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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이언스-오픈-북

과학과 인문학이 하나가 될 때, 새로운 계몽 운동이 일어날 것

Editor! 2021. 1. 20. 20:03

전 세계 학계는 물론, 한국 사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 출간되고 약 20년이 흐른 2021년 윌슨이 『창의성의 기원』이라는 새로운 책으로 한국 독자들을 찾아왔습니다. 이 책에서 윌슨은 자신의 ‘통섭’ 개념에 제기되었던 비판들에 대해 답하면서, ‘통섭’이라는 이슈를 한 차원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서로 대립하고 한쪽을 무시하고 깎아내릴 것이 아니라 섞여야 하고, ‘인간다움의 총체’인 인문학이 원래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과학이 돕고, 인문학자들도 과학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을 누구보다 먼저 읽어 보고 책을 번역하신 이한음 선생님의 「옮기고 나서」를 사이언스북스 블로그 독자들에게 특별 공개합니다.


에드워드 윌슨의 신작 ,  『 창의성의 기원 』 .  사진  ⓒ ㈜ 사이언스북스 .

 

 

창의성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발휘될까? 그리고 애초에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하면 더 확장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런 질문들에 답하고자 한다. 저자는 인류와 다른 동물들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창의성이라고 본다. 우리만이 진정한 의미의 창의성을 발휘한다. 덕분에 과학을 토대로 한 첨단 기술 문명까지 이루었다.

 

그런데 창의성 하면 본래 예술을 비롯한 인문학 쪽에서 내세우는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 아니던가? 하지만 저자는 전작들에서도 말했듯이, 인문학이 뿌리와 단절된 상태로 놓여 있기에 인문학이 내세우는 창의성도 좁은 범위에 갇혀 있다고 본다. 인문학은 사실상 신석기 혁명 이후만을 고려 대상으로 삼는데, 그때쯤에는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들도 이미 다 형성된 뒤이기에, 출발할 때부터 이미 시야가 좁아진 상태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인문학이 그렇게 편안하게 좁은 세계에 안주하려고 하다 보니, 사람들로부터 점점 존중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왔다고 말한다. 과학이 세상 만물의 궁극적 원인을 찾으려고 애쓴 결과로 세상은 빠르게 변해 왔건만, 인문학은 궁극 원인에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전시 ,  영화 ,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엄유정 작가의 그림과 출판계 주목의 책 디자이너 박연미의 디자인으로 장정된 에드워드 윌슨의 책들 .  사진  ⓒ ㈜ 사이언스북스 .

 

 

예술과 인문학이 자랑하는 창의성의 궁극 원인은 무엇일까? 즉 창의성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그냥 인간이 본래 지닌 속성이라고 받아넘기고, 이용만 하면 될까?

 

저자는 그런 태도가 창의성의 잠재력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인간은 주로 시각과 청각에 의지하는 별난 종이라서, 곤충 세계의 주된 의사 소통 수단인 페로몬을 맡지 못한다. 그러나 생태계를 이루는 종들은 대부분 후각적 수단을 주로 쓴다. 그러니 우리는 지구의 가장 주된 의사 소통 수단에 관해 사실상 거의 모르고 있는 셈이다. 과학이 밝혀낸 그런 사실들까지 고려하면, 우리의 창의성도 더 확장되지 않을까?

 

저자는 이렇게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토대로 삼을수록 인문학도, 창의성도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인문학이나 과학이나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자기 이해다. 그런데 그런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면서, 왜 좁은 시야 안에서만 머물러 있으려 하는 것일까? 더 넓혀서 과학적 인문학과 인문학적 과학으로 통합을 도모한다면, 진정한 자기 이해에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만큼 창의성도 더 발휘되지 않을까?

 

저자는 이런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한편으로, 그런 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도 피력한다. 그리고 그런 융합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조언하고 있다.

 

 

『 창의성의 기원 』  5 부 시작 부분 .  왼쪽 그림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 예로부터 계신 이 」 이다 .  기독교 성서  「 다니엘서 」 의 삽화로도 사용된 이 그림은 유태교에서 사용하는 신의 이름 중 하나이다 .  또한 블레이크 자신의 신화관에 따르면 네 조아 (Zoa)  중 하나로 이성을 상징하고 남쪽을 관장하는 존재인 유리젠 (Urizen) 이기도 한다 .  윌슨은 이를  18 세기 전후로 일어난 제 2 차 계몽 운동의 상징 ,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을 뜻하는 존재로 사용한다 .  사진  ⓒ ㈜ 사이언스북스 .

 

 

저자는 과학과 인문학이 하나가 될 때, 새로운 계몽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리고 그 계몽 운동의 중심은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이 될 것이고, 위신을 잃었던 철학도 다시금 복권될 것이라고 본다. 과학은 사실적 지식을 제시하지만, 그런 지식이 가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치 있는지만 중요한지, 다른 생물 종들과 지구 전체에 가치가 있는지도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것도 인문학의 몫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고의 폭을 확장하려면, 과학과 인문학을 더 깊이 융합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더욱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즉 이 책은 창의성이라는 화두를 인간의 이해와 존재 의미라는 방향으로 끌고 나간다. 짧은 글에 많은 내용을 압축한 책이다.

 


이한음

전문적인 과학 지식과 인문적 사유가 조화를 이룬 대표 과학 전문 번역자이자 과학 전문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위기의 지구 돔을 구하라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지구의 정복자, 인간 존재의 의미, 지구의 절반등 다수가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창의성의 기원|이한음 옮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인간 본성에 대하여 | 이한음 옮김

자연 과학과 인문·사회 과학의 만남

 

 

바이오필리아 | 안소연 옮김

우리 유전자에는 생명 사랑의 본능이 새겨져 있다

 

 

자연주의자 | 이병훈, 김희백 옮김

에드워드 윌슨 자서전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 | 최재천, 김길원 옮김

인간 본성의 근원을 찾아서

 

 

통섭 | 최재천, 장대익 옮김

지식의 대통합

 

 

생명의 편지 | 권기호 옮김

과학자가 종교인들에게 부치는 생명 사랑의 편지

 

 

초유기체 | 베르트 횔도블러 공저, 임항교 옮김

곤충 사회를 구성하는 정교한 질서에 대하여

 

 

개미언덕 | 임지원 옮김

에드워드 윌슨 장편 소설

 

 

지구의 정복자 | 이한음 옮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인간 존재의 의미 | 이한음 옮김

지속 가능한 자유와 책임을 위하여

 

 

지구의 절반|이한음 옮김

생명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제안