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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 ─내가 그리는 시공간 여행 본문

완결된 연재/(完) <칼 세이건 살롱> 스케치

(1강)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 ─내가 그리는 시공간 여행

Editor! 2016. 10. 11. 16:35

드디어 시작된 ‘칼 세이건 살롱 2016’!


올해, 칼 세이건의 20주기를 맞아 사이언스북스와 과학과 사람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칼 세이건 살롱 2016’의 문이 열렸습니다. 우주를 꿈꾸던 뛰어난 천문학자이며,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세계적인 과학자 칼 세이건. 앞으로 13주 동안 진행될 ‘칼 세이건 살롱 2016’은 그의 과학과 사상, 꿈을 공유하는 특별한 자리가 될 예정입니다.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 있네> 진행자 원종우 대표가 메인 호스트로,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가 서브 호스트로 참여해 매회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이번 행사는 9월 30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다큐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을 한 편씩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지난 9월 30일, 충정로 ‘벙커1’에서 진행된 ‘칼 세이건 살롱 2016’ 첫 번째 시간은 책 『코스모스』을 번역하신 홍승수 교수님이 함께 자리하셔서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의 첫 번째 에피소드 ‘은하수에 서서(Standing Up in the Milky Way)’를 시청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보게 될 거대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멋진 프롤로그였습니다. 


1980년대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방송되어 약 7억 5천만 명이 시청한 전설적인 과학 다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퍼스널 보이지」를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퍼스널 보이지」를 그의 부인 앤 드루얀이 2014년에 리부트한 후속작입니다. 물론 단순한 후속작은 아닙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칼 세이건에서 닐 타이슨으로의 변화입니다. 이명현 박사는 “1980년 판은 칼 세이건이라고 하는 카리스마 넘치고 학문적, 대중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그분 자신은 여성이나 소수자를 무척 존중하는 관점을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남성성을 강조하는 카리스마의 정점에 있던 분이거든요. 반면 2014년 판은 닐 타이슨이라는 사람 자체가 흑인이기도 하고, 대본을 쓰신 분이 칼 세이건의 아내 앤 드루얀이잖아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시선이 굉장히 여성적이에요. 대비를 하자면, 칼 세이건의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적인 장악력에서 다양성, 소수, 여성주의, 이런 쪽으로 전환해 나가는, 우리 시대에 맞는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라며 이 변화에 집중했습니다.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닐 타이슨이 자신과 칼 세이건의 인연을 말하는 장면으로 끝이 나지요. 무척 강렬한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별히 이 사소한 만남과 친절의 신비에 대한 홍승수 교수님의 감상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 공부를 하고,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다시 했는데요. 한국에서는 주로 책을 가지고 공부를 했지요. 미국에서는 사람과 같이 공부를 했어요. 아주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해당 분야의 저명한 사람에게 그 분야를 배우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어요. 친구 혹은 동료로 만나는 거죠. 이것이 살아있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만남이죠. 과학이나 문학 혹은 예술을 할 때도 만남은 참으로 신비예요. 이 신비의 영역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어요.”



다큐 시청과 다큐에 대한 진행자와 참석자들의 간단한 이야기가 끝나고 드디어 홍승수 교수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이날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라는 제목으로 우주와 생명, 종교와 인간의 내일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어린 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까지, 참석한 모든 분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음은 물론입니다. 자, 이제 홍승수 교수님의 강연을 들어보겠습니다.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 ─내가 그리는 시공간 여행


홍승수 교수님은 강연에 앞서 헌사를 전했습니다. 교수님도 해 본 적 없던 일이라고 하셨지만 이 헌사, “모든 옛 제자들에게” 바치는 홍승수 교수님의 마음이 이날 강연에 함께 전해져야 하는 이유가, 막연하게나마 느껴졌습니다. 


“지난 5월, 이 자리에서 지금처럼 많이 모인 분들 앞에서 이야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천문학과에서 천문학 공부를 하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그만두고 다른 분야에 간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 사람들은 대개 학교에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팟캐스트가 방송된 다음에 그 사람들에게 전화가 오고, 찾아오고, 그러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아르헨티나에서도 오고요.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여러분에게 내보이는 생각들을 그동안 저와 함께 천문학 공부를 하다가 좁은 의미의 천문학을 떠난 저의 모든 옛 제자들에게 바치려고 합니다.”


우주에 대한 지식이 점점 쌓여, 우리는 이제 우주의 나이와 지구의 나이를 압니다. 지구의 주소도 몇 줄이나 적을 수 있게 되었죠. 홍승수 교수님은 “큰 지도를 펼쳐놓고 갈 길을 보는 상황인 셈”이라고 이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알았다고 한다면 이제 움직여야 할 거예요.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이냐, 이것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코스모스’란 곧 ‘스페이스타임’, 그러니까 ‘우주’를 의미합니다. 2014년 닐 타이슨과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의 부제 ‘a Spacetime Odyssey’를 읽는 것, 그것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우주(宇宙)의 ‘우’는 공간이에요. ‘주’가 시간이죠. 이것이 바로 스페이스타임(spacetime)이에요. 2014년 판 다큐의 첫 번째 에피소드 제목을 보면요. ‘Standing Up in the Milky Way’라고 썼는데요. 이것은 더 큰 세상, 더 먼 세상으로 도약을 한다는 겁니다. 그것으로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가늠하는 거죠. 1980년 판은 ‘the Shores of the Cosmic Ocean’인데 다른 이름을 붙였단 말이에요. 여러분, 땅끝마을에 가시면 끝을 생각하십니까, 시작을 생각하십니까? 땅 끝에 와서는 시작을 이야기해야죠. ‘the Shores of the Cosmic Ocean’, 이제 떠나는 겁니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선을 타고 떠나는 길에 선 인간. 홍승수 교수님은 재미있게도 군대 경험을 전해주었습니다. 바로 ‘가늠자’ 이야기입니다. 가늠자를 이용해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살피는 것, 그 치열한 탐구의 시작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죠. 


“1965년의 아주 뜨거운 여름, 수색 벌판에서 사격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 일생 처음 가늠자라는 것을, 가늠자의 기능을 배웠어요. 가늠자로 뭘 겨냥한다는 것은 너와 나의 엄청난 대결을 염두에 두는 겁니다. 뭔가 굉장히 중요한 과학적 탐구를 할 때도 겨냥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시작입니다. 이게 제대로 되어야 해요.”


그리고,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지구의 현재였습니다. 




1. 지구의 현주소

“우주란 그냥 연속적으로 물질이 분포하는 것이 아니라 덩어리져 있는 거예요. 계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 계층이 발견될수록 계층의 스케일에, 참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요. 엄청난 스케일의 공간, 물질 분포의 다양한 계층성이라는 특징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계층이 뭘까요? 지구, 태양계, 은하계 그리고 우주를 뜻합니다. 누군가 우주의 끝에서 화살을 쏩니다. 화살이 계속해서 나간다면 우주의 끝이 없다는 의미일 겁니다. 화살이 벽에 부딪친다면, 다시 그 벽 위에 올라서서 화살을 쏠 수 있을 거예요. 우주의 광활함을 설명한 「코스모스」의 이 장면은 우주의 계층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단순하게나마 상상하게 합니다. 홍승수 교수님은 이 계층적 공간에서 결코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공간과 시간을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인데요. 그리고 시간이 등장하면 바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으니, 바로 ‘기원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기원을 모르죠. 그러니까 ‘특이점’이라면서 얼버무리고 말아요.(웃음)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관측적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됐는데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틀림없이 처음에는 작았을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빅뱅 우주론’이 들어와요. 이것을 이용해서 우주의 나이가 알려지고요. 우주에 나이가 있다는 것, 이건 엄청난 얘깁니다.”(기원의 문제는 뒤에 종교를 다루며 ‘내일을 보는’ 대목에서 다시 고민합니다) 


무엇보다 이 ‘지구의 현주소’를 파악한 인류, 정말 대단한 존재가 아닐까요. 우주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인식의 주체 즉, 생명이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아무도 오르지 않은 무대”, 홍승수 교수님은 우주를 인식하는 생명이 없는 상황을 가정하며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이제 생명으로 넘어갑니다. 




2. 지구 생명의 발현과 진화

“생명의 양대 속성이라고 하면 하나는 자기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죠. 생명 이야기를 하면서 또다시 시간 축이 들어오게 돼요.”


다큐 「코스모스」에는 ‘코스믹 캘린더’가 등장합니다. 우주의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 우주 탄생의 순간부터 현재까지를 달력으로 시각화했습니다. 우주의 시간, 138억 년을 1년의 달력에 담은 것이지요. 이 달력의 1달은 약 10억 년, 1일은 약 4천만 년에 해당합니다. 홍승수 교수님은 ‘코스믹 캘린더’에서 세 가지 순간을 꼽았습니다. 

첫 번째는 ‘the Great Heavy Bombardment(대충돌기)’의 시기입니다.


“42억 년에서 39억 년 전 사이에 ‘the Great Heavy Bombardment’라는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막 태어난 지구가 외부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은 시기가 있었어요. 혜성, 운석, 이런 것들이 지구 표면을 마구잡이로 때리던 시기예요. 느려도 초속 11km/s로 움직이는 엄청난 돌덩이들이 지구 표면을 때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불덩어리겠죠. 그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두 번째가 생명의 발현입니다. 뜨겁고 어두운 시기가 지나서 이윽고 놀라운 생명 탄생의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약 38억 년 전 지구에는 드디어 생명이 출현합니다. 39억 년 전과 38억 년 사이의 1억 년이라는 간격은, 생명 탄생의 우연을 생각하면 의외로 짧은 기간이기도 하죠.


“이게 대단히 놀라운 겁니다. 의도된 시도이건 자연 발생적으로 이뤄진 시도이건 끊임없는 시도일 텐데요. 부딪쳐서 안정된 분자가 되려면, 뜨거워서는 안 되는 거예요. 용광로가 식은 지 1억 년 쯤 되었을 때 생명이 태어났다는 건 굉장히 빠른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쯤 오면 우주에는 생명체가 대단히 희귀할 것 같나요? 아니요. 생명이 우글거렸을 것 같아요.”


홍승수 교수님은 이 대목에서 반드시 물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생명이 탄생하려면 먼저 자기 복제가 가능한 분자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 분자는 원자들끼리 만나야 하죠. 부딪쳐야 하니까, 그러려면 비교적 쉽게, 빨리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걸쭉한 국물’, 즉 바다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필연적 우연이 쌓여서 최초의 자기 복제 능력을 갖춘 분자가 탄생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순간은 생명 폭발의 시기입니다. 약 5억 년 전, 지구에는 인식 능력을 갖춘 포유류가 등장합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지금 우리는 가늠자 안에서, 인간을 발견했습니다. 우주의 시간을 담은 달력 안에서 말입니다. 


“참 신기한 겁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를 찾고 있잖아요. 그 안에 인간이 있죠. 조준 대상 안에 조준 주체가 있는 아주 묘한 형국이 연출됩니다. 저는 이게 대단히 흥미로워요. 그냥 넘겨 버릴 사항은 아니라고 보여요. 인간, 삶에 대한 어떤 의미가 이 속에 숨어있는 건 아닐까 궁금해져요.”


홍승수 교수님이 말씀한 ‘삶에 대한 어떤 의미’란 과연 무엇일까요? 




3. 내일을 보다

“목을 길게 빼고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죠. 이게 인간의 불행입니다. 미래를 고민한다는 것 말이죠. 미래를 보려는 노력이, 인류에게 종교 문화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해요. 1만 년 전쯤인데요. 종교의 출현은 시간 축이 도입될 때 이미 예견된 필연이었던 것입니다. 시간이란 어제와 오늘만이 아니고, 내일을 동시에 고민하게 하니까 알고 싶은 겁니다. 종교가 들어오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거죠.”


앞서 우리는 ‘지구의 현주소’를 따지면서, ‘시간’개념의 등장에 따라 불가피하게 떠올려야 하는 ‘기원의 문제’를 잠시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와 더불어 미래를 보려는 노력 역시, 늘 인류가 생각해 온 것일 텐데요. 종교 문화는 바로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 홍승수 교수님의 설명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과학이라고 말하는 것의 역할 중 상당한 몫은, 1만 년 전부터 종교가 담당했죠. 


“기원의 난제를 종교가 해결했는데요. 기독교는 창조주의 창조 활동을 도입합니다. 시원점을 수용하기로 한단 말이에요. 우주의 생일이 가능해집니다. 저는 외람되게도, 기독교는 시간과 역사의 종교라고 부르고 싶어요. 한편 불교에서는 윤회, 반복이죠. 팽글팽글 돌아가는 거예요. 여기서는 시원점이 필요 없죠. 시원점의 문제를 이런 식으로 회피할 수 있어요. 기독교에서 시원점이 있는 것을 받아들이자고 했다면, 불교는 윤회와 반복의 엄청난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한한 시간을 이야기하고요. 그런 세상 속에서는 생일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겁니다. 저는 불교를 공간의 종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여기서 홍승수 교수님은 다큐 「코스모스」를 둘러싼 기독교계의 불편한 속내를 잠시 전하며 이야기를 쉬어 갔습니다. 2014년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가 방영된 후 개신교 쪽에서는 다큐가 창조론과 다른 시선을 보인 것에,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천주교 쪽 역시 가톨릭이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한 바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해요. 조르다노 브루노의 사건만 부각시켰지, 결코 간단하지 않은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의 문제가 간과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홍승수 교수님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오리지널 버전에서도 칼 세이건이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개념, 신의 개념에 대한 개념이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현대 수준에는 맞지 않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통이 리메이크 버전에도 들어온 것 같아요. 여기서 다루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들이 너무 유치한 수준에서 다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라며 의견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의견의 근거를 참고할 만한 책으로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을 함께 언급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4. 코스믹 오디세이의 추진 동력

“항해를 하려면 엔진이 있어야 할 거예요. 저는 ‘사실에서 진실 찾기’, 이것이 인류가 코스믹 오디세이를 떠날 수 있는 근본적인 추진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지적 활동의 진수야말로 사실에서 진실 찾기입니다.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하잖아요. ‘깃발’이라는 사실에서 시인이 찾아낸 진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습니다.”



천문학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천구상 겉보기 운동’이라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벌어지는 운동을 3차원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천구상(가상의 하늘면)에 투영된 2차원적인 것을 볼 뿐입니다. 이 사실에서부터 우주의 ‘진실’을 찾아갑니다. 코스믹 오디세이의 추진 동력이란,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홍승수 교수님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밤과 낮의 주기적 반복, 이걸 보면 금방 생각하잖아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돈다는 것에서 태양 중심 우주관으로 바뀌죠. 외부 은하의 후퇴 운동, 이것 역시 틀림없는 사실인데요. 이것이 무엇을 불러왔느냐 하면, 바로 팽창 우주관의 출현을 가져옵니다. 진실이죠. 빅뱅 우주론이 들어오게 된 거예요. 모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뭐가 보였다는 ‘사실’이 있으면 인간은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사실’이 나에게 들려주려는 ‘진실’이 무엇인가를 캐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겁니다. 자기가 캐낸 진실이 맞느냐 틀리느냐는 것은 둘째 문제고, 내가 캐냈다는 것이 엄청 중요한 문제예요.”




5. 우연과 필연의 끌고 당김

홍승수 교수님의 이야기는 이제 우연과 필연의 문제에 도착했습니다. 우주라는 엄청난 사실과 무수히 많은 우연이 어떠한 필연적 결과를 만들었는지,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교수님은 우연을 아주 넓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우연을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돌아보면, 그 우연은 이미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의 하나의 단초인 것이지요.”



홍승수 교수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유학을 떠나게 된 젊은 홍승수의 어느 날로부터 시작된 이 이야기는 우연이 어떻게 필연의 단초가 되는지 알게 해 주는 멋진 이야기입니다. 시간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암담한 시대, 피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짜장면을 사 먹을 정도로 가난하던 시절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 시절의 홍승수는 “완전히 정신 나간 사람”이어서 그런 시절에 다른 공부도 아닌 천문학을 공부하려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 하늘이 나한테 들려주는 비밀이 뭔지” 정말 미치도록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미국의 대학교 여러 곳에 입학 원서를 보냈고, 뉴욕의 한 대학교가 회신을 해 왔습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비행기 요금을 마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서울 시내에 위치한 미국행 비행기 표를 파는 사무실 앞에, 정신이 반쯤 나간 채 앉아 있습니다. 무엇을 하려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동창 한 명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를 봅니다.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친구는 대뜸 그를 데리고 그 사무실로 들어갑니다. 서류가 나오고, 사인을 하라고 하더니 비행기 표가 두 장 나왔습니다. 표는 외상이었고, 돈은 미국에 간 후에 나누어 갚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미국에 갔습니다. 대학을 찾아갔더니 유학생 담당 부서의 교수님이 저를 보자마자 ‘너 참 재수 좋은 놈이다’라는 겁니다. 보니까 어떤 특별한 돈이 생긴 것 같아요. 장학금을 주는 겁니다. 공부만 하면 돈을 준다는 거예요. 이런 별천지가 어디 있는지 말이에요. 정말 신나게 공부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시절이 무척 그립습니다. 그렇게 다시 몰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아시겠죠? 뭐가 우연이고, 필연인가 하는 것을요. (웃음) 그 날, 그 시간, 그 자리에 나는 왜 갔으며, 내 친구 그 녀석은 왜 나와 만났는가. 이게 우연이에요, 필연이에요?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지요. 나의 깊은 바람 때문이었을 겁니다.”


자, 다시 우주입니다. 우주 탄생의 필연성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왜 우주가 있어야만 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더불어 지구 생명 출현의 당위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말이지요. 과학은, 여기에 답할 수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결론. 오디세이의 힘

“어떤 사물의 기능은 그 사물의 형태에서 비롯한다. 형태가 기능을 지배한다는 겁니다. 만약 이것으로 끝나 버린다면 저주도 이런 저주가 없을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저는 비전이 형태를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138억 년의 우주 시간을 거치면서 인간 존재의 우주적 역할을 고민해야 할 텐데요. 봤더니 이게 만만한 존재가 아닌 겁니다. 의식을 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독특한 위상이 있는데 말이지요. 그런 위상을 가지고 인간의 사명은 무엇이냐를 고민해야 합니다.”



홍승수 교수님은 “인간에게 어떠한 것이든 엄청난 사명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명일까요? 서울대 장회익 교수님의 ‘온생명’ 개념이 홍승수 교수님에게 큰 힌트를 주었습니다.


“개체 생명, ‘낱생명’은 혼자 살 수 없잖아요. 낱생명을 둘러싼 모든 생명들이 같이 살아야죠. 이것이 ‘보생명’입니다. 이것을 합쳐서 ‘온생명’이 되는데 아주 좋은 예가 지구입니다. 생명이 생명답게 살려면 외부로부터 뭔가가 공급되어야 해요. 지구라는 온생명은 태양으로부터 빛 에너지를 받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구라는 온생명이 하나로써 훌륭히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지구인은 나, 개체 생명으로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온생명의 일원으로서 생각해야 할 거고요. 그러면 지구를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겁니다. 그것이 이 우주적 타임 스케일에서 마지막 몇 초에, 뇌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게 된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에 주어진 사명은 끊임없이 진화해 간다, 개인으로서의 사명뿐 아니라 인류로서, 온생명의 구성원으로서의 사명을 알아내 광범위한 개념의 생명 세계를 이끌어 가야 한다, 홍승수 교수님의 마지막 말입니다. 우주 진화의 역할 담당자로서 미래를 고민하고 그 길을 쫓아가는 것, 그것이 홍승수 교수님의 코스믹 오디세이였습니다. 


끝으로 홍승수 교수님이 인용한 칼 야스퍼스의 시를 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칩니다. 


나는 왔누나, 온 곳을 모르면서

나는 여기 있누나,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럼에도 나는 가고 있구나,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나는 죽으리라,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칼 세이건 살롱 2016> 3강 ‘지식이 두려움을 정복할 때(When Knowledge Conquered Fear)’는 10월 14일 금요일 7시에 ‘벙커1’에서 진행됩니다.


 : 신연선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 칼 세이건 저작 ※


『코스모스』 [도서정보]


『지구의 속삭임』 [도서정보]


『창백한 푸른 점』 [도서정보]


『에필로그』 [도서정보]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도서정보]


『콘택트 1』 [도서정보]


『콘택트 2』 [도서정보]


『에덴의 용』 [도서정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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