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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과학적 상상력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본문

완결된 연재/(完) <칼 세이건 살롱> 스케치

(4강)과학적 상상력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Editor! 2016. 11. 2. 09:03

올해, 칼 세이건 서거 20주기를 맞아 사이언스북스와 과학과 사람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칼 세이건 살롱 2016’의 문이 열렸습니다. 우주를 꿈꾸던 뛰어난 천문학자이며,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세계적인 과학자 칼 세이건. 앞으로 13주 동안 진행될 ‘칼 세이건 살롱 2016’은 그의 과학과 사상, 꿈을 공유하는 특별한 자리가 될 예정입니다.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 있네> 진행자 원종우 대표가 메인 호스트로,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가 서브 호스트로 참여해 매회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이번 행사는 9월 30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다큐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를 한 편씩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차가운 방정식을 가슴에 품는 존재들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주인공 쿠퍼의 딸 머피, 그는 자신의 방에서 다른 차원에 있는 아빠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이때 머피는 그 메시지를 ‘유령(ghosts)’이라고 부르지요. 머피는 그 유령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유령이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지 궁금해 하고, 탐구합니다. 아빠의 가르침대로 말입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 네 번째 시간은 바로 이 ‘유령(ghosts)’을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머피의 과학자적 태도와 같이 과학의 시선에서, 지적 탐구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유령의 정체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코스모스」 네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밤하늘의 유령(A Sky Full of Ghosts)’입니다. 여기에는 망원경이 곧 타임머신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이해한 사람,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들과 해변을 산책하던 그의 말은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어떤 영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 위를 보렴, 유령이 가득하지 않니? …… 멀리 있는 별들의 빛이 지구까지 오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지. 그래서 그 빛이 지구에 도달할 쯤에는 별은 이미 죽고 없단다. 결국 우리는 별의 유령을 보는 거지.”


언젠가 하염없이 별을 바라보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사라진 별들의 유령을 보는 경험은 참으로 특별했습니다. 한없이 작아지고 더없이 자유로워짐과 동시에 어느 정도 서글펐던. 그때 상상한 ‘유령(ghosts)’이라는 단어는 대단히 환상적이고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21일, 충정로 ‘벙커1’에서 진행된 ‘칼 세이건 살롱 2016’ 네 번째 시간은 「코스모스」 네 번째 에피소드 ‘밤하늘의 유령(A Sky Full of Ghosts)’을 함께 본 후 SF 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창규 작가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차가운 방정식을 가슴에 품는 존재들’이라는 멋진 제목의 강연에서 김창규 작가님은 “나 자신조차도 유령일 수 있다.”라는 도끼 같은 말을 던지고 합리적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 세계의 참모습에서 시작하는 무한한 이야기들에 대해 흥미로운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세계의 참모습

가장 먼저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은하를 달리는 기다란 기차를 그린 환상적인 이미지였습니다. 


“「은하철도 999」라는 일본 만화를 접하신 분들 계실 거예요. 이 만화는 열차로 된 우주선을 타고 다양한 생활을 하는 행성을 거쳐 가며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원작이 미야자와 겐지가 쓴 소설 『은하철도의 밤』인데요. 이 소설은 아이들이 밤하늘을 지나가는 열차를 보면서 저 열차가 가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상상하는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그림이 몽환적이죠. 이것이 원작의 그림이라고 해요.”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은하철도 999」의 이미지는 좀 더 황량하고, 어둑하고, 음산한 느낌입니다. 김창규 작가님 역시 그런 이미지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는데요. 이유가 뭘까요? 작가님은 어린 시절 꾸었던 악몽에 관한 강렬한 기억을 하나 전했습니다. 



“정말 어렸을 때 꾼 악몽이고, 과학을 갓 배웠을 때 꿨던 악몽인데요. 제가 ‘은하철도 999’ 열차 위에 누워 있었어요. 이 열차는 마치 유령선처럼 다 낡았고, 사람이 하나도 없고, 빛도 없었어요. 정말 빽빽하게 박혀 있는 별들과 허공만 주변에 있었고요. 아무것도 안 움직이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상태에서 계속 이 열차와 함께 떠내려가는 꿈을 꾼 거예요. 지금도 그보다 무서운 꿈을 꿔 본 적이 없어요. 어둠 속에서 어떤 존재가 튀어 나올 거라는 상상을 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우주에 혼자뿐이구나, 발 딛을 곳이 이 열차 외에는 없구나, 하는 감각 때문이었어요. 사방이 허공이라는 느낌, 너무 무서웠어요. 이 무서움과 외로움은 제게 이것이 참모습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었어요. 참모습을 외면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요.”


참모습, 이것이 키워드입니다. 김창규 작가님은 영상을 하나 소개했습니다. 태양계 운동을 가장 사실에 가까운 형태로 시각화한 영상이었습니다. 영상에 등장한 태양계 운동 모습은 흔히 알고 있는 태양을 중심으로 여러 행성이 타원형을 그리며 공전하는 모습이 아닌 나선형을 그리며 어디론가 이동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태양계 행성은 실제로 바깥에서 보면 나선형 운동을 하고 있고, 뿐만 아니라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오늘 보신 「코스모스」에 은하도 움직이고, 우주 전체도 회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 안에서 태양계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건 자세히 안 나와서 이 영상을 보여 드렸어요. 최소한 밖에서 볼 때 태양계는 저런 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나마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태양계의 참모습에 가까울 거예요.”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참모습을 가장 간단하게 표현한 것, 바로 방정식입니다.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는 세상을 바꾼 17개의 방정식을 꼽았습니다. 


“첫 번째 ‘피타고라스의 정리’부터 시작돼요. 열일곱 번째는 금융 옵션 상품에 대한 방정식이 나오죠. 저것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이론이라고 합니다. 이 열일곱 번째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과학이나 수학이에요. ‘푸리에 변환’, ‘열역학 제2법칙’, ‘상대성 이론’, ‘슈뢰딩거 방정식’, ‘정보 이론’, ‘카오스 이론’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언 스튜어트는 이것들을 세상을 바꾼 방정식이라고 했지만 제 생각에는 맨 마지막의 금융 옵션 상품에 관한 방정식만 그에 해당할 것 같고요.(웃음) 사실 나머지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의 여러 물리 법칙들이잖아요. 즉 이것은 식으로 가장 간단히 표현한 우리 우주의 참모습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더 큰 이미지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눈, 방정식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이언 스튜어트의 책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을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참모습에서 비롯한 상상력

1980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2014년 닐 타이슨의 「코스모스」이 어떤 면에서 다른가에 대해서는 그동안 몇 차례 점검한 바 있습니다. 이명현 박사님은 ‘칼 세이건 살롱 2016’ 첫 번째 시간에 “칼 세이건의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적인 장악력에서 다양성, 소수, 여성주의, 이런 쪽으로 전환해 나가는, 우리 시대에 맞는 그런 것이 아닌가”라며 성격적 차이를 규정하기도 했지요. 김창규 작가님이 주목한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주선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어느 쪽이 더 멋있는 우주선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요. 2014년 「코스모스」 방영 전에 예고편이 방송되었을 때 한 칼럼니스트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칼 세이건이 우주선에 있던 장면과 닐 타이슨이 우주선에 있는 장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인물을 보여 주지 않고 우주를 향해 카메라가 있지만 닐 타이슨의 「코스모스」는 우주가 아니라 인물을 보여 주고 있다.’라고요. 저는 특히 「코스모스」가 우주를 주로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SF적 요소를 넣었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단순히 공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세상의 이야기 외에 상상과 비슷한 무언가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코스모스」에 등장하는 ‘상상의 우주선’이라는 서사 형식은 과학적 사실이나 정보를 뛰어넘어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힘입니다. 그것을 ‘SF적 요소’로 일컫고 바로 그 대목에 집중한 김창규 작가님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우주의 참모습을 이해하는 방정식이라는 도구가 필요한 동시에 상상의 공간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모습과 상상력의 조우입니다. 




우주의 유령들(ghosts)

“「코스모스」에서 말하는 ‘유령(ghosts)’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별빛들이 과거에서 온 모습이다, 혹은 지금은 이미 존재하지 않을 별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사용한 단어예요. 한편 광속에 한계가 있다면 이 단어가 별들에게만 적용될 리가 없겠죠. 스마트폰 지도 어플에서 쓰고 있는 GPS가 그렇습니다. GPS는 인공위성이 반드시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 인공위성까지 전파를 쏘아 보내고, 다시 수신하는 이것 역시 광속의 제약을 받아요. 게다가 GPS에 꼭 필요한 인공위성의 경우 초속 8킬로미터의 속도로 이동을 한다고 하거든요. 우주의 모든 물체에 적용이 되는 상대성 이론이 똑같이 적용되는 겁니다. 실제로 여러분들이 크게 신경 안 쓰고 사용하는 스마트폰 안의 GPS 기능만 하더라도 일반 상대성 이론, 특수 상대성 이론을 전부 고려해서 보정을 넣어야만 제대로 작동한다고 해요. 상대성 이론 보정을 하지 않으면 아예 GPS를 쓸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것은 찰나입니다. 우리 인식 안에서 차이를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찰나입니다. 어쩌면 느낄 필요조차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엄밀히 따졌을 때 차이는 분명 존재하고, 그러므로 모두가 유령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김창규 작가님의 이야기였습니다. 내 곁에 앉은 친구의 모습도,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도 유령일 수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빛이 별들의 유령이라면 말입니다. 



“최근 과학 기사를 보면 ‘지구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성 혹은 지구형 행성을 품고 있는 항성 후보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해요. 만약 지성을 가지고 문명을 발달시켰던 외계인들이 어떤 행성에 살고 있었고, 그 행성이 수백 만 광년 떨어져 있었다고 해보죠. 그 별빛이 지구에 왔을 때 그 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어떨까요. 그곳에 지성이 있는 외계인이 있었다면 말입니다. 그곳의 외계인 역시 유령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방금 내 옆에 앉은 사람도 유령이라고 불렀는데 말이죠. 비록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동시대에는 존재하지 않고 아마도 동시대에 직접적으로 만나서 악수를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옆자리 사람이 존재했던 것과 같은 의미로 존재할 거란 이야기입니다.”


유령의 존재를 이정도로 확장시키고 나니 오히려 외로움이 사라집니다. 눈앞의 선명한 존재도 유령, 존재조차 알 수 없는 것도 유령이라면 더 이상 황량한 공간에 홀로 남겨진 느낌은 갖지 않아도 될 겁니다. 김창규 작가님 역시 어렸을 때 꾸었던 그 악몽에서 받은 공포를 다시 생각합니다. “물리 법칙에 어긋남 없이 정확히 적용시켰음에도 사실은 외로운 공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차가운 방정식

다시 세계의 참모습과 상상력이 만나는 장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강연 제목에 거론되기도 한 ‘차가운 방정식’에 관한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1954년 톰 고드윈이 쓴 단편 「차가운 방정식」은 은하계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어느 날 한 개척 행성에서 긴급 구호 요청이 옵니다. 전염병이 돌아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 혈청을 보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 거대 우주선 모선 대신 작은 일회용 ‘긴급 연락선’을 보내는 것이 이 세계의 방식입니다. 이 긴급 연락선은 조종사, 화물 등의 무게를 작은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계산하고 연료를 담아 출발합니다. 중량이 초과되면 연료가 부족해져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어요. 따라서 이곳에는 ‘밀항자는 발견 즉시 제거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법이 존재하죠. 긴급 연락선이 출발하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놀랍게도 화물칸에서 밀항자가 발견됩니다. 밀항자는 어린 소녀였습니다.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순간 아주 중요하고 가슴을 울리는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소녀가 여기 탄 이유는 전염병이 돈 개척 행성에 오빠가 있기 때문이었어요. 오빠를 만나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오빠의 목소리를 한 번만 듣게 해달라고 합니다. 통신이 가능한 곳까지만 데려가 달라고 해요. 그러나 통신도 무한정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소설은 과연 이 소녀가 통신을 할 수 있느냐로 갑니다.”


소녀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바람대로,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면 정말 좋겠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녀는 우주선 바깥으로 버려지고 냉혹한 방정식의 균형은 다시 유지됩니다. ‘차가운 방정식’이란 바로 이런 과학의 무표정한 얼굴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코스모스」라는 다큐멘터리에서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데 우주선이라는 SF적 요소를 등장시켰단 말이에요. 과학 이론을 공식으로 외우는 게 아니라 저처럼 괴상한 악몽을 꾸어서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물리 법칙이 차갑고 냉정한 것일 수도 있구나 하고 정말로 인식을 하시려면 상상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강연 제목을 ‘차가운 방정식을 가슴에 품는 존재들’이라고 한 것이에요.” 


영화  「인터스텔라」는 미지의 영역,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의 모습을 장엄하게 보여 줍니다. “실제로 사건의 지평선 안까지 가 본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 모습의 정확도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터스텔라」에서 여러분이 받은 감동이 훼손되겠느냐”라고 김창규 작가님은 묻습니다.



“그렇지 않을 거예요. 비단 블랙홀을 지구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다는 킵 손이라는 과학자가 영화 제작에 참여해 고증하지 않았더라도 우주의 참모습을 전달하려면 결국은 과학적 지식 못지않게 상상이 필요할 거예요. 단 그 상상이 마음대로, 개연성 없이 상상하는 방식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설 『타우제로』(1968)가 나왔던 당시에는 빅뱅 이후 우주가 계속 팽창을 하다 어느 순간 멈출 것이냐 수축할 것이냐 계속해서 팽창할 것이냐 하는 세 가지 학설이 있었습니다. 『타우제로』는 팽창을 하다 수축할 것이라는 우주론을 선택해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우주선은 자체의 추진력에 더해서 일명 ‘스윙바이(swing-by) 항법’이라고 하는, 중력을 이용한 추진력을 함께 사용하는데요. 이 추진력을 사용하다가 감속을 하지 못하게 되자 우주선은 계속해서 가속을 합니다. 소설의 상상력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가 다시 수축하는 시점까지 도달하게 되고, 더 나아가 우주가 한 점으로 보이는 순간, 우주가 다시 팽창하는 순간까지 그립니다. 어떻습니까? 소설 속 지식이 설령 과학적 사실과는 다르다 해도 소설의 상상력이 주는 새로운 시선은 확실히 우리를 풍성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는 동력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당장 얼마 전에 은하의 수가 기존에 알려졌던 것보다 100배 많다는 기사가 있었어요. 지식을 외우는 것만으로는 아마도 세계의 참모습을 계속 알아 가지 못할 겁니다. 어떤 법칙이라는 것이 예외를 두고 적용되는 게 아니라 전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개념, 그런 것들을 고려해야 과학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차가운 방정식을 가슴에 품는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불가지(不可知)와 미지(未知)

“원자에 대고 배율이 엄청나게 높은 현미경을 들이대면 그 안에 아주 예쁘게 생긴 여성이 있더라고 하는 소설도 있습니다. 그 당시 SF에서는 그게 통했던 모양이에요. SF가 반드시 과학적으로 알려진 정설에 합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지금은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었죠. 어쨌거나 이런 것들은 모두 그냥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 세계를 모델링하는 것이거든요. 실제 쓰는 과정을 보면 그렇습니다. 세계에 어떤 규칙이 적용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요. 일종의 모델을 만들어 놓고 소설을 씁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물리 법칙이 세상에 보편적으로 적용이 된다는 것과 사실은 같은 과정이에요. 비록 현실과는 다르지만 말이에요. SF를 쓰는 것뿐 아니라 「코스모스」와 같은 다큐를 볼 때도 상상력이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상상력’이라는 단어에는 얼마간의 오해가 덧씌워져 있습니다. 김창규 작가님은 ‘불가지(不可知)와 미지(未知)’라는 단어로 상상력을 둘러싼 오해를 벗겨 냅니다. 


“역시나 SF에서 엄청나게 감동을 받은 구절이 있어요. 지구인들이 어떤 행성에 도착해 살려고 보니까 그 행성에는 육체를 가진 게 아니라 일종의 에너지 형태로 존재하는 외계인이 살고 있었어요. 초기에 행성에 정착한 1세대는 그들을 원주 생명체라고 불러요. 그런데 과학을 잊은 후손들이 그들을 악마라고 부릅니다. 그 현상을 놓고 등장인물 한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해요. ‘불가지와 미지는 달라야 하지 않느냐’라고요. ‘불가지’는 설명하려는 시도를 아예 포기하는 것이다, ‘미지’는 아직은 완전히 설명할 수 없지만 추측도, 유추도, 상상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언젠가는 합리적인 설명을 발견할 것이다, 라는 거죠. 태도의 차이라고 이 인물은 이야기해요. 또한 ‘불가지’에 빠지는 것은 굴복하는 것이고 설명되지 않는 것을 ‘미지’의 영역에 두는 건 맞서 싸우려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미지의 영역에 두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상상 역시 불가지 영역에서의 상상이 아니라 미지의 영역에 있는 상상을 해야만 열일곱 개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의 참모습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계의 참모습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을 상상하는 존재(차가운 방정식을 가슴에 품는 존재)들, 즉 과학 하는 인류에 의해 점점 더 많은 속내를 드러낼 것입니다. 외롭게 우주를 여행하는 보이저호가 보여 준 어떤 가능성들처럼 말입니다. 언젠가는 영화처럼 사건의 지평선 너머, 블랙홀의 진짜 정체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끝으로 김창규 작가님은 칼 세이건과 닐 타이슨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It is far better to grasp the Universe as it really is than to persist in delusion, however satisfying and reassuring. - Carl Sagan

마음에 딱 들고 안심되는 우주의 모습이라는 것이 있다한들 기만(delusion)이라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더 낫다. - 칼 세이건(김창규 번역)


Not only are we in the universe, the universe is in us. I don't know of any deeper spiritual feeling than what that brings upon me. - Neil Tyson

우리는 우주 안에 있고, 우주도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가장 큰 정신적 감동을 느낀다. - 닐 타이슨(김창규 번역)




질의응답

SF 소설을 쓰는 김창규 작가님의 강의를 들은 만큼 UFO와 블랙홀, SF 소설과 기술의 관계 등 특색 있는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는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외계인과 UFO의 존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명현(이하 ‘이’): UFO라고 하는 것은 ‘미확인 비행 물체’잖아요. 뭔가 떠다니고 있는데 정체를 알 수 없으면 UFO라고 부를 수 있는 거거든요. 숨겨진 군사 위성이든 정찰기든 새 떼든 상관없이 말이에요. 정체가 밝혀지면 ‘확인 비행 물체’가 되는 거겠죠. 문제는 그것을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이라고 하는 견해인데요. 칼 세이건이나 과학자들이 이런 말을 했어요. 어떤 현상이 있고, 그 현상을 진실로 받아들이려면 그에 걸맞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요. UFO가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이라면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타고 올 수 있었으며, 그게 어떻게 지구상을 비행할 수 있는지 이 모든 것들이 명백하게 밝혀져야 해요. 그러나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요즘에는 구글이나 다음 지도에도 사진이 찍히잖아요. 도망갈 구석도 없거든요. UFO가 만약 목격이 된다면 다른 지역이나 다른 상공에도 목격이 되어야 할 거예요. 온갖 곳에서 사진을 찍기 때문에요. UFO를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과 연결시키는 데는 증거들이 있어야 하는데 없기 때문에 그렇게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즈웰 사건’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계신가요? 

김창규(이하 ‘김’): ‘로즈웰 사건’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실제로 외계인 UFO가 추락했고, 그 안에 외계인의 시체가 들어 있었고, 미군이 그 우주선과 외계인의 시체를 전부 대중에게 속인 채 51구역 격납고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 후 미공군이 발표를 했어요. 로즈웰에 추락한 것은 외계인 우주선이 아니고 기상 관측용 기구가 추락한 것이라고요. 당연한 얘기지만 정부 얘기를 안 믿고 아직까지도 대표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SF작가의 관점에서는 촌스러워 더 이상 SF에 등장시킬 수 없는 그런 얘기라고 봅니다. 비단 ‘로즈웰 사건’뿐 아니고요. 외계인이 탄 우주선이 사람들을 납치해 우주선에 태우고 신체 해부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그 이야기가 한 번 나오고 나니까 갑자기 미국 전역에서 “나도 납치를 당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어요. 이런 현상들은 사람의 이성이란 게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를 보여 주는 훌륭한 예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요. 

이: 사실 장소성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곡성」 같은 영화 있었잖아요. 그런데 로스웰도 가보시면 뭔가가 나타나야 할 것 같은(웃음) 느낌이 있어요. 그런 장소성도 있는 것 같아요. 


블랙홀 내부 온도는 얼마나 될까요? 

이: ‘절대 온도(absolute temperature)’라는 게 있잖아요. 절대 온도 0도가 섭씨 영하 273도거든요. 분자는 흔들리는 운동을 하는데요. 절대 온도 0도가 되면 그 움직임이 멈추는 거예요. 분자가 움직이면서 어떤 현상들이 발생하잖아요. 그런데 분자 운동이 멈춰 버리는 온도가 되면 더 이상 에너지의 흐름도 없다는 얘기가 되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예요. 천체의 온도를 따질 때는 에너지를 비교하는데 블랙홀 속으로 들어간다면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온도라는 개념도 성립하지 않을 것 같아요. 

「코스모스」에서 닐 타이슨이 주차장에 서서 그곳을 블랙홀 속이라고도 얘기했지만 굉장히 상징적인 장면이에요.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면 좀 바뀌는 것들이 있어요.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하는데요. 거길 넘어가면 돌이킬 수가 없어요. 이런 비유를 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요. 우리는 지금 공간의 자유는 있지만 시간의 자유는 없죠. 시간을 역행할 수는 없지만 공간은 어디든 갈 수 있어요.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면 공간의 자유가 없어진다고 볼 수도 있거든요. 계속 가는 거예요. ‘시간과 공간의 역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요. 그 속에서는 밖에서 얘기하는 그런 식의 물리학 법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그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잘 모르는 거죠. 


블랙홀에 아주 가까이 가면, 즉 사건의 지평선에 근접한 상태가 되면 시간이 멈춘다고 하는데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이: 굉장히 빨리 움직이거나 또는 중력이 강한 곳 근처를 가게 되면 시간 간격이 늘어나요. 상대성 이론을 어떤 의미에서는 빛의 속도의 절대성 이론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빛의 속도를 지켜야 하니까요. 대신 시간과 공간은 가변한다는 거예요. 공간이 가변한다는 것은 조건에 따라 공간이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는 거고요. 시간이 가변한다는 것은 시간 간격이 변한다는 거거든요. ‘똑-딱’을 1초라고 하는데 이게 어디에 가면 ‘또-옥-딱’이 되고, 어디에 가면 ‘똑딱’이 되는 거예요. 굉장히 빨리 움직이는 곳이나 중력이 굉장히 강한 곳 근처를 가면 시간 간격이 늘어나요. 우리의 1초는 ‘똑딱똑딱’ 가는데 블랙홀 근처에 가면 ‘또-옥-딱’ 간다는 거예요. 사건의 지평선 근처까지 가면 ‘또-옥’ 하고 시작했는데 안 끝나는 거예요. 시간 간격이 무한대가 된다고 말씀을 드리는데요. 시간 간격이 무한대가 된다는 말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소멸하는 거잖아요. 그걸 우리가 보면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거죠. 

이건 조심하셔야 해요.  「인터스텔라」에도 나왔지만요. 우리가 블랙홀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근처로 어떤 사람이 가요. 그러면 그 사람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정작 그 사람에게는 시간이 원래대로 가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상대성 이론이라고 하는데요. 그 사람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거죠.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그런 거예요.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 킬로미터라고 합니다. 내가 초속 29만 킬로미터로 달리면 빛이 나보다 1만 킬로미터 빠른가요? 

원종우(이하 ‘원’)그것이 아니라는 게 상대성 이론의 핵심입니다. 제가 29만 킬로미터로 달려도 빛은 30만 킬로미터 속도로 멀어집니다. 제 속도와 아무 상관이 없어요. 빛은 항상 같은 속도예요. 이것이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죠. 왜냐하면 고속도로에서 차로 달릴 때 똑같이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면 상대적으로 같은 상태처럼 보이잖아요. 상대 속도가 같기 때문인데요. 빛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빨리 달려도 빛의 속도에 도달할 수 없고 빛은 항상 저보다 초속 30만 킬로미터 앞섭니다. 이렇게 보시면 돼요. 


SF 작가의 아이디어가 기술적으로 성공하면 특허권 소유는 누구에게 가게 되나요? 

김: SF 작가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현실에 쓰이고 있는 것들이 꽤 있죠. 아서 클라크의 정지 위성 개념이 그렇고요. 요즘은 많이 익숙하신 가상 현실이라든가 가상 공간 혹은 아바타(avatar) 같은 개념은 다 SF에서 비롯했어요. 하지만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 이것이 예언은 아닙니다. SF 소설이 영감을 준 거죠. 실제로 그런 기술자들이 그 SF 작품의 팬이라고도 얘기했었는데요. 그렇지만 특허권, 상표권으로 소송이 걸렸다거나 문제가 됐다거나 하는 건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원: 작가 분들이 너무 착하신 것 아닌가요?(웃음)

김: 글쎄요. 작품을 쓴다는 게 기술 예측의 성격이 있긴 하지만 작품은 작품 자체로 세상에 어필하고 싶어 하는 게 작가들의 가장 큰 욕망이니까요. 그 이후의 어떤 금전적인 것들은 작품이 대박 나서 인세를 많이 받는 정도가 아닐까요. 



*<칼 세이건 살롱 2016> 6강 ‘깊이 더 깊이(Deeper, Deeper, Deeper Still)’는 11월 4일 금요일 7시에 ‘벙커1’에서 진행됩니다.



글 : 신연선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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