들보다도 더 중요한 이점은 음식을 익히면 그로부터 얻는 에너지의 양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생식이 다이어트 효과를 내는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이유로 화식은 음식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효율성을 증가시킨다. 익힌 음식은 날음식에 비해 씹기 편하고 위와 장의 소화 부담을 줄여준다. 똑같은 종류의 익힌 음식과 날음식을 같은 양만큼 먹고 소장을 통과한 뒤 남은 음식물의 소화율을 계산하면 익힌 음식의 소화율이 날음식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한다. 같은 음식을 먹는데 더 적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더 많은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은 먹을 것이 귀했던 과거에는 분명히 상당한 이점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감자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 1885, 반 고흐 미술관 소장>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여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

만약 이들이 익힌 감자가 아니라 소화하기 힘든 생감자를 저녁식사로 오랫동안 씹어 먹어야만 했다면 식사는 휴식과 충전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노동이 되었을 것이다.


   인간과 체격이 비슷한 대형 유인원들은 보통 낮 시간의 42퍼센트, 즉 하루의 12시간 중 5시간 이상을 음식물을 씹는데 소비한다고 한다. 반면 인간이 음식물을 씹으며 보내는 시간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미국의 9~12세 어린이들이 식사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동안 총 1시간 남짓이며 남태평양의 사모아, 베네수엘라의 예콰나를 비롯한 12군데의 자급자족 사회에서 조사한 아이들의 식사시간도 이와 비슷하다. 화식으로 인해 음식물의 소화와 섭취가 쉬워지면서 인간의 몸은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턱과 치아, 위와 장의 크기가 축소하여 현재와 같은 형태로 신체의 구조가 변화되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인류가 다른 유인원들에 비해 독보적으로 크고 발달된 뇌를 가지는 것이 가능해졌다. 큰 뇌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에너지 소모율이 높은 신체의 다른 조직(소화관)이 작아진 덕분이라는 것이다. <고비용 조직 가설(the expensive tissue hypothesis)>이라 불리는 이 이론은 인류의 뇌 크기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이유를 음식의 질이 향상된 데서 찾는다. 실제로 뇌는 인간의 기초 대사량 중 20%를 소모하는 고비용 기관이다. 게다가 ‘포도당’이라는 탄수화물 소화의 최종 산물, 극도로 정제된 당분만을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만약 과거 인류가 에너지 섭취의 효율성을 극적으로 증가시키지 못했다면 현재와 같은 크기로 뇌가 발달하기란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과연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가져다 준 것은 그냥 불이 아니라 신체와 지능의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 문명의 불씨였던 것이다.

   물론 음식을 익히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영양소나 새롭게 생겨나는 독성물질들도 존재한다. 감자튀김이나 직화로 구운 고기에서 발견되는 발암물질들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섭취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다른 무엇보다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던 과거에는 화식이 가지는 이점이 이런 불이익들을 상쇄하고도 남았을 수 있다. 충분한 에너지의 섭취는 신체의 발달과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번식력과 자식들의 생존율을 높여 화식을 하는 인류가 널리 퍼지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황제 수인씨.> 수인씨는 나무를 마찰하여 불을 얻어 음식물을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화식을 하지 않는 야생동물들도 날먹을거리보다 익힌 음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진화 인류학자 빅토리아 워버와 브라이언 헤어는 침팬지를 비롯한 유인원을 대상으로 익힌 음식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고구마와 사과는 익힌 것과 날 것을 똑같이 좋아했지만 당근, 감자, 고기는 익힌 것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화식을 하지 않음에도 익힌 음식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리처드 랭엄 교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익힌 음식을 선호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고열량의 양식을 알아보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익힌 음식을 선호하는 데는 맛이 한몫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많은 음식이 익히면 맛이 달라지는데 주로 단맛은 더해지고 쓰거나 떫은 맛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단 맛’은 탄수화물이 분해되어 생기는 당류에서 나오는 맛으로 인간의 양수는 태아에게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단맛을 띠며 인간은 태아 때부터 단맛에 대한 선호도를 가지고 있다. 같은 이유에서 야생동물들도 단 맛을 선호하게 되었다면 이들이 평상시 먹는 날음식보다 익힌 음식을 선호하는 것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바로 당신이다’라는 말이 있다. 진화적인 측면에서 이 말은 틀림없이 진실이다. 음식은 인류의 삶을 바꿔놓았다. 화식을 한 탓에 인간은 다른 유인원에 비해 발달한 두뇌와 잘록한 허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이 발표한 ‘한국인 체형 정보’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출생한 신세대 턱 용적은 그 전에 비해 15% 줄었다고 한다. 또 얼굴은 작아지고 키는 크는 등 전반적으로 체형이 서구화되었다고도 한다. 이러한 변화의 한 가지 원인을 극도로 정제된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서구화된 식생활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이런 변화가 나만은 빗겨 갔는지 조금은 의아하지만 식생활의 변화와 더불어 인류의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먹게 된 요즘, 미래에 인류는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벌써부터 그 변화가 사뭇 기대된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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