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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비행기로 다시 보는 007 시리즈: ‘영원한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를 기리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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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비행기로 다시 보는 007 시리즈: ‘영원한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를 기리며

Editor! 2020. 11. 17. 14:25

전 세계 21개국에서 64만 부 출간된 『카 북: 자동차 대백과사전』  책 표지의 애스턴 마틴 DB5는 영화 007 시리즈의 ‘본드 카’로도 유명하죠. 지난 달 타계한 숀 코너리가 제임스 본드로 분해 활약을 펼치던 순간, 여러분의 기억에 남은 자동차와 비행기는 어떤 것인가요? 『카 북』을 번역하신 자동차 저널리스트 류청희 선생님과 007 영화 장면 속으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배짱이 대단하시군요. 성함이…….”

“트렌치. 실비아 트렌치. 그쪽은 운이 대단하시네요. 성함이…….”

“본드. 제임스 본드.”

 

1962년에 개봉한 영화 「007 살인번호(Dr. No)」의 초반 카지노 장면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입니다. 영화 역사에 제임스 본드라는 스파이 캐릭터의 등장을 알리면서 배우 숀 코너리(Sean Connery, 1930년 8월 25일~2020년 10월 31일)가 스타로 발돋움하는 시발점이 된 장면과 대사죠.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특히 본드 역으로 많은 팬을 거느린 코너리가 얼마 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007 시리즈 팬의 한 사람으로써 그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007 시리즈 영화들에 등장한 자동차 그리고 비행기들을 돌아볼까 합니다.

 

 

숀 코너리, 272447@Pixabay

 

 

코너리는 모두 여섯 편의 007 시리즈에 출연했습니다. 정식 시리즈로는 007 살인 번호를 시작으로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골드핑거(Goldfinger)」, 「선더볼 작전(Thunderball)」, 「두번 산다(You Only Live Twice)」까지 잇따라 출연했고, 제작사와의 갈등으로 「007과 여왕(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을 건너뛴 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 출연으로 1대 제임스 본드 활동을 끝냈습니다.

 

첫 시리즈 「살인번호」가 나온 것이 1962년의 일이고 마지막으로 출연한 「다이아몬드는 영원히」가 1971년에 개봉했으니, 나이 30대의 10여 년을 본드로 살았던 셈이죠. 나중에 비공식 시리즈로 취급받는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Never Say Never Again)」에서 다시 한 번 본드 역으로 출연했는데, 1983년에 개봉한 그 영화에서 코너리는 50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얼굴 주름만 조금 깊어졌을 뿐 여전히 멋진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Aston Martin Lagonda/EON Productions/Danjaq

 

 

코너리와 007 시리즈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 요소 중 하나로 ‘본드 카(Bond car)’, 즉 제임스 본드의 차를 들 수 있을 겁니다. 본드 카가 정식으로 등장한 것은 세 번째 시리즈인 「007 골드핑거」입니다. 1964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통해 본드 카를 대표하는 애스턴 마틴 DB5(『카 북』 184~185쪽)가 모습을 드러내는데요.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듯, 영화 속 DB5는 특수 무기 담당자인 Q의 손으로 개조되어, 여러 특수 장비로 본드의 스파이 활동을 돕습니다. 영화 속 Q는 시리즈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 역할을 맡은 데즈먼드 루엘린과 함께 「위기일발」에 처음 등장하는데, 「위기일발」에서는 소소한 장비들을 소개하는 데 그쳤지만 「골드핑거」에서는 DB5라는 거물급 장비를 내놓습니다.

이 DB5에는 레이더 스크린, 기름 분사장치, 가동식 방탄판, 회전식 번호판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기어 레버에 숨겨진 버튼을 누르면 동반석을 하늘로 날려 버리는 사출 장치도 재미있었고요. 특히 포드 머스탱과 벌이는 추격전에서는 바퀴 중심에서 튀어나오는 타이어 파괴 장치가 큰 역할을 합니다. 이 장치는 영화 「벤허」 속 전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합니다.

 

 

Aston Martin Lagonda

 

 

본드 카로 처음 쓰인 DB5는 워낙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덕분에 다음 시리즈인 「007 선더볼 작전(Thunderball)」에도 다시 한 번 등장하고, 1990년대 이후에도 수시로 등장합니다. 특히 23번째 시리즈로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스카이폴(Skyfall)」에서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과정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하죠. 원래 올해 개봉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내년으로 미뤄진 「노 타임 투 다이(No Time To Die)」에도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ston Martin Lagonda

 

 

DB5의 본드 카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애스턴 마틴은 이미 생산된 DB5를 복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남은 부품을 활용해 새로 생산하는 컨티뉴에이션(Continuation) 상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영화 제작사인 이언 프로덕션(EON Production)과 협력해, 영화 속 본드 카의 비밀 무기들까지 재현한 DB5 골드핑거 컨티뉴에이션 모델을 25대 한정 생산하고 있습니다. 몇몇 기능은 흉내만 내기는 했지만 가동식 방탄판과 회전식 번호판, 연막 분사 장치처럼 실제로 작동하는 것들도 있고요. 앞쪽 방향 지시등이 열리며 나오는 기관총은 실제 발사되지는 않고, LED 조명으로 발사되는 듯한 효과를 내도록 만들었습니다.

 

 

トヨタ自動車(株)

 

 

한편, 「두번 산다」에서는 이색적인 차가 나옵니다. 영화의 무대가 일본이어서, 역대 시리즈 가운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본 브랜드 차가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데요. 바로 토요타 2000 GT(『카 북』 287쪽)입니다. 일본 차 처음으로 미국과 유럽의 정통 스포츠카에 견줄 만한 스타일과 성능을 갖춘 것으로 유명한 모델인데요. 원래 지붕이 있는 쿠페 모델만 있던 차를 영화에 내보내기 위해 특별히 지붕 없는 모델로 개조했다는 이야기는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키가 큰 숀 코너리가 타기에는 지붕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RM Sotheby’s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서는 트라이엄프 스태그(Triumph Stag)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본드가 임무를 위해 다이아몬드 밀매업자로 위장해 ‘적진’에 침투하는 과정에서 진짜 밀매업자로 행세하기 위해 빼앗아 타는 차로 나오는데요. 트라이엄프는 비교적 역사가 긴 영국 자동차 브랜드로, 스태그는 영화 제작 당시만 해도 갓 나온 최신 모델이었습니다. 나름 고급 스포츠카로 만들어졌지만 차 자체의 문제가 많아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장가치 있는 차로 탄탄한 애호가층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물론 본고장인 영국 이야기긴 합니다.

 

 

Ford Motor Company

 

 

같은 영화 후반부에 펼쳐지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추격전에서는 본드가 포드 머스탱 마하 원(Mustang Mach 1, 『카 북』 234~235쪽)을 몹니다. 미국에서의 흥행을 노린 제작사가 미국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당시 인기 있던 머스탱의 고성능 모델인 마하 원을 내놓은 포드가 제공한 차였죠. 이 차를 쓴 추격전 장면에서는 좁은 골목에서 차를 기울여 한쪽 두 바퀴로만 달려 빠져 나가는 장면이 재미있는데요. 여러 차례 촬영한 것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들어갈 때와 나올 때에 차가 기운 방향이 다른 것을 발견해, 어색함을 덜기 위해 나중에 중간 장면을 새로 촬영해 끼워 넣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Lotus Cars

 

 

숀 코너리가 시리즈를 떠난 이후로는 시리즈 전반에 걸쳐 DBS, V8 밴티지, 뱅퀴시, 신형 DBS, DB10 등 여러 애스턴 마틴이 나왔고, 로저 무어가 본드 역을 맡았던 시기에는 영국 브랜드 중 하나인 로터스의 에스프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는 에스프리가 잠수함으로 변신해 충격을 주기도 했고요. 피어스 브로스넌이 본드 역을 맡았을 때에는 BMW가 후원해 Z3 로드스터, Z8, 750iL 등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007 시리즈 팬이라면 최고의 본드 카로 단연 코너리와 함께 했던 애스턴 마틴 DB5를 꼽을 겁니다.

 

본드 카만큼은 아니어도,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행기들도 흥미로운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저는 사실 옛날 007 시리즈는 제법 나이를 먹고 난 뒤에 접했는데(「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개봉 이후에 태어났으니 당연하죠.) 뒤늦게 「살인번호」를 보며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본드가 임무를 위해 뉴욕에서 자메이카로 가는 장면에서 등장한 팬암(Pan Am) 항공사의 보잉 707(『비행기』 160쪽) 여객기의 모습이었습니다. 후속작인 「위기일발」에서도 런던에서 이스탄불로 갈 때 같은 항공사의 같은 기종을 타는데요.

 

 

clipperarctic @ Wikimedia Commons

 

 

한때 미국 최대 규모였지만 1989년에 파산한 역사 속 항공사에 여객기의 제트 엔진 시대를 열고 세계적 항공사들이 애용했던 보잉 707이 나오는 모습이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본드 입장에서는 급한 임무로 해외 출장을 가는 것이니 당연한 일인데요. 영화가 1960년대 초에 만들어졌다는 걸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던 거죠.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국제선 여객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일이 흔치 않았을 테니,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을 때(1965년이 되어서야 개봉했다고는 합니다만)에는 관객들이 무척 신기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John5199 @ Wikimedia Commons

 

 

이 즈음까지는 007 시리즈에서 항공기가 썩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지만, 역시 「골드핑거」 이후로 영화의 스케일이 커지면서 다양한 종류의 항공기들이 여러 방면으로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선더볼」에서는 스펙터가 영국군의 핵탄두를 탈취해 엄청난 돈을 요구하며 영국 정부를 위협하는데, 협박 수단인 핵폭탄을 탈취당하는 항공기로 아브로 벌컨(Avro Vulcun) 폭격기가 나옵니다. 벌컨은 영국 폭격기로는 드물게 수평 꼬리 날개가 없는 델타익(삼각 날개)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인데요. 처음부터 핵 폭격을 위해 개발된 만큼 영화의 설정과도 잘 맞아 떨어집니다.

 

이 폭격기는 1956년부터 실전 배치되어 영화가 개봉한 1965년 당시에도 현역이었는데, 나중에 1982년에 있었던 포틀랜드 전쟁 때에도 투입된 것은 물론 일부는 2005년이 되어서야 퇴역할 만큼 장수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영화와 주요 내용이 같은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서는 같은 역할을 미국 공군의 록웰 B-1 랜서(Lancer)(『비행기』 231쪽)가 맡습니다.

 

 

Mike Burdett @ Wikimedia Commons

 

 

「두번 산다」에서는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재미있는 항공기가 나옵니다. 1인승 초소형 자이로플레인인 월리스 WA-116 ‘리틀 넬리(Little Nellie)’(『비행기』 192쪽)인데요. 헬리콥터와 비행기를 섞어 놓은 듯한 형태의 이 항공기는 실제로는 대단한 성능을 내거나 활용도가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는 역시 Q의 손을 빌어 훌륭한 무기로 재탄생합니다. 창고에서 부품을 간단히 조립해 금세 완성해 비행할 뿐 아니라, 기관총과 로켓탄을 달아 악당(물론 스펙터입니다.)들의 벨 47 헬리콥터들(『비행기』 133, 151쪽)과 대결까지 펼칩니다.

 

 

Zwiadowca21 @ Wikimedia Commons

 

 

영화 관점에서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막바지에 나오는 석유 시추선 공격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대형 스크린으로 보면 정말 장관이겠다 싶을 만큼 스펙터클한 대규모 헬리콥터 액션이 펼쳐지는데요. 벨 206 제트레인저(JetRanger)(『비행기』 222~225쪽)를 비추던 카메라가 줌 아웃하며 미군 해병대의 벨 UH-1 이로쿼이(Iroquois)(『비행기』 192~195쪽)와 휴즈 OH-6 케이유스(Cayuse)(『비행기』 192~195쪽) 편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이내 석유 시추선을 기관총과 로켓탄으로 공격합니다. 이들은 민간용과 군용 헬리콥터로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헬리콥터를 이용한 대규모 항공 액션으로서는 무척 이른 시도였으면서도, 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상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영화라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자동차나 비행기는 소품 개념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007 시리즈에서 그 두 가지 요소는 이야기의 배경과 주인공의 활약에 꼭 필요한 도구로 쓰입니다. 제임스 본드를 빛내는 조명 같은 역할을 해 온 거죠. 우리가 본드 그리고 코너리를 멋진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외모와 연기가 가장 크겠지만, 영화 속 자동차와 비행기가 준 영향도 결코 작지 않을 겁니다.

 

 

Aston Martin Lagonda

 

 

다시 한 번 「영원한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의 명복을 빕니다. 먼 곳에서도 매력적인 미소와 함께 젓지 않고 흔든 보드카 마티니를 즐기시길 빕니다.

 

― 류청희(프리랜서 자동차 저널리스트)

 

 

애스턴 마틴 DB5(『카 북』 184~185쪽에서)
벨 206 제트레인저(『비행기』 222~225쪽에서)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DK 『카 북』 [도서정보]

 

 

DK 『비행기』 [도서정보]

 

 

DK 『탱크 북』 [도서정보]

 

 

『엔진의 시대』 [도서 정보]

 

 

『비행의 시대』 [도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