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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의 투쟁은 어떻게 될 것인가 : 암 유전자의 발견자 로버트 와인버그의 『세포의 반란』으로 읽는 암치료의 미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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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의 투쟁은 어떻게 될 것인가 : 암 유전자의 발견자 로버트 와인버그의 『세포의 반란』으로 읽는 암치료의 미래

Editor! 2021. 10. 19. 16:48

유전자의 발견자로 유명한 암 생물학자 로버트 와인버그가 화제를 부르고 있는 EBS 석학 강연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를 통해 한국 독자를 만납니다. 인류와 암의 투쟁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로버트 와인버그의 육성을 직접 듣고, 암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증식하고 전이하는지,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등에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 강연을 기념해 사이언스북스에서는 로버트 와인버그의 암 생물학의 핵심 정수를 알기 쉽게 모아 놓은 걸작 과학책 『세포의 반란』의 16장 「난치병에 종지부를 찍다」를 사이언스북스 독자들에게 온라인으로 공개합니다. 책과 방송을 함께 보시면 암과의 투쟁 또는 공존에 대한 새로운 식견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암과의 투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암 유전자의 발견자 로버트 와인버그의 『세포의 반란』으로 읽는 암치료의 미래

 

 

로버트 와인버그가 강연하는 EBS 석학 강연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암’ 편은 2021년 10월 19일 (화)~10월 25일 (월) 22시 45분~23시 05분에 EBS1에서 5회에 걸쳐 방송됩니다. (매회 방영 직후 EBS 홈페이지에 다시보기가 업로드 됩니다. https://home.ebs.co.kr/greatminds/index )

 

 

20여 년 전 시작된 과학 혁명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암을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힘에 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암의 원인을 알고 있으므로, 이들이 출현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거나 출현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완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질병 가운데 가장 복잡한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 유전학과 분자 생물학의 모든 역량이 동원되었으며, 아직 모든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암에 관한 완전무결한 설명의 개요 정도는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암 연구에서도 현대 생물의학 연구의 접근 방법이 진가를 발휘했다. 즉 복잡한 문제를 조각조각 분해해서 단순하고 분석 가능한 요소로 환원한 후, 명료하며 동시에 난공불락인 진리를 유추해 내는 것이다. 결코 길지 않은 20여 년 동안 우리는 암의 기원에 관한 불꽃 튀는 논쟁의 시기를 지나서 이제는 암의 배후에 숨어 있는 힘에 관해 널리 수용되고 있는 상세한 설명을 도출해 내기에 이르렀다.

 

과학 혁명이 제공한 가장 중요한 통찰력은 암이 손상받은 유전자에 의한 질환이라는 관점이다. 우리는 이제 용의를 받고 있던 수많은 유전자의 정체암 유전자와 암 억제 유전자를 알고 있다. 이 유전자들은 세포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로 세포는 암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에 화답했다. 그러나 아직도 암과 관련된 많은 유전자들이 확인되지 않았고, 유전자 클로닝을 통해 분리되지도 않았으며, 당연히 이런 수많은 유전자들이 세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도 미지수로 남아 있다.

 

우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암세포가 돌연변이 유전자를 만들어 내는 것을 촉진하는 인자를 알고 있다. 암이 출현하기까지 돌연변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도, 이때 각각의 돌연변이가 세포의 성장을 조절하는 특정 유전자를 교란시킨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유전체를 유지하고 복구하는 메커니즘에 결함이 있는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포 내의 유전체의 견고함을 깨뜨리는 사건들이 암의 출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성장을 조절하는 다양한 유전자가 발견되면서, 우리는 각 세포 내에 복잡한 의사 결정 회로가 있다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생물학자들은 한 세기 이상 세포의 다양한 행동에 관한 목록을 작성해 왔는데, 세포의 행동은 세포 속에 깊이 숨겨져 있으며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생명력에 의해 결정되는, 나름대로 논리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우리는 이제 그러한 논리를 다양한 자극에 대한 세포의 반응을 결정하는 중요한 신호 처리 단백질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정보들이 추가되고 있다. 바로 이 신호 처리 회로의 구성, 즉 회로의 연결과 각 구성 요소의 작용이 세포의 행동 방식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로에 관한 지식은 암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는 궁극적인 해답을 제공해 줄 것이다. 세포의 깊숙한 곳에 이보다 더 심오하고 미묘한 메커니즘은 없다. 모든 해답이 바로 이 회로 안에 있으며 곧 모든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암에 관한 연구는 우리를 세포의 심장부인 세포 주기 시계로 데려다 주었으며, 이 시계는 세포 운명의 주재자로서 성장과 분화에 관한 결정권을 소유하고 있다. 아직 세포 주기 시계에 관한 연구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우리는 이미 대부분의, 어쩌면 모든 종류의 암에서 이 시계가 손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확실한 해답의 개요는 이미 밝혀져 있지만, 중요한 많은 세부 사항들을 채워 넣어야 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밝혀진 많은 유전자들을 통해 잉태된 순간부터 예정된 암(가족성 암)과 일생 동안 일어나는 무작위적인 유전적 사고의 결과로 나타나는 암(산발성 암)과의 연결 고리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두 종류의 암은 일부에서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별개의 질환이 아니며, 동일한 유전자 레퍼토리가 정자가 난자를 뚫고 들어가기 전에 손상을 받았느냐 후에 받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로버트 와인버그의 『세포의 반란』.  ⓒ㈜사이언스북스.

 

암의 정복은 예방에서

 

이 책에 설명된 풍부한 지식이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는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전망은 있는가? 언뜻 생각해도 어떤 질병의 치료법은 그 질병의 원인을 이해함으로써 가장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암과 관련된 유전자와 단백질에 관해 얻은 최근의 지식을 통해 우리는 암 정복에 한층 다가설 수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암의 궁극적인 원인은 사실 개별 세포의 바깥쪽 먼 곳, 즉 우리의 주위 환경과 우리가 먹는 음식, 호흡하는 오염된 대기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암 발생률을 현저하게 낮추기 위해서는 이러한 암의 궁극적인 뿌리를 본격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전자와 단백질에 관한 지식은 여기에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난 두 세기 동안 다른 주요 질병들이 보여 준 선례의 교훈은 분명하다. 즉 개인 위생과 영양, 깨끗한 물, 예방 접종을 통해 사망률이 감소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암으로 확대해 보면,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크게 낮추는 일에는 마찬가지로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하는 것보다 암을 예방하는 편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크게 낮추려면 암을 일으키는 특별한 원인들, 특히 식생활과 생활 양식의 특정 요소들을 확인하고 제거해야 하며, 이런 일은 전적으로 역학자의 소관에 속한다. 실제로 우리는 역학 연구를 통해 이미 많은 사실을 배웠으며, 역학자는 문제의 뼈대를 세우고 범위와 넓이, 깊이를 정하는 일을 해 왔다. 또한 이들은 일부 학파에서 널리 통용되던 몇 가지 오해를 깨우쳐 주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공업 사회에서 암이 전염병처럼 범람하는 것은 대부분 대기나 음식물 속의 화학적 오염 물질 때문이라는 믿음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환경 오염이 급격하게 심해졌는데도 담배와 연관된 암과 유방암을 제외한 대부분의 암 발생률은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으며, 기껏해야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암만이 인간이 만든 환경 요소에 의해 유발된다. 1930년에 미국에서 암으로 인한 연간 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143명이었지만, 1990년에는 10만 명당 190명으로 증가했다. 이 수치는 인구의 연령 분포의 변화가 보정된 것으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암의 발생률은 나이와 큰 상관 관계를 지니고 있다.

 

나이를 보정한 암 사망률의 거의 대부분은 담배의 소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1990년대 동안 미국 내 암 사망률의 3분의 1은 담배에 의한 것이었으며, 흡연의 감소는 이미 효과를 거두고 있어서, 1990년에는 한 세기 동안 증가해 오던 남성의 폐암 사망률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폐암을 제외한다면 나이를 보정한 암 사망률은 1950~1990년에 14퍼센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1960~1990년에 약 10퍼센트 증가했다. 유방암의 발생률은 점점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발생률의 증가보다 치료율의 증가가 앞서고 있으며, 치료는 주로 외과 수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유방암의 원인은 대단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현재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견해에 의하면, 유방암의 증가는 현대적 식생활과 출산 태도의 변화에 의해 여성이 일생 동안 경험하는 월경 주기의 수가 증가한 것에 기인한다. 아직 잘 밝혀지지 않은 추가적인 사실로는 일찍 임신했을 경우 유방암 발생률이 낮아진다는 점이다. 일찍 임신하면 유방 조직이 나중에 암을 견딜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으로 보이며, 아이를 늦게 낳으면 유방암 발생률은 증가한다.

 

음식물은 모든 암의 거의 절반 정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음식물에서 암을 일으키는 요소들은 대부분 확인하기가 어렵다. 서구식 식생활은 중앙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 비해 대장암 발생률을 10~20배 증가시킨다. 대장암의 중요 용의자로는 서구식 식생활에 흔한 육류와 동물성 지방이 꼽히고 있다. 여기에서는 요리 과정도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육류, 특히 붉은 육류 계통은 고온에서 가열할 경우 강력한 발암 물질을 내놓는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식생활과 관련된 암의 발생률이 높다. 일본식 식생활은 미국에 비해 6배나 높은 위암 발생률을 야기하고 있으며, 소금에 절인 음식이나 발효 음식, 훈제 음식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식물성 음식은 암을 일으키는 물질과 예방하는 물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양날의 칼과 같다. 채소는 정상적인 대사 과정 중에 만들어지는 산화 물질과 자유 라디칼 같은 중요한 발암 물질을 중화하는 비타민 A, C, E를 제공해 주지만, 어떤 식물성 물질은 암 발생에 적극 기여하기도 한다. 식물은 탐식자인 곤충에게 고약한 맛을 내도록 정교한 화학적 방어 체계를 발전시켜 왔으며, 여기에는 에임스 테스트에서 강력한 돌연변이원으로 등록된 물질들도 있다. 에임스 자신도 경작 중에 합성 살충제를 적게 사용해도 되는 신종 셀러리에 관해 언급한 바 있는데, 이때 곤충에 대한 저항력 증가는 자연 상태의 셀러리에서 발견되는 강력한 돌연변이원이 10배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었다.

 

다른 모든 식물과 마찬가지로 셀러리에도 갖가지 종류의 발암 물질과 항암 물질이 들어 있으며, 셀러리는 정상적인 식생활에 포함되는 여러 종류의 식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 결국 여러 식물이 각각 지니고 있는 단순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유기 화합물을 우리가 먹는 음식 속에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자연 화합물들이 인체 내에서 이루는 여러 복합물 간의 상호 작용 그리고 이들이 대사에 미치는 영향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며, 어떤 자연 식품이 우리를 건강하게 하고 어떤 식품이 우리의 수명을 단축시키는지 확인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대단히 복잡한 문제인데도 일부 결론은 이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담배와 고지방, 고육류 식생활을 피한다면 현재의 암 중 거의 절반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암은 의심할 나위 없이 앞으로 수십 세대는 족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이는 가장 건전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예방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로버트 와인버그. EBS 유튜브 화면 갈무리.

 

암 치료 유전자와 단백질을 탐색하다

 

암의 외부적 요인을 모두 확인한 후에도 인간의 행동은 결코 역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에 딱 들어맞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기묘할 정도로 복잡한 인체는 한편으로 암 발생의 불가피성을 말해 주고 있다. 모든 복잡한 기계는 언젠가 고장이 나는 것 아닌가? 시간만 충분하다면 암은 모든 인류에게 나타날 수도 있으며, 바로 이 시점에서 최근에 발견된 유전자와 단백질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암에 대처할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암의 조기 진단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암은 초기에 발견해서 제거하면 완치되는 경우가 많지만, 조기 진단에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우선 암세포 덩어리가 아직 대단히 작을 때 발견해야만 한다. 지름 1센티미터의 종양은 체중의 0.01퍼센트도 되지 않으며, 현재 이렇게 작은 양을 검출할 만큼 민감한 생화학적 진단 방법은 아직 없다.

 

두 번째로 암 발달의 초기 단계에 있는 암세포는 거의 모든 면에서 정상 세포와 대단히 유사해서, 암세포에 특이적인 표지를 찾는 임무는 막막하기 이를 데 없다. ‘암 특이적이라고 여겨졌던 거의 모든 단백질이 나중에는 인체 어디선가 정상 조직에 의해 생산되는 것으로 밝혀지곤 했다.

 

이렇게 실패도 했지만, 암을 진단하는 가장 매력적인 방법은 암세포에 존재하는 독특한 유전자와 단백질을 확인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돌연변이 암 유전자와 암 억제 유전자, 그리고 해당 단백질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전체 종양의 약 3분의 1에 존재하는 돌연변이 ras 암 유전자는 정상 세포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염기 서열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이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ras 단백질도 자연 상태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몇몇 연구자들은 대장에서 돌연변이 ras 암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세포를 찾고자 시도했는데, 대장암 세포가 정상 대장 세포와 마찬가지로 다량으로, 계속해서 대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이 임무는 훨씬 간단하게 끝낼 수 있었다. 대단히 민감한 DNA 분석 기법을 이용해서 존스 홉킨스 대학의 데이비드 시드란스키(David Sidransky)는 대변 견본의 DNA에서 돌연변이 ras 암 유전자를 검출해 냈다. 이런 분석은 이미 다른 방법을 통해 대장암 진단 환자의 견본을 가지고 수행되었다. 따라서 암을 초기에 진단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개선해서 민감도를 더욱 높여야 하지만, 이 기법의 장기적인 전망은 분명하다. 즉 악성으로 진행할 대장암을 외과적으로 치료 가능한 초기에 발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모든 내강 장기(안쪽에 빈 공간을 가지고 있는 장기를 말한다.옮긴이)에서 세포가 안쪽의 공간으로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결국 동일한 전략을 방광이나 자궁, 폐와 같은 기타 내강 장기의 암에도 적용할 수 있다. 떨어져 나온 방광 세포는 소변에서 찾을 수 있으며, 떨어져 나온 폐 세포는 기관지 위쪽의 점액에서 검출할 수 있다. 대장의 경우, 떨어져 나온 세포를 분석하는 일이 조기 진단과 치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가족성 암 역시 암 발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일부 연구가들은 전체 암의 10퍼센트 정도가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암에 대해 타고난 취약성을 예측하는 일 역시 암을 조기 진단하는 데에서는 대단히 유용한 방법이 될 것이다.

 

대장암의 경우 가족성 폴립과 유전성 비폴립성 대장암 증후군이 대장암 전체의 1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유방암에서도 비슷한 비율이 돌연변이 BRCA1 BRCA2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과 관련 있다. 앞으로는 거의 모든 종류의 암 중에서 일정 정도가 알려진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며, 이때 돌연변이 유전자는 주로 암 억제 유전자가 될 것이다.

 

소량의 조직 견본에서 돌연변이 유전자를 검출하는 기술은 신속하게 진보하고 있으며, 곧 환자의 피 한두 방울을 가지고 환자가 어떤 암에 취약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정 암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비율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족에게는 이와 유사한 분석 방법을 산전 진단에 이용할 수도 있다. 이 진단 방법을 이용하면 가족 구성원 중에서 누가 고위험군에 속하며 누가 위험을 벗어났는지 알 수 있다. 고위험군에 속한 가족 구성원은 전 생애에 걸쳐 면밀한 주의가 필요할 것이며, 특별히 가족성 폴립이나 유방암과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암일 경우에는, 환자는 악성 종양이 출현하기 전에 해당 장기를 제거하는 수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강력한 유전자 기법도 우리를 완전하게 보호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암에 대해 취약성을 타고났는지, 전 인구를 대상으로 확인하는 일은 경제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며,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대부분의 작은 암세포 덩어리들은 예술적인 경지에 오른 진단 기법을 통해 펼쳐 놓은 그물을 교묘하게 빠져 나갈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크기가 커지고 증상을 일으킨 후에야 진단되는 많은 암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때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항암 치료의 효율성과 한계가 생사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다양한 종류의 고형암 환자들의 장기 생존율은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으며, 이를 한층 개선하려면 대단히 진보적이고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어야만 한다.

 

이 책에서 설명된 기초적인 분자생물학 연구는 이런 점에서 어마어마한 보상을 약속하고 있다. 암세포의 망가진 회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연구자들은 새로운 항암제의 매력적인 목표가 될 수많은 유전자와 단백질을 밝혀냈다.

 

이들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약물 개발의 물결이 이미 시작되어 우리 곁에 왔다. 제약 회사들이 개발하고 있는 화학 물질은 세포가 ras 단백질을 생산하는 능력을 차단하는 강력한 효과를 보이고 있으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약물들이 암세포의 성장은 강력하게 저해하지만, 정상 세포에는 비교적 적은 영향만을 미친다는 점이다.(정상 세포도 성장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상 ras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단일 클론 항체 역시 효과적인 치료제가 될 수 있다. 단일 클론 항체는 쥐에게서 만들어진 항체로서 인체 내의 특정 단백질에만 특이적으로 결합하며, 따라서 목표물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미사일과 같다. 어떤 단일 클론 항체들은 세포 표면에 있는 수용체(EGF 단백질이나 erb B2/neu 단백질)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데, 이 두 단백질은 유방암 세포의 표면에 비정상적으로 높은 농도로 발현된다.

 

단일 클론 항체는 두 가지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첫 번째로 방사능 원소를 항체에 결합시킨 뒤 이를 환자에 주사하면 항체는 목표 수용체를 다량으로 발현시키고 있는 암세포를 찾아가서 방사능 물질을 암이 있는 곳에 집중시킬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영상 장비를 통해 검출해서 기존의 통상적인 영상 기법으로는 진단할 수 없었던 암을 찾아낼 수 있다. 두 번째로 항체에 독소를 결합시킬 수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항체는 독소를 암세포라는 표적으로 유도하는 인공 지능형 미사일이 된다.

 

이론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이 두 가지 응용 방법은 정상 세포들이 비록 낮은 농도라 하더라도 동일한 수용체를 발현한다는 점 때문에 복잡해진다. 독소가 결합된 항체는 항체의 표적이 되는 수용체를 발현하고 있는 정상 세포를 불가피하게 파괴할 수밖에 없으며, 방사능 물질이 결합된 항체는 암의 겉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지만 동일한 표적 항원을 발현하고 있는 정상 세포들 때문에 외과 의사가 암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항암제의 가장 큰 혁신은 최근에 세포 자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많은 항암제들이 암세포의 세포 자살을 유도함으로써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대부분의 세포가 p53 단백질이 정상적으로 기능해야만 세포 자살을 유도하는 약물에 반응하기 때문에 앞으로 암 전문의들은 항암 약물 치료 전략을 세우기 전에 p53 유전자의 상태를 확인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암은 정상적인 p53 기능을 잃었기 때문에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항암제에 잘 반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새로운 항암 치료 전략을 개발하려는 연구자들은 p53 단백질이 기능을 하지 않더라도 세포 자살을 유발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며, 그렇게 하려면 세포 자살 반응을 조절하는 세포 내의 회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bcl-2 원형 암 유전자는 이렇게 중요한 세포 자살 반응을 조절하는 수십 개 유전자 중 하나이다. 세포 자살과 관련된 여러 유전자들의 역할세포 자살의 촉진 또는 저해에 관한 연구가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일단 이 회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면 암세포의 세포 자살을 유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항암 치료제 개발의 전망은 대단히 밝다!

 

 

로버트 와인버그의  『세포의 반란』.  ⓒ㈜사이언스북스.

 

미래로 가는 길

 

21세기에는 세포 회로의 모든 요소에 대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알게 될 것이며, 성장과 분화에 영향을 미치는 신호를 세포가 수용하고 처리하는 방식에 관한 거대한 회로도에서 모든 신호 전달 단백질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암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재능들이 필요하게 된다. 복잡한 다중 체계 분석에 재능이 있는 수학자는 생물학자에게 세포 내의 작은 컴퓨터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해 줄 것이며, 또한 세포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지, 암 발달 과정 중에 어떻게 해서 탈선하게 되는지 밝혀 줄 것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세포의 삶을 조절하는 유전자와 단백질을 찾아내는 전략은 만만치 않은 실험적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방식에 의존해 왔으며, 생물학자에게 더 좋은 대안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한 발견들 덕분에 새로운 거대한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게 되긴 했지만 꾸준하고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수수께끼에 가까운 단서를 쫓아서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그물을 던지곤 했으며 그것도 대부분 무위로 돌아갔다.

 

, 이런 모든 행태는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몇 년 안에 우리는 더 체계적인 방법으로 세포의 구성 방식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그런 새로운 진보의 상당 부분은 인간 세포가 지니고 있는 전체 유전자를 목록화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인, 인간 유전체 사업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는 인간 유전체에 얼마나 많은 유전자가 담겨 있는지 알게 될 것이며, 각 유전자의 염기 서열은 세포에서 이들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최근까지 암 억제 유전자를 찾는 일은 대단히 느리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으며, 사용된 기법은 부정확한데다가 예외 없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또한 중요한 유전자를 발견하는 일은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일단 인간 유전체가 모두 알려지면 암 유전자 목록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10여 년 내에 우리는 거의 모든 암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대부분의 암에서 이들이 담당하는 역할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다른 기술도 필요할 것이다. 인간은 다양한 종류의 암에 취약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으며,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 유전자들은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우리가 발암 물질을 중화하는 방식과, DNA를 효율적으로 질서 정연하게 관리하는 방식, 암이 되는 길목에 서 있는 길 잃은 세포를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모두 유전적으로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각 개인은 서로 다른 조합으로 이런 유전자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암의 출현은 무작위적인 사건이 수렴되는 동시에 다양한 유전자의 거대한 군집이 상호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암 유전학자들은 개별 유전자들의 역할과 이들이 각각 암의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암은 어떤 단일 유전자들의 독립적인 작용이 아니라 일군의 유전자들의 통합적인 작용을 통해 발생한다. 장차, 새로운 형태의 수학을 통해 여러 부류의 유전자들이 조합으로 작용해서 암의 출현을 용이하게 하는 소위 다중 유전자 암의 기원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 10~15년 안에 우리는 한 개인이 다양한 다중 유전자 암에 걸릴 확률을 꽤 정확하게 예측하게 될 것이며, 자료 처리 및 DNA 염기 분석 자동화 분야의 거대한 진보에 힘입어 빠르고 저렴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전자 지도의 작성자들이 내놓은 유전자 목록이 모든 해답을 제공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 DNA 염기 서열만 가지고는 대부분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할 수 없지만, 이 문제는 분명히 21세기 초반까지 해결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단백질을 직접 생화학적으로 분석하지 않더라도 암의 발달 단계에 관여하는 많은 단백질의 작용 방식을 예측할 수 있다.

 

정보 처리와 분석 기술이 이렇듯 혁명적으로 변화되었는데도 생화학자와 유전학자의 손이 필요한 일은 여전히 핵심 위치를 차지할 것이며, 이들은 세포 내에서 각 단백질이 의사 소통하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또한 이미 일부 사용되고 있는 강력한 유전자 클로닝 전략은 살아 있는 세포의 세포질 내에서 각 단백질이 어떤 단백질과 상호 작용하는지, 이러한 단백질 상호 작용이 어떤 방식으로 거대한 통신망을 이루어 성장과 분화, 죽음에 관한 문제를 결정하는지 밝혀낼 것이다.

 

 

● 이 글은 20211225일까지 온라인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로버트 와인버그(Robert A. Weinberg)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 부설 화이트헤드 연구소 생물의학 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연구실은 정상 세포를 암세포를 바꾸는 암 유전자가 있음과 그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밝혀내 암 치료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와인버그는 이 연구 업적으로 미국 국가 과학 훈장 등 여러 과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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