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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심리 극장 (5관) 친절한(?) 악마, 사이코패스의 두얼굴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한밤의 심리 극장

한밤의 심리 극장 (5관) 친절한(?) 악마, 사이코패스의 두얼굴

Editor! 2013. 10. 31. 10:37

진화심리학으로 드라마와 영화, 소설, 그림 등을 들여다봄으로써 인간 본성에 한 발짝 더 다가서려는 시도를 담은 <한밤의 심리 극장>,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한밤의 심리극장

by 홍승효


한밤의 심리 극장 (0관) / 

한밤의 심리 극장 소년 (1관) 질투는 나이 들지 않는다 

한밤의 심리 극장 (2관) 구애의 정석 : 썸남, 썸녀를 만나다 

한밤의 심리 극장 (3관) 거울이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한밤의 심리 극장 (4관) 선하지만 '공감제로'인 그와 공존하는 법 에 이어...


제5관 친절한(?) 악마, 사이코패스의 두얼굴

--  사이코 서스펜스 스릴러,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




우리가 사라지면, 잔혹한 신만이 지배하리라

- 예이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 장례식이 진행 중인 묘지 앞에 창백한 얼굴의 한 소년이 서 있다. 오늘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친모와 의붓아버지의 장례식이다. 식이 진행되는 내내 쉴 새 없이 굵은 눈물을 쏟아내는 소년. 작고 가녀린 어깨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린다. 소년은 지금 눈앞에 벌어진 일을 믿을 수가 없다. 어머니가 죽다니. 어머니가 죽다니. 어머니가 그 차를 탈 줄은 몰랐다. 그 새벽 차고를 몰래 빠져나올 때에도 소년은 어머니의 행복을 빌었다. 지금까지 참았던 것도 다 그녀를 위해서였으니까. 인고의 세월이 이렇게 패륜의 범죄가 되어 발아래로 떨어질지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残酷な神が支配する)는 만화다. 그러나 기분전환 삼아 가볍게 읽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만화다. 가정 내 성폭행과 학대, 살인과 폭력, 협박과 위선 등 묵직하고 음울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첫 장면부터가 충격적이다. 제르미는 자신을 오랫동안 구타하고 성폭행했던 의붓아버지 그레그를 살해한다.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머니에게 양아버지를 소개받은 날부터 평범했던 제르미의 일상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삶의 모든 순간은 그의 지배하에 놓였다. 상당한 자산가이자 존경받는 기업가였던 양아버지. 그러나 그의 다정하고 신사적인 모습의 이면에는 집요하고 잔인한 악마의 면모가 존재했다. 세간의 이목을 의식해 겉으로는 좋은 사람을 연기하지만 뒤로는 스트레스와 울분을 풀만한 만만한 희생양을 모색해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매춘부, 자신을 짝사랑하는 처제 등 약자들을 대상으로 상상을 넘어서는 폭력을 행사해왔다. 사람들을 학대할 때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축제의 가면을 뒤집어쓰는 그레그. 이제 그는 제르미를 새로운 희생양으로 삼아 성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학대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그 어떤 의지나 자율을 꺽어 완전한 자신만의 노예로 만들려고 한다. 제르미는 계속 도망치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레그에 의해 좌절되며 점점 이성을 잃어간다. 학교도 집도 그 어디에도 그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곳은 없다. 남자에게 버림 받을 때마다 자살을 기도했던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참고 또 참는 제르미. 그러나 그레그의 위협과 폭력, 감시와 응징 아래 그의 내면은 잔인하게 짓밟히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을 만큼 궁지에 내몰린다. 결국 의붓아버지뿐만 아니라 실수로 자신의 친모마저 살해하게 된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으로 산산이 부서져 끝이 보이지 않는 밑바닥으로 한없이 추락한다.


그레그는 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가면을 쓴다

残酷な神が支配する ⓒHAGIO Moto

   이 만화는 양아버지의 학대로 인해 처참하게 망가진 소년의 내면이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심리물이다. 저자인 하기오 모토(萩尾望都)는 이 만화로 제1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을 수상했다.[각주:1] 그만큼 스토리가 탄탄하고 심리 묘사가 빼어나며 캐릭터가 살아있다. 제르미는 그레그를 죽인 후에도 그의 환영에 시달린다. 섬뜩한 가면을 쓰고 자신을 짓밟는 그의 환영 속에서 제르미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무너진다. 그레그는 확실히 악마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제르미를 향한 일말의 연민이나 죄책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로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능적이고 철저하며 잔인한 악마. 허구이기에 가능한, 만화적 상상력이 빚어낸 극적인 인물. 그러나 이 이중적이며 냉혹한 인물이 실제로도 존재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존 웨인 게이시(John Wayne Gacy)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청년상공회의소가 주관하는 “올해의 인물”로 뽑힌 건설업자였고 친근한 이웃이자 사회에 헌신하는 구성원이었다. 게이시는 마을 행사 때 삐에로 복장을 하고 마을 주민들을 즐겁게 하는 역할을 도맡아했으며, 민주당원으로 활동하며 카터 대통령의 영부인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또 보육원에 봉사를 다니며 가난한 아이들의 병원비를 위해서 노력했고 어릿광대 분장을 하고 지역병원의 소아 환자들을 위한 자선 공연을 여러 번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광대 차림을 좋아했는데 광대 분장을 하면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성향이 가려져서 보통사람들과 똑같아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성애 성향을 숨기기 위해 일찍이 결혼한 그는 겉으로는 명망 있는 지역인사였지만 뒤로는 33명의 소년들을 강간 살해한 엽기적인 살인마였다. 그는 범행에 자신의 평판과 사업체를 적극 활용했다. 선량한 시민을 자처하던 그의 가면은 매우 견고해서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기 전까지 사람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범행이 발각된 뒤에도 그는 스스로를 다중인격자라 주장하며 중형을 피해가기 위한 연극을 계속했다. 법정에서는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들이 먼저 자기를 도발했으며, 자신은 단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준 것뿐이라는 뻔뻔한 태도를 취했다. 반성이나 후회의 기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형을 당하기 직전 그가 한 말은 ‘우라질!(kiss my ass!)’이었다.


게이시와 카터 대통령의 영부인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의 그레그와 어릿광대 포고라 불린 연쇄살인마 존 웨인 게이시는 서로 많이 닮았다. 사회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는 점, 본성을 숨기고 이중적인 생활을 영위했다는 점, 지능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 약자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 후회나 반성, 사죄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 등이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범죄가 들통났느냐 아니냐 정도일 뿐이다. 이들은 소위 사이코패스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자기 본위, 충동성, 위법행위, 기만성, 공격성, 무책임함, 양심의 부재 등은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다. 극단적인 자기 본위성으로 인해 사이코패스들은 타인에게 공감하기 힘들다. 그 중에서도 정서적 공감 즉, 다른 사람에게 인간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감정을 느끼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잔인하다거나 냉혹하다고 여겨지는 행위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할 수 있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사이코패스하면 대개 범죄자를 떠올린다. 실제로 교도소 수감자 중 15%가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그러나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의 그레그처럼 범죄를 저지르고도 지능적으로 처벌을 피해가거나 처음부터 법에 저촉이 안 될 정도로만 타인을 착취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심지어 사이코패스적 성향으로 인해 사회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도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더턴 교수는 스티브 잡스를 성공한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는다. 스티브 잡스는 매력, 집중력, 무자비함 등 성공에 필요한 세 가지 특징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사이코패스의 가장 전형적인 특성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또 주식브로커 버나드 매도프나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마지막 최고경영자 리처드 펄드도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심리학자인 폴 바비악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인들 사이에서 평균 1% 수준으로 존재하는 사이코패스가 기업주들 사이에서는 25명 중 1명꼴로 존재한다고 한다. 대범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이 폭력성으로 분출되는 대신 공격적인 경영방식과 이윤 창출로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사회 상류층에 사이코패스들이 많이 존재한다면 진화론적 관점에서 그들이 현존하는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이기성의 극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들이 무절제한 범죄자가 아니라 사회의 규칙과 어느 정도 타협할 수 있는 지능적인 착취자가 될 때 그들은 여러 분야에서 자신들의 무자비한 특성을 유리하게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한 사이코패스는 사회에서 ‘잔혹한 신’이라 불릴 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사이코패스를 ‘잔인했던 인류 진화의 산물’이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 UNIST 기초과정부 박승배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인류의 잔인했던 진화의 역사를 반영하는 산물”이라며 선사시대 한정된 자원을 두고 다투던 조상들의 잔인성이 소수의 인간들에게 유전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구석기 시대에는 15%의 인간이 타살된 반면, 20세기에는 3%의 인간만이 타살됐다는 하버드대 심리학과 스티븐 핑커 교수의 자료를 인용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건 끔찍한 범죄자건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는 두려운 존재다. 앞서 말했듯이 사이코패스는 일반인들에서 1% 수준으로 존재한다. 학창시절, 내가 다니던 학교의 한 학년 학생 수는 약 500명이었는데 이 비율을 적용하면 학년 동기들 중 5명이 사이코패스였다는 얘기다. 다른 학년까지 고려하면 나는 약 15명의 사이코패스들과 함께 고등학교를 다닌 셈이다. 다행히도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사이코패스라 여겨지는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물론 그레그와 게이시처럼 그들도 정상인의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별다른 사고 없이 끝까지 자신을 잘 감춰주었다면 그걸로 족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이코패스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 평범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학교 폭력과 잔인한 범행을 저지른 10대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혹여 내 이웃에 존재할지도 모를 사이코패스가 걱정되는 것은 한낱 기우일 뿐일까? 만약 내 주변에 사이코패스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사이코패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미드 『덱스터』에서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덱스터는 피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갖고 있지만 양아버지의 교육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대신 악질 범죄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일종의 정의로운 사이코패스로 거듭난다. 살인의 충동 자체는 제거할 수 없지만 그것이 향하는 방향을 바꿔놓은 것이다. 물론 덱스터를 사이코패스 치료의 예로 들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사이코패스의 행동이 치료에 의해 교정될 수 있다면 끔찍한 범죄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임상전문가들은 성인 사이코패스의 치료 가능성에 대해 아직까지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무엇보다도 사이코패스들에게 치료를 받으려는 동기 자체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만일 치료를 시행하더라도 근본적인 성향을 바꾸기 보다는 그들의 이기적인 성품을 자극하여 원활한 사회생활에 필요한 여러 사회 규칙들을 학습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그럴지라도 반사회적인 성향을 보이는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치료를 실시한다면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이 발달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감정인식 같은 공감의 요소들은 어느 정도 학습될 수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사이코패스가 생겨나는 원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뇌과학 분야에서는 사이코패스들에게 결여된 공감과 공포에 관여하는 두뇌 부위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어서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사이코패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지도 모른다.


덱스터는 악랄한 살인자를 살인으로 응징하는 일종의 변형된 영웅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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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이 심판하지 못하는 자들을 대신 처단한다는 점에서 ‘덱스터’는 일종의 영웅물이다. 사이코패스가 영웅으로 등장하다니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만큼 사이코패스라는 존재가 사람들에게 친숙해졌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사이코패스는 1%라지만 실제로 인터넷 기사에 달리는 악플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사이코패스의 비율이 이보다 더 높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타고 났다기보다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사이코패스랄까?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기심과 폭력성이 잠재되어 있어서 그것이 아무런 제어 없이 분출될 때 순간적이나마 타인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양심이 없는 공감제로, 사이코패스가 될 수도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심리학 교수 사이먼 배런코언은 이런 공감의 침식 상태를 인간이 악을 향하게 되는 원인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 처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여러 수단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박승배 교수는 사이코패스들이 “범법자들에 대한 정부의 기능 강화를 통해 미래에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미래에는 사이코패스가 정말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아가 일시적으로 사이코패스가 되는 사람들의 비율도 줄어들었으면 한다.


  1. 데즈카 오사무상 공식 페이지 http://www.asahi.com/shimbun/award/tezuka/97b.html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