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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이언스-오픈-북

『브로카의 뇌』, SF와 과학 사이에서

Editor! 2020. 10. 21. 16:30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출간 40주년을 기념해서 칼 세이건의 고전적 에세이 한 권이 출간되었습니다. 『브로카의 뇌: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사이언스 클래식 36)가 그 책입니다. 칼 세이건은 이 책에서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 있는 초능력, UFO 유괴담, 벨리콥스키, 사이비 종교 등에 대한 치밀한 비평을 시도합니다. 과학적 정신이 과학스러움의 탈을 뒤집어쓴 비과학과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그 모범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세이건은 SF에 대해서는 뜨거운 사랑을 고백합니다. 우주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준 수많은 SF 작가들에 대한 찬사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 SF계의 대표 비평가 박상준 서울 SF 아카이브 대표께서 『브로카의 뇌』를 읽고 멋진 해설 원고를 보내오셨습니다. 책에도 실려 있지만, 책 구매하시기 전 미리 읽어 보시라고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 특별 공개합니다.


칼 세이건의 여러 저작이 이미 많이 소개되었지만 개인적으로 『브로카의 뇌』는 각별히 반갑다. 이 책에서 세이건은 독립된 한 장을 통째로 SF에 할애하며 찬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내용은 문학이나 과학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인류 지성사에서 SF가 갖는 현재적 의미를 훌륭하게 논파하고 있어 더더욱 감탄스럽다. SF에 대한 에세이로 이만한 글을 접해 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사이언스 클래식 36권으로 출간된 칼 세이건의 『브로카의 뇌』.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SF의 핵심을 짚다

 

세이건은 말한다.

 

“우리는 SF 소설의 발상들과 함께 자란 첫 세대이다.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이 SF 소설 때문에 맨 처음 이 길로 들어섰다. SF 소설 중 일부의 수준이 최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상관이 없다. 10세 소년은 과학 문헌을 읽지 않는다.”

 

과학의 역사에 비해 SF의 역사는 매우 짧아서 그 본격적인 시작은 사실상 20세기와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때를 같이한 SF는 숱하게 많은 예비 과학자들을 길러냈다. 아마 SF라는 장르가 없었다면 현대 과학자들의 연대기는 꽤나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콘택트』를 쓴 세이건이나 정상 상태 우주론의 대가였던 프레드 호일처럼 뛰어난 과학자이자 동시에 SF 작가이기도 한 인물 또한 여럿이다.

 

SF가 과학적 상상력 못지않게 미래를 위한 일종의 생존 수단이기도 하다는 사실 또한 세이건은 예리하게 짚었다. 그의 생각은 단호하다.

 

“나는 오늘날 지구상에 있는 어떤 사회도 지금부터 100~200년 뒤 지구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다. 우리는 대안적인 미래를 실험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필사적으로 탐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아남는다면 SF 소설이 인간의 문명이 유지되고 진화하는 데 필수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SF에 대한 세이건의 이러한 견해는 20세기의 위대한 미래학자였던 앨빈 토플러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미래 시나리오의 스펙트럼을 제시하는 SF의 기능이 갈수록 더 주목을 받는 것은 바로 이들의 SF에 대한 인식이 널리 공유되어 온 덕분일 것이다.

 

 

칼 세이건은 소년 시절 SF를 통해 우주와 과학을 만났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SF를 통해 인류 문명의 미래를 전망했다.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유사 과학과 SF를 구별하는 안목

 

세이건의 다른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브로카의 뇌』에서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은 과학적, 합리적 사고 방식이다. 어떤 편견이나 기대, 소망이 투영되지 않은 순수하고 객관적인 태도야말로 일체의 확증 편향을 배제하는 과학적 사고 방식의 핵심인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진실이라 강변하지 않는 허구적 이야기 구성인 SF의 상상력에는 관대해야 한다는 입장 또한 드러난다. 이 책은 사후 세계나 초능력, 고대 외계 문명 등등 흔히 접하기 마련인 유사 과학 내지는 유사 역사학 이론들을 다루면서 가차 없이 모순점들을 파헤치지만 SF에 대해서는 팩트보다 발상, 즉 자유로운 상상력 그 자체가 미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정교하게 구성된 SF 작품들의 과감한 주장에는 그가 어떤 견해를 보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사후 세계 체험의 경우 세이건은 출산 당시의 기억으로 해석하려는 입장인데, 1983년 영화 「브레인스톰(Brainstorm)」의 묘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 작품의 설정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가 사망하면서 느끼는 모든 감각 정보를 그대로 디지털 정보로 기록한다. 그리고는 그 기록 정보를 다른 사람의 두뇌에 다시 재생해 주면 어떻게 될까? 이른바 ‘사후 세계’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크리스토퍼 워컨이 주연한 영화 「브레인스톰」의 한 장면. 유튜브 트레일러 화면 갈무리.

 

「브레인스톰」의 묘사는 단순히 사망하는 사람의 뇌파나 심장 박동 등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 모든 감각을 매우 높은 해상도로 꼼꼼하게 기록하고 저장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 테이프에 저장된 이 기록은 VR 기기로 다른 사람의 두뇌에 그대로 재생이 가능하다. 머리띠같이 생긴 이 VR 기기는 요즘 같이 눈을 완전히 가린 채 디스플레이나 스피커를 작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두뇌 감각 신경 세포로 직접 무선 신호를 쏘는 방식이다. 즉,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아직 구현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 영화가 사후 세계 연구 방법론에 어떤 새로운 제안을 제시한 것일 수는 있지만, 사실 세이건을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은 사후 세계라는 말 자체를 난센스로 받아들인다. 인간이 죽으면 그걸로 끝이며, 영혼이니 유령이니 하는 것들도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육신의 수명이 다하면 그걸로 생명 현상 역시 중지된다는 유물론적 입장인 셈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들, 즉 단세포 생물부터 모든 식물, 동물, 특히 그 수가 많은 풀이나 나무, 곤충 등등에는 모두 다 영혼이 깃들어 있을까? 전통 신앙이나 종교 등에서는 그렇다고 믿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죽으면 혼이 남아서 사후 세계로 간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아직까지 밝혀진 것이 없다.

 

초능력은 어떨까. 『브로카의 뇌』에도 잠시 언급되는 유리 겔러라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초능력자’였다.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를 방문해서는 텔레비전에 나와서 쇠로 된 포크를 살살 문지르기만 하고는 완전히 구부러뜨리고, 고장 나서 멈춘 지 오래된 손목 시계들을 ‘정신력’만으로 다시 가게 만드는 등 당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심지어 당시 한국 정부에서 비밀리에 휴전선 지역의 땅굴을 투시해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런데 왜 지금 그는 잊힌 존재가 되었을까?

 

세이건은 초능력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속임수며 재빠른 손놀림 등을 진작부터 간파했다. 과학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현상들을 시연해 보이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고도 간단한 결론이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불가능을 가능한 것처럼 속일 따름인 것이다. 오늘날 이들은 사실 숙련된 마술사라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보지 않고도 알아맞히는 투시나 예지, 유리를 통과하거나 물체를 바꿔치기하는 염동력 등등은 예전에 초능력 용어로 포장되었지만 사실은 다 트릭일 뿐이다. 이런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의 한 영역으로 어엿이 초심리학이 존재하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 갈수록 관심도가 주는 것 같다. 『브로카의 뇌』에도 나오듯이 세이건은 사실 이런 유의 주장에 다른 어떤 과학자보다도 열린 마음으로 대했지만, 과학의 기본 원리를 거스르는 초자연 현상이 존재한다는 확증은 찾을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유리 겔러의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 이스라엘 출신 초능력자로 유명했지만, 결국 트릭을 쓰는 것으로 밝혀졌고 현재 마술사로 활동 중이다.

 

신비주의적 해석을 경계하자

 

개인적으로는 세이건 덕분에 냉정하게 보게 된 현상으로 ‘우연’이 있다. 살다 보면 기막힌 우연을 경험하곤 한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람을 문득 떠올렸는데 바로 그날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온다거나 등등 누구나 신기한 우연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였던 카를 융은 그런 일들을 도저히 우연의 일치라고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공시성(synchronicity)’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모종의 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일들이 겉으로는 그저 우연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저명한 작가였던 아서 쾨슬러(Arthur Koestler, 1905∼1983년)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그는 ‘홀론(holon)’이라는 이론으로 우연 현상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 자연의 모든 것은 전체이자 동시에 부분인 ‘홀론’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상은 이것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그물망이 겹겹이 쌓여 있어서 겉보기에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일들이 동시에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홀론을 통해 서로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시성이나 홀론 이론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이 아니며, 사실은 과학의 대상으로 인정받지조차 못한 순수한 가설일 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까지 과학계에서는 이런 이론들을 연구하기 위해 어떤 방법론을 써야 할지 명확하게 합의된 바가 없다. 다만 통계학적 접근을 통해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보는 정도이다. 예를 들어 신기한 우연의 예로 흔히 예지몽을 드는데, 경험하는 당사자에게는 신비한 일이겠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개연성이 그리 낮은 편이 아니다. 우리나라 인구만 5000만 명이 넘고, 세계 인구는 76억이 넘는다. 이 정도 모집단이라면 그중에 누군가가 예지몽을 꿀 확률이 과연 희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우리가 꾸는 꿈은 대개 가족이나 지인 등 주변 인간관계 및 환경과 밀접한 경우가 많아서 꿈의 내용도 생각보다는 범위가 좁은 편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한 사람이 일생에 한두 번쯤 예지몽을 경험할 확률은 그리 낮지도 않다. 우연이라는 현상에 뭔가 의미 부여를 하려는 욕구는 마치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데, 그런 본능을 억누르고 항상 객관적인 설명을 구하려는 태도야말로 세이건의 유산이나 다름없다.

 

다만 우연이라는 현상을 100퍼센트 통계적 무작위성으로만 해석하는 것에는 여전히 일말의 거리낌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우연은 현재 과학의 대상이 아니며 굳이 분류하자면 의사 과학 혹은 유사 과학에 속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남을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외계 생물학이나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는 칼 세이건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주류 과학의 바깥에 있었다. 우연도 과연 현대 과학이 진지한 연구의 대상으로 새롭게 볼 날이 올까?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사실은 어떤 미지의 인과 관계로 엮여 있는 것이라면, 과연 어떻게 접근하고 연구해야 그 원리를 규명할 수 있을까?

 

 

과학은 항상 답을 준다

 

세이건의 견해가 궁금한 현상 중에 데자뷔, 즉 기시감도 있다. 2006년 SF 영화 「데자뷰」도 앞서의 「브레인스톰」처럼 그럴듯한 과학적 묘사를 담고 있다. CCTV나 위성 사진 등등 온갖 빅데이터를 이용해 과거의 특정 시점을 재현한 다음, 그 과거로 사람이 직접 시간 여행까지 한다. 작품의 설정은 과학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일부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것도 사실이다.

 

기시감, 또는 프랑스 말 데자뷔(déjà-vu)로 알려진 현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분명히 처음 가 보는 곳인데도 낯이 익다거나, 누구와 특정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갑자기 처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등등. 이런 현상을 해명하기 위한 이론도 폭넓은 영역에 걸쳐 제시되어 있다. 신경 생리학이나 정신 의학 같은 의학적 접근에서부터 양자 역학적 다원 우주론이나 평행 우주 등 SF적 해석에다 심지어는 전생의 기억이라는 유사 과학적 가설까지. 아마 세이건이라면 이 모든 가설을 샅샅이 검토한 다음 자신만의 결론을 내놓았을 것이다.

 

 

『브로카의 뇌』는 칼 세이건을 스타 저술가로 만들어 준 『에덴의 용』(퓰리처 상 수상작)과 전 세계적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만들어 준 『코스모스』 사이에 출간된 책으로 칼 세이건 사상의 발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고전적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브로카의 뇌』는 최신 저작은 아니다. 작가인 칼 세이건이 작고한 지도 이미 2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 에세이에 해당하는 이 책이 시대를 뛰어넘어 계속 출간되는 까닭은 뭘까? 과학자 중에 이런 영광을 누리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세이건을 읽는 것은 그가 전달하는 정보보다도 그의 지혜에서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을 포함한 세이건의 모든 저작에는 정보의 가치를 넘어서는 통찰과 태도의 가치가 듬뿍 배어 있다. 이번에 『브로카의 뇌』를 읽으면서 새삼 그런 점을 절감했다.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영토가 확장되는 2차원적 경험이 아니라 하늘로 오르며 시야가 넓어지는 3차원적 경험이다.

 

개인적으로는 『브로카의 뇌』를 오래전에 출간된 얄팍한 축약판으로만 접했다가 이번에 완역판으로 온전히 볼 수 있어서 반갑고 행복했다. 만약 누군가가 본받을 과학자, 아니 교양인이자 지성인의 멘토가 될 인물을 찾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세이건을 읽으라고 추천하겠다.

 

― 박상준(서울 SF 아카이브 대표)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브로카의 뇌』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코스모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혜성』

 

『지구의 속삭임』

 

『창백한 푸른 점』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에필로그』

 

 

『콘택트1』
『콘택트2』

 

『에덴의 용』

 

『코스믹 커넥션』

 

『파운데이션』 시리즈

 

『스타십 트루퍼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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